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융 / 이옥지 역, 까치, 2021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 현대사를 한 집안의 자매가 크게 흔들어 놓을 수 있을까. 송씨 집안의 세 자매 아이링, 칭링, 메이링이 그랬다. 그래서 중국 현대사를 송씨 집안의 자매 이야기라는 미시 관점에서 들여다보는 색다른 관점이 가능하다. 장융의 저서 「아이링, 칭링, 메이링」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20세기 중국이라는 거대한 무대를 배경으로, 송씨 가문의 세 딸이 각자의 욕망과 신념에 따라 내린 선택이 어떻게 한 나라의 운명을 뒤흔들었는지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이 책은 단순한 역사서를 넘어, 사랑과 야망, 이념과 배신이 뒤얽힌 한 편의 대서사시와 같다.
세 자매는 '혁명 자본가'였던 아버지 찰리 송 덕분에 시대의 기대를 뛰어넘는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미국 유학을 통해 얻은 유창한 영어와 서구적 시야는 훗날 그들이 역사의 주역으로 발돋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그러나 같은 뿌리에서 자라난 세 자매는 너무나도 다른 길을 걷게 된다. "하나는 돈을 사랑했고, 하나는 권력을 사랑했으며, 다른 하나는 중국을 사랑했다"는 말은 이들의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맏언니 아이링은 현실적인 재력가였다. 그녀는 중국의 재벌 쿵샹시와 결혼하여 부를 축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부를 권력의 기반으로 삼았다. 그녀에게 돈은 동생 메이링과 그의 남편 장제스의 국민당 정권을 지탱하는 실질적인 힘이었고, 막후에서 중국의 재정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었다.
둘째 칭링은 타협을 모르는 이상주의자였다. '국부' 쑨원과 불같은 사랑으로 결혼한 그녀는 남편의 혁명 유지를 잇는 것을 생의 사명으로 삼았다. 그 신념은 결국 동생 메이링의 남편 장제스와 등을 돌리게 만들었고, 그녀를 '붉은 자매'의 길로 이끌었다. 가족과의 단절과 정치적 고립 속에서도 그녀는 공산 중국의 상징으로 남아 자신의 신념을 지켰다. 그녀가 사랑한 것은 쑨원이었고, 더 나아가 그가 꿈꿨던 '중국' 그 자체였다.
막내 메이링은 세 자매 중 가장 화려하게 권력의 중심에 섰다. 쑨원의 후계자로 국민당 주석을 이어받은 야심가 장제스와의 결혼은 그녀에게 중국의 퍼스트레이디라는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녀는 빼어난 미모와 탁월한 외교술로 서구 세계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항일전쟁 시기에는 국민을 하나로 묶는 강력한 아이콘이 되었다. 그녀는 권력을 사랑했고, 그 권력의 정점에서 역사를 움직이고자 했다.
이처럼 각기 다른 길을 선택한 세 자매의 삶은 20세기 중국의 역사와 그대로 겹쳐진다. 신해혁명, 중일전쟁, 그리고 중국을 두 동강 낸 국공내전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가정사는 곧 국가의 비극이었다. 아이링의 자금은 장제스의 군대를 움직였고, 메이링의 외교는 미국의 지원을 이끌어냈으며, 칭링의 존재는 공산당의 정당성을 뒷받침했다.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으로. 한때는 서로를 지극히 아꼈을 자매가 이념의 벽을 사이에 두고 적이 되어버린 과정은, 분열된 중국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하는 가슴 아픈 축소판이다.
장융은 이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이들이 끝까지 서로를 완전히 놓지 못했던 인간적인 순간들을 포착해낸다. 정치적으로는 적이었지만, 사적으로는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고 그리워했던 모습들은 이들의 이야기가 단순한 권력 투쟁사가 아님을 보여준다. 결국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울림은 거창한 역사의 이면에 가려진 한 인간의 고뇌와 선택의 무게이다.
한 시대가 저물고, 세 자매는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흔적은 오늘날의 중국에까지 깊게 새겨져 있다. 「아이링, 칭링, 메이링」을 덮으며 우리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세 여성의 삶을 통해 역사를 배우고, 그 안에서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과 신념의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이야기가 단순한 과거의 기록을 넘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강력한 흡입력을 갖는 이유일 것이다.
중국에서 살다 일찍이 서구 유학을 떠나 영국에서 살아온 저자의 서술은 알게 모르게 서구 중심 사고에 젖어 있어 중국 역사를 바로 보는 시선에 오리엔탈리즘 흔적이 남아있다는 약점은 상기하며 읽을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