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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MA Jan 31. 2024

죽음이 있기에 살아가는 지도

메모장에 숨어든 이야기

2018.12.05. 00:20
- 당신은 살고 있소? 
- 아니요. 그러나 死를 바라고 있소. 참으로 살려고.
사死와 생生의 이론理 중


나에겐 죽음을 진심으로 바라던 과거가 있다. 말 그대로 죽음. 모든 것이 끝나 버리길 바라던 때. 어쩜 그때는 이 모든 고통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가난과 우울은 각자로도 강력하지만, 합쳐지면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는 강력한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힘은 좌절과 포기의 영양분이라도 되는 양 무력감을 키워내는 데 한몫을 했다. 그래서 죽음을 바라는 누군가의 마음을 더욱 공감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그 바라는 마음의 이유가 조금 다르다는 사실은 시간이 더 흐르고 나서야 깨달았지만 말이다. 


죽음이란 피할 수 없는 운명이기에 관련한 이야기가 많다. 많다는 표현만으로는 채워지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이지. 그중에서 나는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라는 라틴어 문구를 좋아한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것처럼 살아간다. 순간의 영광이 지속될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삶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꽤 냉정한 편이다. 그러니 우리는 잊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 당장 내일이라고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그러니 우리는 다정해야 한다는 것을. 


생을 살아가다 보면 자신의 생을 지탱하는 것들을 찾아내어 여러 겹 쌓아 괴곤 한다. 그중엔 돈도, 사랑도 있을 테지만, 사소하게는 누군가의 다정한 말 한마디도 있을 것이다. 나만해도 현장실습 나가 만난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사장님이 건넨 한 마디, "넌 글을 잘으니 앞으로 꾸준히 써라"덕분에 지금까지도 글을 쓰고 있는 걸. 그러니 다정한 사람들을 귀하게 다룰 줄 알아야 한다. 아껴주어야 한다. 그리고 배워야 한다. 무섭게도 공평한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때로 생은 지옥 같은 시간을 던져주기도 한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고통, 고독, 괴로움. 그러면 경로를 이탈한 내비게이션은 목적지를 수정한다. 이른 죽음으로. 얼핏 보이는 것이 영원한 안식같이 달콤해 보이기까지 하니까 말이다. 죽음을 결심했던 때,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편안해졌다. 모든 것을 초월한듯했다. 금방이라도 날아갈듯했다. 그리고 다정해졌다. 사랑을 표현했다. 조급했다.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정리해야 할 것도. 그렇게 일 년을 살았다. 


결론적으로 나는 더 살고 싶어졌다. 아, 물론 때때로 무의미에 빠져 허덕이다 금방이라도 경로를 따라 죽음으로 향하지만. 죽음은 생의 끝이자 결말이지만, 시작이자 원동력이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죽음이 살게 한다는 말이 어떨지는 모르겠으나 나에겐 그렇다. 당장 내일이라도 죽을 결심이 다정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도전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생의 의미를 모르겠다면 사를 떠올리자. 그리곤 살아가자.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나오자. 마침내 죽음을 마주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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