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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트 May 17. 2024

마음이 상한 자의 하나님

사모 에세이

‘크리스천들에게 있어서 복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상 속에서 영향력을 끼치는 삶이 그 복이라 생각했다. 성경엔 형통하고 잘 되는 복에 대해 설명하는 구절들이 많이 있으니까.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또 다른 종류의 복이 있다. 바로 ‘마음이 상한 자가 하나님을 찾을 때 받는 복’. 마태복음 5장의 팔복은 대부분 그런 복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자의 복을 구하지 후자의 복을 달라고 구하진 않는다. 후자의 복은 어쩔 수 없는 풍파를 다 겪고 나서야 깨닫는 경우가 많으니까.


요즘은 무엇이든 원하면 적극적으로 이룰 수 있는 시대다. 실력과 열정만 갖춘다면 크게 문제 될 것도 없다. ‘갓생’ 열풍은 크리스천들에게도 넘어와 회사도 다니면서 교회 봉사도 열심히 하고, 더 나아가 사이드 프로젝트나 취미 활동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섬김도 하는 이들도 심심치 않게 보게 만든다. 이런 시대의 흐름 속에서 애통하고, 수고롭고, 고생하고, 무명한 삶은 그것이 도저히 복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은 왜 애통하고 박해를 받는 삶도 복이라 하셨을까? 도저히 구하지 쉽지 않은 그 복을 왜 이렇게 많은 구절을 통해 설명하고 있을까? 이유는 세상이 너무 악하기 때문일 것이다. 교묘하게 성도들을 악한 길로 인도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대세를 거부하고, 더 좁은 길을 구해야 할 때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평안하고 원만한 삶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다. 매 순간 감사를 느끼며 현재에 충실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악한 본성은 평안함 속에서 ‘감사’를 찾기보단, ’ 안주함‘을  찾게 한다. 어쩔 땐 내가 이만한 복을 보상으로 받아도 되는 사람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나는 그만큼 충분히 노력하고 성과를 내며 선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으니까.


하지만 성경엔 무릎 꿇고 회개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복도 있다. 나의 죄된 본성을 깨닫고 기도할라치면 하나님의 ‘하’ 자만 되뇌어도 눈물이 쏟아진다. 이 불쌍한 자, 이 교만한 자 용서해 달라고 부르짖으면 그 순간보다 더 하나님이 간절하게 느껴지는 때가 없다. 마침내 그 눈물 뒤엔 이전보다 더 성숙해진 한 사람이 서 있게 되는 것이다.


시대는 점점 악해지고 있다. 교회 안에 무수히 많은 우상들이 있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않는 크리스천들도 너무나 많이 있다. 이럴 때일수록 크리스천들이 더 깨어 세상 모두가 구하는 복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 높은 데 처하면 스스로를 쳐서 무릎 꿇는 시간이 필요하고, 낮은 데 처하면 상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우리에게 최고의 복은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위엄 앞에 스스로 순종하고 복종하는 삶’ 일 것이다.



[시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32:1-2]

1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2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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