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감에 누워있던 나를 일으켜 준 순간
작년 연말부터 무력감이 상당했다. 들어오는 모든 일들을 거절 않고 한껏 최선을 다하면서 하고 싶은 일도 잘 해내고 싶은 책임감에 규모도 기간도 각기 다른 여러 가지의 일을 끌고 밀고 가다 보니 어느새 12월이었다. 일을 마무리 지으면 한 달 정도는 쉬는 게 당연하고 쉬어야 또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평안한 쉼을 다짐했는데 12월에 감정이 요동치는 사건들을 마주하면서 남아있던 마음의 에너지도 흩어진 것 같았다. 잠을 들지 못하고 두려움과 걱정으로 핸드폰을 부여잡고 잠들었던 날들, 일 년 내내 뉴스를 봤던 시간보다 12월에 뉴스를 봤던 시간이 훨씬 많아지면서 평안한 쉼이 필요하긴 하지만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루아침에 생활의 패턴이 바뀌며 불안정성이 커질 때마다 오늘의 할 일을 하자고 오늘만 집중하자고 해도 효율이 떨어진 배터리처럼 자꾸 드러눕고 싶었다.
내 안에 다양한 경험이 쌓이다 보면 취향이라는 것이 생긴다. 누군가는 우유 맛이 많이 느껴지는 라테가 좋다 해도 나는 커피 맛이 더 느껴지는 라테가 좋다든지, 두꺼운 양장본의 책보다는 얇은 표지의 책이 좋다든지 하는.
그렇게 쌓인 취향은 어떤 순간의 갈망을 만들어낸다. xx 카페의 오트라떼가 먹고 싶다든지(직접 블렌딩 원두를 쓰는 카페), 그냥 떡볶이!가 아니라 학교 앞 포장마차가 떠오르는 떡볶이가 먹고 싶다가도 맵고 어묵이 많은 떡볶이가 먹고 싶은 순간의 갈망. 잔뜩 기대하는 마음으로 바랐던 느낌과 맛을 상상하며 한 입 했을 때 그 맛과 그 느낌이 느껴지지 않아 실망할 때도 더러 있다. 그 순간 갈망으로 시작했던 기대감은 실망과 허탈감에 먹지 말 걸 그랬다는 중얼거림으로 남는다.
마음이 끝도 없이 가라앉을 때, 삶에서 무기력함을 느꼈을 때 좋아하는 춘천의 장소를 떠올렸다. 침대 옆 통창에서 바라보는 산의 모습과 하늘, 오후에 강하고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빛, LP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나무 가구로 둘러싸인 방, 창문을 열어두면 깨끗한 공기가 찾아오는 곳. 어떤 계절에도 포근하게 맞아주는 그곳은 매번 기대 이상의 충족감을 준다. 이번에도 여전했다.
22년 10월쯤 방문해서 남겨두었던 나의 메모가 공동공간 문에 붙여져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은 시간들로 채워갑니다. 계절마다 변하는 풍경처럼 다시 이곳에 찾아올 저도 조금은 변해 있겠지요. 이곳은 변함없이 변한 저를 맞아주면 좋겠어요. 또 만나러 올게요.'
그때 남겼던 말처럼, 22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꽤 많은 변화를 겪었고 거의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문장처럼 그곳은 변함없이 변한 나를 맞아주었다.
비대면으로 운영하는 숙소가 많지만, 대면 체크인으로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곳. 버스를 타고 온 뚜벅이에게 마트를 다녀올 예정인데 필요한 것이 있는지 묻는 곳. 날씨가 맑은 날 밤엔 망원경으로 함께 별을 보고 저녁엔 숙소를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게 인증샷을 찍어주는 곳. 무엇보다 핸드폰을 놓아두고 창밖 풍경만 멍하니 하루종일 바라봐도 괜찮은 곳. 방의 시계가 멈춰있어서 시간에 쫓기지 않는 곳. 많은 이들의 마음 한 자락이 계속 쌓여가는 곳.
좋아하는 숙소에서 자발적 고립의 시간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꼭 들르는 춘천의 에스프레소 바가 있다. 첫 방문 때 너무 맛있어서 에스프레소 3잔을 마셨고, 두 번째 방문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없어지진 않았기에 찾아간 에스프레소바는 두배로 공간이 넓어졌고 새로운 메뉴가 생겼고 직원도 많아졌다. 주문을 할 때 그런 말을 잘 하는 편인 아닌데도 공간이 커진 것에 대한 놀라움과 축하하고 싶은 마음에 22년 10월에 오고 지금 왔는데 변해 있어서 놀랐다는 말을 건넸다. (외모가 달라지신 느낌이라 사장님인줄도 못 알아봤다)
그때 올백머리를 하고 있었을 때였냐고 반가운 표정으로 사장님과 그때 마시고 좋았던 메뉴로 이야기를 나눴다. 메뉴의 이름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맛있었다.
나는 실컷 변해놓고 여전하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쟁이 같기도 하지만.
사람은 성장하고 변화(변화보단 발전?!)해야한다고 생각하면서 좋았던 순간이 진하게 남아있는 곳은 여전하기를 바란다. 여전한 곳에서 과거의 내 기록과 흔적을 미래의 내가 발견하고 마주해보니, 여전한 곳이 계속 여전하기를 더욱 진심으로 바라게 되었다. 과거의 내가 이런 생각을, 글을, 마음을 남겨놓은지도 모른채 살다가 마주하는 것은 생각보다 반갑고 과거의 내가 보낸 편지를 받은 느낌이었기에.
이번에 보내 놓은 편지는 언제쯤의 내가 받을지 모르겠지만, 그때도 여전해서 좋다는 말을 남길 수 있기를. 변한 내가 여전히 좋아하는 것들은 변치 않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