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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화, [장강일기]

학민사, 1998

by 형산

광복 80주년을 맞아 나름의 기념 의식을 치렀는데

하나는 광복과 해방의 의미를 다시 공부하고서 이곳 브런치에 정리하는 것이었고

하나는 정정화 여사의 [장강일기]를 읽는 것이었다.

정정화 여사는 동농 김가진의 며느리로, 동농이 대한제국의 대신으로는 유일하게 임시정부에 참여키 위해

아들을 데리고 중국 상하이로 망명한 후, 시아버지와 남편을 따라 상하이 임시정부에 합류한 후

임시정부 역사와 함께 한 여장부이다.

이전에 임시정부의 삶을 들여다보게 한 책, [제시일기]와 더불어

이 책은 임시정부의 미시사를 살피는데 큰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의 정체성이 임시정부에서 비롯하고 있다고 헌법에 서술되어 있어

임시정부의 활약이 엄청날 것처럼 여겨지지만,

일제가 간악하게 폭압을 저지르는 가운데 독립투쟁이 상당히 다방면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임시정부 자체의 투쟁이 막 극적이진 않다.

삼일운동 연장으로 시작된 임시정부 투쟁의 핵심은 견디는 데 있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일제의 압박, 자금 부족, 이념 갈등 속에서 대내외적으로 대한민국이 멈추지 않고 투쟁하고 있다는 상징으로 임시정부가 존재했다.

임시정부가 완연히 온 민족을 대표하게 된 것은 42년 즈음, 약산 김원봉이 이끈 조선의용대가 합류하고

흩어져 있던 민족 정당들이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통합된 이후의 일이다.

그래서 43년부터 광복군이 힘을 낼 수 있었고, 43년 카이로 회담에서 독립을 보장받을 수 있었으며

41년 상징적으로 일본에 선전포고 한 것을 발전시켜, 45년 광복군을 중심으로 국내 침공 계획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러니 임시정부는 성립된 후 20여 년을 살아남고 인정받기 위해 분투해 온 셈이다.

그 사이 윤봉길 의거가 없었더라면 임정의 역사는 많이 어려웠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임정이 겪었던 살아남기 투쟁이 생생히 드러난다.

임정의 살림에 역할을 했던 여인의 기록이기 때문에 참 진솔하다.

게다가 임정 자금을 얻기 위해 국내 침투도 여려 번 했던 강단 있는 여인,

정규 학교를 다니지는 못했으나 지속적으로 공부하며 정세를 이해하던 여인의 글이라

독립투쟁 전반을 들여다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 독립투쟁의 역사는 임정을 중심으로 하되

다양한 흐름을 두루 살펴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무장 유뮤, 좌우 이념 유무로 우리 민족의 독립투쟁을 편가르지 말고

있는 그대로 민족의 모든 역량을 발굴하고 그 저력을 인정해야 하겠다.

그럴수록 독립투쟁이 진행된 역사를 제대로 볼 수 있다.


광복을 이룬 뒤, 임정 요인들이 당한 고초를 다시 언급하고 싶진 않다.

너무 서글퍼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정화 여사가 6.25를 겪으면서 좌익으로 몰리고

이승만 독재 속에서 설움을 당한 이야기는 놀랍지도 않다.

광복 80년을 맞아 이들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되살아나고 깊어지길 기대해 본다.

이제 성숙한 마음으로, 이념이란 색안경을 벗고 우리 역사를 풍성하게 볼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다고 믿는다.


1934년 상하이에서 찍은 정정화 여사의 가족사진. 왼쪽이 남편 김의한, 가운데 정정화 여사, 오른쪽 아들 김자동. 단아하고 강인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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