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장에 숨어든 이야기
2021.09.06
쓰지 않으면 무뎌진다, 마음도 글도
닳아 사라질까 아끼고 품어야 하는 것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써야만 무뎌지지 않는 것을 찾아내 봅니다. 그것이야 말로 세상을 다정히 살아남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아니겠느냐는 소심한 의견이죠.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다가 아무래도 물건은 아니어야겠다는 것,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그렇다고 쉽게 가질 수는 없는 것, 그래서 소중히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 것 들을 찬찬히 생각해 봤어요. 결론은 마음과 글이었답니다.
마음씀에 대해 생각하던 요즘입니다. 딱히 주었다는 자각 없이 나누었던 마음이 따뜻하게 돌아온 경험을 했기 때문일까요? 몇 년 전만 해도 저는, 그러니까 20대 초반을 겪어내던 때의 저는 기브 앤 테이크가 확실했습니다. 준만큼 받아야 한다기보다 받은 만큼 준다는 개념이 강했는데, 그건 일종의 자기 방어였죠. 기대가 실망으로 돌아오는 것이 너무나도 무서웠어요. 저마다의 표현방식과 기준이 다르다는 사실은 간과한 채로 그렇게 살았더랬죠. 생각보다 큰 사랑은 부담스러웠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랑은 공포일 지경이었어요.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나요? 지칩니다. 모든 관계에 말이에요. 스스로 모든 관계를 끊어내기에 이릅니다. 상대는 영문도 모르게 말이죠. 그래서 편했냐고요? 아니요. 외로웠어요. 힘들었고 슬펐죠. 고독했어요. 그래서 글을 썼어요.
글을 쓰다 보면 어느 날 고갈됨을 느끼는 때가 있어요. 그래서 쓰지 않았어요. 더 이상 담아낼 감정조차 남아있지 않은 날이 며칠간 지속되던 때였죠. 그러면 경험을 해야 합니다. 나가야 하고 봐야 하고 읽어야 하며 들어야 하죠. 세상엔 참 좋은 영화와 드라마, 책이 가득하고 금방이라도 명작을 휘갈기게 만들어줄 음악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근본적인 결핍이 있었어요. 흰 배경 앞에 깜박이는 커서와 눈싸움만 몇 날 며칠을 해댔죠. 꽤 오래 쓰지 못했어요. 극복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곳에서 발견했고요..
네, 맞아요. 다시 마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연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어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죠. 그 이후로도 새로운 사람과 만나 대화를 나누며 생각을 공유하는 건 정말 큰 도움이 되었어요. 잠깐 스쳐갈 인연에게도 배울 점은 아주 많았답니다. 예전 같으면 일회성 만남에서 사용되는 에너지는 낭비라고 생각했을 테지요. 그저 쓰는 마음은 사용되어 없어지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돌아오는, 흔적으로라도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저는 저를 기다려주었던 사람에게로 돌아갔어요. 느끼는 대로 표현했고 사랑했고 마음을 썼어요. 그러니 돌아오는 건 더 큰 만족과 마음이었어요.
무뎌진 마음을 다독이던 때 남겼던 메모를 지금 와 돌이켜보니 감회가 새로워요. 씀으로 인해 간직하게 된 마음과 글들을 더욱 사랑하게 된 요즘이거든요. 이제 메모를 업데이트해야겠어요. 쓰지 않으면 무뎌진다, 마음도 글도.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쓰는 사람이다- 하고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