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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희 Aug 28. 2022

버릇처럼 듣게 되는 앨범들

  누구나 새우깡처럼 항상 손이 가는 아티스트와 앨범이 있을 것이다. 리스너로서의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해 스트리밍 앱의 알고리즘을 헤집더라도, 나중에는 편식하듯이 익숙한 앨범으로 회귀하게 된다. 그래서 오늘은 장르를 불문하고 그동안 즐겨 들었던 세 가지 앨범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1. Frank Ocean - blonde



  아티스트의 모든 작품은 개인적일 수밖에 없다. 보통 창작을 위한 영감은 사회적인 문제를 바라보는 여러 가지 시선들과 그에 대한 아티스트 개인의 의견으로부터 비롯되고, 이는 프랭크 오션으로 하여금 "channel ORANGE"라는 명반을 탄생시킨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본인을 둘러싼 이해할 수 없는 감정과 타인 간의 얽히고설킨 서사들은 어떤 식으로 앨범 속에 풀어내야 할까. 그것은 하나의 이미지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프랭크 오션은 부정할 수는 없으나 명확히 정의할 수 없었던 관계들, 즐거움과 고통을 주는 존재들, 욕망과 혼란을 불러일으켰던 사건 일체와 관련된 머릿속의 이미지를 음악으로 풀어내기 위해 수많은 음악적 레퍼런스를 뒤졌고, 그 결과는 'blonde'라는 앨범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이는 분명 전작인 'channel ORANGE'나 비주얼 앨범 'Endless'의 방식과는 달랐다. 2016년 8월 20일에 Endless가 발매되면서 데프 잼과의 관계를 마무리 지은 프랭크는, 그다음 날에 바로 애플 뮤직 독점 발매 방식을 통해 blonde를 세상에 내놓았다. 개인적인 서사의 풀이보다는 전작의 방식으로 임팩트를 주고 싶다는 회사의 의도에 질린 듯처럼 보였지만, 어쨌든 그의 팬들은 이전과 다른 작업 방식으로 변신한 프랭크에 환호를 보냈다. 앨범 자체는 Novacane 같은 매끄러운 멜로디와 거리가 멀었지만, 이는 오히려 자신과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에게 자신의 혼란을 받아들이게 하는 효과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변조된 목소리와 기승전결을 따르지 않는 몽롱한 멜로디 라인(특히 nikes의 신스 사운드) 등이 그러하듯이, 이 앨범을 듣는 모든 리스너는 각자의 후회와 복잡한 감정을 대입시키고, 그의 메시지를 마치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내면화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평소에 대중 매체에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서 정작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냈던 아티스트로서의 프랭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용기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2. Kendrick Lamar - TPAB



 개인적으로 켄드릭 라마와 그의 앨범 중 하나인 “To Pimp A Butterfly(TPAB)”를 자주 듣는다. 특히 이번 학기에 넷플릭스의 'American Son (2019)'을 공부하며 이 앨범을 더 많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BLM 운동에서 자주 등장한 곡 “Alright”이 수록되기도 한 이 앨범은 켄드릭이 바라보는 흑인 커뮤니티와 자기혐오를 드러내고 있다. 친구들과 함께 참석한 시상식에서 부유한 백인들에게 분노와 도둑질의 충동을 느끼는 친구들을 보고, 켄드릭은 흑인을 범죄와 빈곤으로 내몬 것은 백인 자본주의지만 정작 그런 구조가 무너진 뒤에도 자기 통제에 나서는 것 역시 흑인들이라고 생각한다. 수록곡 ‘Institutionalize’의 훅인 “Shit don’t change till you get up and wash your ass”는 바로 이런 작금의 현실을 잘 드러내는 문장이기도 하다. 그들이 자신들의 사회에 묻혔던 더러운 것은, 스스로 닦지 못한다면 그대로 더럽게 남을 뿐이다.


  그리고 그는 흑인 커뮤니티에 대한 이런 비판적인 인식에서 더 나아가 자신의 피부색에 대한 뿌리와 가치, 흑인 사회를 넘어선 인류의 공존이라는 시야까지 넘어간다. 문제는 그렇게 넓은 시야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본 그가 장구한 세월 속에 스며든 차별과 혐오를 가장 먼저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흑인으로서 살아온 삶과 거기에 영향받은 자신의 창작물이 사실은 “제도화”된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을 알고, 그는 인간으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자신의 이중성과 원죄, 불완전함을 인정하게 된다. 그의 번뇌가 어떤 방식으로 흘러가는지 따라가면서도 그 과정 속 블랙 뮤직의 요소를 찾아보며 이 앨범을 즐기길 바란다.



3. Radiohead - OK Computer



  라디오헤드를 너무 뒤늦게 들은 것에 후회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비틀스랑 퀸, 오아시스, 그리고 뮤즈만 주구장창 들었으면서도 정작 이 밴드를 무시하고 있었다는 게 삼진 에바를 먹을 행동인 것은 분명하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라디오헤드를 creep 원툴 밴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중파 음악 프로그램에서 이 노래를 계속 커버하는 것을 들을 수가 없어서 일부러 더욱 외면했던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톰 요크와 아이들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모든 순간을 만회하겠다는 듯이 몇 달 전부터 그들의 모든 앨범들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울에 빠진 친구를 더욱 우울하게 만들겠다는 듯이 이 앨범을 휘두르고 다니면서 찍먹을 권유했다. 물론 아무도 관심을 가지진 않았다.


  게다가 라디오헤드를 잘 몰랐기에 올해는 이 앨범이 탄생한 비화나 가사 해석에 많은 시간을 들이기보다는 그저 반복하면서 듣거나, 라디오헤드의 세계를 먼저 맛본 사람들의 칼럼만 읽을 수밖에 없었다. 'KID A'가 라디오헤드를 대표하는 명반이라고 하지만 이제 하나씩 들어보는 나에게는 솔직히 벅찼고, (다른 팬들의 표현에 따르면) 정통파 록 사운드의 'The Bends'는 물론 좋았지만 본격적으로 실험적인 사운드를 내려는 이 앨범의 수록곡들을 먼저 흥미롭게 들었기에 상대적으로 후순위로 두었다. 1997년에 발매된 이 작품이 여전히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시대의 리스너를 감화시킬 수 있는 감성과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역시 이 앨범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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