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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희 Feb 27. 2021

국민이 아닌, 시민을 위한 싸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어멘드: 미국을 위한 투쟁'을 보고 쓰다

*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한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지난 2018년 10월 30일, 미국 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자동으로 시민권을 주는 '출생 시민권 제도'를 행정명령으로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그의 대표적인 공약이었던 '미국 우선주의(Amerca First)'에 비춰보았을 때, 국경에 인접한 다른 나라에서 건너오는 불법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아이를 낳아 시민권을 부여하려는 시도를 차단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 발언에 대한 전문가들의 시각은 비관적이었다. 그들은 애초에 대통령이 행정명령으로 헌법을 바꿀 수 없으며, 설사 행정명령으로 이를 피해 갈 수 있도록 연방대법원이 조항 해석을 바꾸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고 예상했다.



수정헌법 14조 제1항에는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귀화한 모든 사람들은 그 관할권이 적용되는 미국 및 그들이 거주하는 주의 시민들이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여기서 속지주의를 따른 것은 노예로 끌려온 아프리카계 사람들과 그 후손들의 시민권을 보장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은 노예제에 반대하는 북부와 찬성하는 남부가 갈라져 1861년부터 4년간 내전을 벌였다. 북부군 승리로 끝난 뒤 1868년 미 의회에서 수정헌법 14조가 비준되면서 흑인 노예들은 시민 자격을 얻었다. 이 조항 덕분에 미국의 많은 인권 운동은 헌법적 근거를 가지게 되었다. 일례로 1898년 중국인 부모에게서 난 웡킴악이 미국 시민권 박탈과 관련해 연방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연방 대법원은 웡킴악의 손을 들어줬다. 그 외에도 인종분리정책, 낙태금지, 동성결혼 금지가 이 조항 덕분에 폐지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 수정헌법 14조는 정치적 논란의 한가운데 서있다.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이 조항이 트럼프의 의견대로 불법 이민자를 늘리고 원정출산을 늘리는 등, 편법의 통로가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14조가 비준되던 1868년에는 미국에 이민 제한 정책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변화한 시대에 발맞춰 조항을 다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화당 소속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14조가 보장하는 속지주의에 근거한 출생 시민권은 초창기 미국 이민자 후손들만큼이나 미등록 이민자들의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며, 미국 외에도 이 제도를 시행하는 국가가 실제로 30여 개 이 기 때문에 미국만 시행하고 있다는 트럼프의 주장은 가짜라고 꼬집기도 했다.



이후 수정헌법 14조는 3년 뒤 2021년에 다시 등장했다. 지난 1월 6일 일어난 미국 국회의사당 폭동을 두고, 민주당의 팀 케인 상원의원은 폭동의 원인 제공자인 트럼프 전 대통령을 탄핵하는 대신 수정헌법 14조를 발동해 향후 그의 공직 출마를 막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과거에 연방 의회 의원, 미국 관리, 주 의회 의원, 또는 주의 행정관이나 사법관으로, 미국 헌법을 지지할 것을 선언하고, 후에 이에 대한 폭동이나 반란에 가담하거나 또는 그 적에게 원조를 제공한 자는 누구라도 연방 의회의 상원 의원이나 하원 의원, 대통령 및 부통령의 선거인, 미국이나 각 주 밑에서의 문무의 관직에 취임할 수 없다. 다만, 연방 의회는 각 원의 3분의 2의 투표로써 그 실격을 해제할 수 있다.


대통령 취임 당시 헌법을 지지할 것을 선언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1년 1월 6일 'Save the america' 집회에서 했던 "We fight. We fight like hell. And if you don’t fight like hell, you’re not going to have a country anymore."라는 발언을 일종의 폭동이나 반란에 기여했다고 본 것이다. 그의 주장은 연방 상원이 트럼프에 대한 탄핵 심판에서 무죄를 평결한 이후 힘을 잃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다시 한번 미국인들에게 '미국 시민의 정의는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상기시키는 발판이 되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과 프레데릭 더글러스


미국 수정헌법 14조의 비준을 위한 투쟁에는 두 사람의 공이 컸다. 첫 번째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다. 사실 그는 정치 입문 초기에 노예제를 폐지하고 흑인 노예를 아프리카로 되돌려 보내자는 주장을 했다. 그들이 해방된 이후에 마주할 사회적 편견과 차별 때문에 그들이 제대로 사회 속에 녹아들기 힘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남북 전쟁 초반에 급진적인 노예 해방 진행에 유보적 입장을 취한다. 경계 주와 북부 민주당원의 전향을 막기 위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일례로 북군의 프레몬트 장군이 링컨 대통령의 재가 없이 독단적으로 미주리주에 계엄령과 노예 해방령을 선포하자 많은 북부 지지자들이 남군에게 학살당했고, 미주리와 켄터키, 그리고 노예해방을 반대하는 북부 지지자들이 전향하여 북부는 패전의 위기에 처했다.



