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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숨어서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어느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고백


어떤 날은, 내가 너무도 좋은 사람이고 쓸모 있는 인간이라고 느껴지다가도 그다음 날은 내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말 거는 일 조차 스스로 낯부끄럽다고 느끼는 날이 있다. 사람의 자존감이란 쉽게 지켜지다가도 또 모래알처럼 부스러지기 쉬운 것이라, 가끔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니냐 생각이 들기 마련일 것이다.



그래, 가끔이면 나도 그러려니 하고 살았을 것 같다.



그런데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는 하루가 내겐 너무 쉽게 찾아왔고 그 하루들이 켜켜이 쌓여 몇 달이 되고 몇 년이 되었다. 학교를 다니고 돈을 벌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겉과 다르게 속은 망가져가고 있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점점 심해져서 학교를 가는 것도 어려워지고 몸이 아프지 않은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들이 이어질 때에서야 '왜'를 들여다봤다. ‘왜’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할 때 운 좋게도 교내 대학원에서 독서치료 프로그램을 접하게 되었는데, 몇 번의 검사와 면담을 통해 위의 모든 증상이 우울증 때문이고 그 우울증은 완벽주의에서 기인한다는 걸 알아냈다.



돌이켜보니 그랬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내가 노력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걸 싫어하게 되었다.



평소에도 그렇고, 시험기간에는 더더욱 학교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는 게 싫어서 - 정확히 말하면 그 도서관에서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내가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는 게 싫었다 - 일부러 그 시간에는 놀고 남들 다 잠든 밤에 기숙사 방에서 공부를 하곤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뭐하러 그렇게 피곤하게, 비효율적으로 시간을 쓰며 살았나 싶다. 좋게 보면 완벽주의이지만 결국엔 노력하는 걸 보이기 싫었던 욕심이었다. 남들이 볼 수 없는 나만의 시간에 하려다 보면 자연히 촉박해지고 그 촉박한 타임라인에 맞추되 내 욕심은 있으니까 결과물은 좋았으면 좋겠고 그러다 막판에 무리해서 영혼을 쏟아부으면서 뭔가를 했던 모습들이 스쳐간다.



그나마 그 모습들은 좋은 결과에 투영되는 것들이고 내 기준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땐 그걸 회피해버리거나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안 좋은 날들이 더 많았다. 내가 머릿속에 그린 하루의 퀘스트들을 깨 나가다가 그 타이밍이 조금 어긋나거나 뭔가 하나라도 퀘스트를 깨지 못하면 그 하루는 망했다고 생각해버리고 버리는 식이었다. 그 순간엔 마음이 편해지는 말이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내 마음속에 지옥을 만들어버리고 마는 ‘내일부터 다시 하지 뭐’라는 말과 함께.



그 굴레를 벗어나는 간단한 해법은 사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그냥 다 해내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몇 년간 스스로를 관찰하고 찾아낸 또 다른 사실은 내가 게으른 완벽주의자라는 것이다.

완벽주의는 가지고 있지만 실행력은 내 욕심을 따라가지 못해서 마음이 괴로운 날이 대부분이었다.

잘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노는 것도 좋아해서 계획은 120만큼 세워놓고 그만큼 시간 분배나 노력은 쏟지 못했다. 120중에 30만큼 한 날은 에너지가 떨어져 울적해지고 '내 이상은 저만큼인데, 왜 난 이거밖에 못하지'라고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다. 30을 했다는 사실은 지워버리고 '100을 달성하지 못했으니 오늘의 난 0이야, 실패한 거야'라는 잘못된 완벽주의로 나를 약간 틀어진 채로 성장시켰다.



새로 마음을 먹었다가도 '오늘부터 매일매일 커피 공부 몇 페이지, 일기 몇 문장 쓰기, 사진 정리 N장만큼 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모종의 이유로 커피 공부를 하다 말았거나 하지 못했다면 '아 이 계획은 내일부터 다시 시작해야 돼. 오늘은 준비만 한 거고 내일이 이 계획 실행의 1일 차야.'라고 생각해야 그 순간은 마음이 편해지는 이상한 완벽주의에 시달려 온 것이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걸 인지하고 인정하는 데도 꽤 걸렸다. 며칠이고 무기력에 휩싸여서 아무것도 못 하다가 엉엉 울면서 다시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난리를 치고, 또 금방 실패하고 좌절하면서 약속을 취소하고 병가를 내고 집에 틀어박혀 천장만 보고 있던 날도 많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고서야 완벽주의를 버려보자고 마음을 먹고 어떻게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괴로워할 시간에 아주 조금씩이라도 뭔가를 하고 있다. 그렇게 예전보다 덜 울게 되었고, 마음을 먹기 이르렀다. 나와 같이 잘못된 완벽주의, 게으른 완벽주의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내가 해왔고 하고 있는 작은 발버둥들을 가감 없이 보여주어야겠다고. 뭔가 노력하고 있으면 그 과정들을 꽁꽁 숨겨놨다가 짠! 하고 보여주는 게 버릇이었던 나도, 이렇게 울며불며 애써서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게 되었으니 사소한 이야기여도 이 과정들을 꼭 들려주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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