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래(탕웨이)가 말한다. “당신이 사랑하다고 말할 때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내 사랑이 시작됐다.”고. 그러자 해준(박해일)은 당당하게 “제가 언제 사랑한다고 했죠?”라 반문한다. 그 말에 서래는 어떤 표정을 지었던가.
이 영화는 다양한 시점 변화가 아주 독특한 영화다. 여주인공 주디의 범행을 끝끝내 밝혀내고 마는 <현기증>(알프레드 히치콕, 1958)처럼 말이다. 히치콕 감독은 실사영화에 애니메이션 기법과 색보정을 감각적으로 활용한다. 마찬가지로 <헤어질 결심>에서는 시점 변화를 위해 2020년대에 활용할 수 있는 최첨단 기술들을 사용한다. 내러티브가 SF 장르나 특수 상황이 아닌 일반적 배경임에도 말이다.
<현기증>의 내러티브나 애니메이션/편집 기술에 대한 오마주는 이 영화의 1부에서 끝난다. 1부는 서래가 산에서 벌인 사건이 축이고 2부는 서래가 바다에서 벌이는 사건이 축이라 할 수 있다. <현기증>은 단선적으로 주디의 회상(플래시 백)을 통해 범행장면을 회고하게 했다. 반면 <헤어질 결심>은 일견 이를 따라한 것처럼 보이지만 회상의 주체가 해준이라는 점에서 명백히 다르다. 해준의 사건 시점에서 나아가 영화는 시체나 사물의 시점, 과도한 틸업/틸다운 등을 통해 2부에 필요한 다양한 단서들을 심어 놓는다. 2부는 1부에서 펼쳐놓은 다양한 단서들을 관객이 재조합하여 추리 할 수 있도록 열어놓은 가능성들이다. 이러한 가능성으로 영화의 사건들을 재추론하면 1부는 해준이 서래를 사랑하게 된 사건이고 2부는 서래가 해준을 사랑하게 된 사건이다. 그리고 2부는 <색, 계>(이안, 2007)에 대한 오마주다. 서래가 해준을 사랑하게 되었으니, <색, 계>(이안, 2007)의 왕치아즈 처럼 알약을 먹지 않고 해준을 시험하게 될 가능성은 농후해진다.
1부에서 해준은 서래에게 반창고를 붙여주고, 최고급 스시를 사주고, 서래의 엑스레이 사진과 섹스를 하고, 서래를 위한 중국요리를 해주고, 서래가 피는 담배의 재가 떨어져 당황해 할까봐 재떨이를 받쳐주는 배려를 하고, 서래를 도와주기 위해 간병인 일을 돕고,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살인을 감출 수 있는 방법까지 알려준다.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람이 있고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다”고 한 해준은 사랑이 파도처럼 밀려옴을 느꼈을 것이고, 그 사랑에 서래는 물에 잉크가 퍼지듯 서서히 물들었을 것이다.
2부에서 서래의 두 번째 남편이 습관처럼 내뱉는 “사랑해” 라는 말 대신 서래의 살인증거물을 “깊은 바다에 버려요”라고 하는 것은 정말 해준의 의심처럼 사랑한다는 말이 아닐까? 아니면 해준은 자신의 ‘마음’을 생물학적 ‘심장’으로 오인하여 자신에 대해 잘 모르거나, 서래를 사랑했지만 사랑하지 않았다고 기만하는 것일까?
“제가 언제 사랑한다고 했죠?”라는 해준의 물음에 서래가 답한 묘한 웃음 속에 오버랩되는 환청.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죄를 저질렀지만 아니라고 하는 서래, 사랑을 했지만 아니라고 하는 해준. 그 둘의 하모니.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박찬욱 감독은 <빅쥐>부터 집요하게 죄와 사랑의 윤리문제에 천착한다. 그리고 이번 <헤어질 결심>에서는 이를 영화 내 다양한 시점들의 모티프로 체현한다. 무생명의 시점으로 세상을 볼 것인가, 생명의 시점으로 세상을 볼 것인가. 어느 장면이 생명의 시점이었던가. 우리 삶속의 현상들을 어떤 주체의 시점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관객이 영화 속 다양한 시점의 주체가 되어 영화의 모티프를 발견하게 된다면, 영화는 독특하고 누구도 흉내내기 어려운 ‘단일한’ 멜로 추리물이 될 터다. 마침내.
* 글 안의 따옴표""''는 모두 영화의 대사를 인용했습니다.
* <영화카페, 카페 크리틱>에서 7월 23일 녹음할 예정입니다. 댓글로 영화에 대한 의견 주시면 선정하여 방송에 소개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