물론 나중에 프레몬트를 해임시키고 율리시스 그랜트를 임명한 점, 그리고 데이비드 헌터 장군을 통해 흑인 병사의 참전을 유도하고 수정헌법 13조를 통과시켜 노예제를 완전히 폐지한 점을 미루어보면 그는 결과적으로 점진적인 노예제 폐지론자였음이 명확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프레데릭 더글러스는 링컨이 노예제 폐지에 진심이었다는 주장에 대한 핵심적인 증인이 될 수 있다. 그는 남부의 노예 출신이었지만, 가까스로 탈출하여 뉴욕으로 건너온 이후 흑인 교회를 비롯한 다양한 조직에 가입하여 신문을 발행하고 웅변을 했다. 남북 전쟁이 일어날 때까지 그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흑인 남성이었고, 마찬가지로 노예제 폐지를 찬성했던 링컨 대통령을 방문한 첫 흑인 남성이기도 했다. 링컨이 직접적으로 그를 '자신의 친구'라고 표현한 사실은, 그가 대통령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노예제 폐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수시로 논의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그래서 링컨 대통령이 암살된 이후 발표한 추도사에서, 프레데릭은 이렇게 말했다.


링컨 대통령은 그의 국민들의 부친으로서 사망하였고, 노예로 지내온 미국에서 남아있는 한 그들에 의하여 애도될 것이다.




미국의 수정헌법을 비롯한 모든 국가의 헌법은 본질적으로 인간이 발의하고 비준했기에, 또 자의적 해석의 영역이 남아있기에 완벽할 수 없다. 그래서 법은 시대가 지남에 따라 수정되고, 또 필요하다면 삭제될 수도 있다. 그러나 흑인을 비롯한 유색 인종을 차별하는 문제를 단순히 의회의 법 제정으로 간단하게 해결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아무리 새로운 법이 제정된들 간에 그것을 따라야 하는 국민의 의견은 각자 다를 수밖에 없으며, 자신에게 내려질 징역을 각오하고 헌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려 시도하는 시민들은 아직도 많기 때문이다. 하나 무조건적인 헌법의 무용론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 여전히 법은 자의적인 해석과 악용이 가능하다한들, 약자에게 자신을 억압하는 이들과 싸워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하나의 무기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빈곤 극복과 국력 신장, 국가 안보를 위한 일사불란한 동원체제 속에서 국익에 헌신하는 수직적 관계는 강화됐으나 이웃과 공동체를 배려하는 수평적 관계를 배양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수평적 관계, 즉 시민성(civicness)의 기반은 자발성이다. 사회적 갈등과 쟁점을 십시일반 해결해 본 경험이 있어야 남의 사정을 이해한다. 자제와 양보의 미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우리가 소망하는 ‘사회정의’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연대와 협력, 자제와 양보가 확장되는 참여와 공공성(publicity)의 공간에서는 국가 권력도 독주하지 못한다.

-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송호근 교수의 칼럼 '왜 지금 시민인가' 中 -


우리나라는 과거 반공에 기초한 국가 안보를 위해 국익에 헌신하는 '국민성'을 사람들에게 배양했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이웃과 공동체를 배려하고 자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이른바 시민성을 기르는 데는 실패했으며 이는 자제와 양보의 미덕을 찾아보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래서 현재까지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의 권리는 빈번히 무시되고 여성들은 사회 전반에서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는 성차별과 희롱을 근절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역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코로나 사태 이후 미국 사회 안에서는 아시아계 미국인이나 이민자들을 차별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고 있다. Black Lives Matter 운동, 의회 폭동 사건 역시 앞서 발생한 사건의 맥락과 크게 다르지 않다.




헌법은 아무리 수정된다고 한들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 키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한 국가 내에서 모든 이의 권익을 보장하는 일종의 무기로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누군가 거리낌 없이 그 칼을 휘두르고 다닌다면 틀림없이 또 다른 누군가는 상처를 입을 수 있으며, 특히 국가 권력을 쥐고 있는 이가 그렇게 행동한다면 더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현대 사회는 절대적인 법치주의의 오류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시민 윤리와 사회정의를 우선시하는 시민의 양성에 집중해야 한다. 시민의 주체화는 궁극적으로 보수와 진보의 지루한 정치 대립과 사회적 문제를 타파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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