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뽀 기행 #2: UX/UI 디자인 취업의 흥망성쇠
저는 미국에서 Human-Computer Interaction을 공부하고 지금은 Product Designer로 일하고 있습니다. "취뽀 기행"은 제가 4학년이었을 때 Product Designer, UX/UI Designer로 취업준비한 과정을 기록한 시리즈입니다.
매년 봄이 되면 학교에서 예술계 학생을 위한 채용 박람회(커리어 페어)가 열린다. 채용박람회 시즌이 되면 수십 개의 회사들이 설명회부터 각종 행사를 통해 자기 회사를 어필하고, 학생들은 레쥬메를 뿌리고 포트폴리오를 보여주며 면접을 따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채용 담당자를 직접 만날 수 있어 서류 지원보다 훨씬 유리한 기회다. 때문에 인턴쉽과 취업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는 정말 치열하고 분주한 며칠이 된다.
몇 년 전만 해도 회사별로 채용설명회가 너무 많아 겹치는 곳은 가지도 못했다. 그런데 올해는 채용설명회가 단 한 군데밖에 열리지 않았다. 회사의 부스들로 꽉 차야했던 체육관은 2/3만 채워져 있었고, 온캠퍼스 면접을 보는 회사들도 체감상 50% 미만이었던 것 같다.
반면 UX로 취업하려는 학생들은 전보다 몇 배로 늘어났다. 이번에 채용 박람회에 참가한 몇 안 되는 회사들은 보다 적어진 신입 디자이너 티오를 채우기 위해 수십 명의 학생들의 포트폴리오와 레쥬메를 보고 면접 볼 몇 명을 겨우 골라가야 했다.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한 현장을 바라보며, 취준생인 나는 이 상황을 좀 더 이해하고 싶어졌다.
몇십 년 전만 해도 UX 디자인은 존재하지 않는 말이었다. 디자인과 인간심리의 저자 Don Norman이 처음 User Experience Desig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소프트웨어 산업이 성장하고, 프로그램의 안정성을 넘어 "사용성"이 경쟁력이 되면서 이를 디자인해줄 사람들이 필요해졌다. 그때 웹 디자인, UI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일을 처음 해보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UI/UX 디자인이 디자인학과를 졸업한 학생이 그나마 쉽게 진입할 수 있는 안정적인 직업으로 부상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19년 현재 상황은 어떨까? "디자인"하면 패션 디자인이나 편집 디자인을 떠올리던 전과는 달리 이제 UX는 디자인을 하지 않더라도 다 한 번쯤은 들어본 용어가 됐다. 그만큼 UX 디자인의 인기는 엄청나다. 근데 UX를 하는 사람을 부르는 이름이 자꾸 바뀐다. UI, UX, 설계자, 프로덕트 디자이너, 경험 디자이너... 개발자는 계속 개발자다. Front-end/back-end로 구별되거나 개발언어별로 좀 더 세분화된 채용공고가 올라오기도 하지만 개발자가 개발 설계자, 코딩 디자이너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대체되진 않는다.
이름이 계속 바뀐다는 말은 직무의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유형(tangible)의 세계에서 디지털로 넘어오면서 디자인 프로세스도 툴도 재구축되어야 했다. 소프트웨어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는 개발자, 디자이너 모두 아직 다 같이 풀어가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난제다.
사용성이 좋은 디지털 서비스를 디자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처음엔 직감대로 만들다가 점점 다양한 방법론과 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디자이너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졌다. 리서치도 해야 하고, UI도 디자인해야 하고, UI에 쓰일 디자인 시스템도 만들어야 하고, 프로토타이핑도 해야 하고, 이해관계자와 커뮤니케이션도 해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프로세스가 서비스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며 언제 어떻게 각 프로세스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야 하는지도 판단해야 한다. 때문에 재밌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 모든 걸 포괄하는 직군(Product Designer, 설계자 등)과, 더 세분화된 직군 (UX Researcher, UX Engineer 등)이 등장했다. 그다음이 뭐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디지털 서비스를 어떤 프로세스로 디자인해야 하는지, 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이 무엇인지 아직 명확하지 않다 보니 효율적인 채용 또한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는 수십 년 전 처음으로 웹 디자인이란 걸 하게 되었다가 지금 시니어와 매니저가 된 세대가 고민해야 할 몫이 되었다. 몇 년 전만 해도 면접에서 "What is your design process?"라는 질문을 자주 받았었는데 이번에는 거의 듣지 못했다. 프로세스의 변화가 채용 절차에도 투영되고 있다고 느꼈다.
웹디자인 초창기에는 다들 entry level이었다. 디자인과를 졸업했거나 감각 있고 개발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뛰어들어 아등바등 일했다. 그 역사를 함께하며 살아남은 시니어 디자이너들이 이미 역량을 발휘하는 가운데 굳이 신입 디자이너를 채용해서 성장시킬 회사는 많지 않다. UX도 당연히 경력자 우대 딱지가 붙는다. 경력자가 우대되는 직군을 경력이 없는 사람이 뚫고 들어가려면 실무에 대한 경험과 이해를 쌓을 리소스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학교는 이를 제공해주는 기관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이는 비슷한 이유다. 디지털 디자인의 역사가 짧다 보니 아직 실무 경험이 많은 교수진, 빠르게 변화하는 소프트웨어 산업의 트렌드를 심도 있게 이해하는 교수진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HCI프로그램으로 유명한 카네기 멜론을 다니면서도 실제 산업에서 디자이너들이 매일 하는 고민과 도전을 제대로 이해하고 코칭해줄 멘토를 찾기가 정말 어려웠다. 근 5년 사이에 실무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 통찰력 있는 포트폴리오 리뷰를 해줄 수 있을까? 처음 인턴쉽을 하면서 학교 커리큘럼과 산업 사이에 얼마나 간극이 큰지 느낄 수 있었다. (물론 학교가 산업이 요구하는 인재상을 양성하는 기관이 되어야 하는가? 는 또 다른 문제다)
요즘 미국에서는 개발 부트캠프처럼 General Assembly 같은 디자인 부트캠프가 흥하고 있다. 관련 학과를 졸업하지 않더라도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실무 기술을 단기간에 배우면 디자인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존 마에다의 2019년 Design in Tech Report에서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테크 업계에서 전문 디자이너로 일하려면 학위가 필수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한 사람이 "그렇다"라고 대답한 사람보다 훨씬 많았다.
예전에는 채용 시 HCI나 UX프로그램이 유명한 학교들이 '타깃 스쿨'이었으나, 디자이너의 역량이 학과의 네임벨류와 꼭 직결되지 않는다는 걸 HR과 디자인 커뮤니티는 깨닫고 있다. 최고의 취업 기회인 취업박람회/커리어 페어가 올해 그만큼 들끓지 않았던 이유일지도 모른다.
자, 신입을 뽑는 수는 적어졌는데 하고 싶은 사람은 넘쳐나고, 학교는 열심히 다녔는데 내 포트폴리오는 괜찮은지 모르겠고. 디지털 서비스를 디자인하고 싶은 취업 꿈나무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엇비슷한 포트폴리오, 엇비슷한 레쥬메 사이에서 나를 어떻게 차별화해야 할까? 다음 글에서 더 깊게 다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