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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타의 보호 아래(2)

by 주이슬 Mar 18. 2025

“주춤이는 모운족과 똑같은 건가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때마다 주춤이는 모운족이다, 토타족이다 두 가지로 의견이 분분하게 갈렸던 터였다. 한순간에 아이들의 관심이 쏠렸다. 로안을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입을 뗐다.

“주춤이는 자랑스러운 우리 토타족의 일원이야. 우리 조상들은 원래 꼬리가 없었다는 사실 알고 있지? 우리 조상의 모습을 하고 태어난 거라고 보면 돼. 그러니 모운족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 아주 나쁜 말이거든.”

아이들은 선뜻 대답하지 않고 서로의 눈치를 봤다. 로안은 조용해진 교실을 잠깐 둘러보더니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주춤이가 태어나면 바로 보호소로 보내지 않고 일주일 동안 집에 머무르는 이유가 뭘까? 아는 사람?”

이제 교실은 숨 막히는 정적으로 가득 찼다. 린델은 로안과 눈이 마주치면 대답을 해야 할까 봐 필사적으로 본인의 손만 내려다봤다. 로안이 손뼉을 가볍게 치며 말했다.

“보호소가 있는 곳은 환경이 매우 아주 척박하단다. 나무가 잘 자라지 못하고, 열매도 거의 안 맺거든.”

마침, 며칠 전 나무와 열매에 대한 수업을 들었던 터라 아이들의 표정이 밝게 빛났다. 알고 있는 지식을 뽐내는 목소리들로 교실이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로안이 벽을 두드렸다. 통통 소리가 났다.

“어쨌든, 험한 환경에서 살아가려면 토타의 축복이 필요해. 그래서 바로 보호소에 보내지 않고 일주일 동안 데리고 있는 거야.”

그러더니 자신의 가방에서 무언가를 둘둘 감싼 천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펼쳤다. 짙은 푸른색의 나뭇가지처럼 생긴 식물이었다. 크고 뾰족한 가시와 작은 이파리들이 붙어 있었다. 로안이 “자, 이거 본 적 있는 사람?”하고 묻자, 몇몇 아이들이 “푸른 갈퀴요!” 하고 외쳤다.

“맞아. 일 년에 한 번씩 재단에서 의식을 진행할 때 푸른 갈퀴를 태우는 거 잘 알고 있지? 재단 뒤쪽으로 가면 이 식물이 엄청나게 엉켜있는 걸 볼 수 있어. 가시가 상당히 크고 뾰족해서 조심해야 해.”

그러더니 오른손 검지를 가시 위로 살짝 가져가 대고는 과장하면서 “아야야야….” 하고 아픈 티를 냈다. 아이들이 작게 웃었다.

“이걸 태웠을 때 발생하는 연기에는 정화와 보호의 효과가 있어. 그래서 주춤이가 태어난 집에도 이걸 태워 연기를 온 집안에 밀어 넣어야 해. 향이 무척 강해서 약 일주일간 지속되지. 새로 태어난 주춤이는 일주일간 그 향을 맡으며 앞으로 살아갈 힘을 얻고, 토타의 보호도 받을 거야.”

그러더니 다시 천으로 푸른 갈퀴를 둘둘 말아 가방 안에 넣고는 “주춤이가 모운족이라면, 과연 토타께서 보호를 해주실 것 같니?”하고 물었다. 아이들이 동시에 “아니요!”라고 외쳤다.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라 린델은 귀를 살짝 틀어막아야 했다.

“그럼 주춤이들은 모운족일까, 토타족일까?”

이번엔 아이들이 “토타족이요!”하고 소리 높여 대답했다. 유나를 포함해 선뜻 대답하지 않은 몇몇 아이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웃었다. 그때였다. 린델의 가까운 곳에 앉아 있던 은오가 외쳤다.

“우리 부모님은 주춤이라는 말도 쓰면 안 된다고 했어요!”

로안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은오의 얼굴을 바라보며 천천히 다가왔다.

“응,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 하지만 주춤이라는 이름은 그 사람들의 행동에서 그대로 따 온 거야. 모운족처럼 배척하고 비하할 의도가 있는 명칭이 아니야.”

그리곤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그렇지 않니?”

아이들이 “맞아요!”라고 답했다. 린델이 답을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자, 옆자리에 있던 유나가 의아하게 쳐다봤다. 린델은 입 안쪽의 부드러운 살을 살짝 깨물며 마지못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춤이들이 불쌍했다. 누군가가 린델의 살짝 짧은 꼬리를 보고 ‘짤막이’라고 부르면 불쾌할 것 같았다. 하지만 로안의 말도 어느 정도는 맞았다. 주춤이라는 말은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되던 ‘모운’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호칭이다. 여기서 한 번 더 바꾸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였다. 린델은 곧 깨물고 있던 연약한 살을 놓아주었다. 그리곤 집에 가면 뭘 하고 시간을 보낼지 생각하느라 정신을 빼앗겼다. ‘모운’이니, ‘주춤이’니, 어떻게 부르든 린델과는 관련 없는 주제였기 때문이다. 


그늘나무 수액의 산뜻하고 서늘한 향이 집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가린과 하델이 로안과 함께 집 벽을 고치는 중이었다. 나무로 지은 집이라 주기적으로 보수 공사가 필요했다. 거실에 있던 린델의 귀에 일정한 간격으로 뚝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가린과 하델, 로안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공기 방울이 톡 톡 하고 터지는 것 같은 기분 좋은 목소리였다. 린델은 웃음을 머금은 채 주방으로 향했다. 마니가 홀로 앉아 여름밤딸기를 먹고 있었다. 마니는 옆집 로안과 부부 사이로, 둘은 린델의 부모와 자주 교류했다. 린델은 딸기 하나를 집어먹으며 배가 상당히 나온 마니의 배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기 이름은 뭐예요?”

린델의 질문에 마니가 고개를 숙여 배를 바라봤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답했다.

“아직 결정을 못 했어.”

“저는 ‘린’을 ‘가린’에서, ‘델’을 ‘하델’에서 따왔어요.”

“응. 그랬구나. 아주 예쁜 이름이야.”

본인의 풍선 같은 배를 쓰다듬던 마니의 손이 이윽고 린델의 덥수룩한 머리카락을 몇 가닥 쥐더니 가볍게 꼬았다. 린델은 간질간질함을 느끼며 마니와 로안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따서 곧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조합해 봤다.

“마로, 마안, 안마, 안니….”

토타족은 양육자의 이름에서 두 글자를 따 아이의 이름을 짓는 풍습이 있다. 작은 문제가 하나 있다면, 토타족의 수 자체가 그다지 많은 편은 아니다 보니 세대를 거듭할수록 이름들이 비슷해지는 현상을 보였다는 것이다. 당장 린델이 떠올려 본 아이들 이름만 해도 ‘루나’, ‘리나’, ‘라나’ 등이 있었다. 그에 반해 린델은 조금 덜 단순한 이름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는 로마랑 니안중에 고민하고 있어. 넌 뭐가 더 좋니?”

“음……. 둘 다 이상해요.”

마니가 웃음을 터뜨렸다. 린델은 영문도 모르는 채로 덩달아 웃었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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