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의 삶
늦은 밤 귀가 후 남은 집안일을 한다. 아내는 아이를 재우다 함께 잠이 들었다. 아내가 잠들기 전 먼저 돌려놓은 빨래를 세탁기에서 꺼낸다.
귀여운 토끼가 그려진 작고 노란 아기 팬티를 건조대에 넌다. 새삼 언제 이렇게 자랐나 싶다. 여전히 아기지만 어느새 팬티도 입는 아기가 되었다. 토끼처럼 웃는 아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오늘 하루도 얼마나 웃고 울고 생글거리고 까르르거리고 투정 부리고 안기고 손을 잡고 뛰고 재잘거리고 뺨을 부비고 입을 맞췄을까. 찰랑거리던 머리칼을 헝클이고 사지를 자유롭게 펼친 채 자고 있겠지. 이제는 작아진 옷들과 아직은 큰 옷들을 탁 하고 털면 지나간 시간과 다가올 시간이 선하게 살갗에 와닿는다. 내가 늙는 속도와 아이가 자라는 속도의 차이만큼 아쉬움이 스민다.
아내의 속옷도 넌다. 하루 종일 애쓴 사람처럼 건조대에 축 늘어져 널려 있다. 어느 바닷가 마을 어귀에서 해풍을 받고 있는 어물들처럼 달빛을 받으며 세월에 마르고 있는 것 같다. 빨래를 털고 주름지지 않게 살살 펴서 넌다. 내일이면 다시 햇빛을 받아 뽀송해지길 바라며.
내 속옷도 넌다. 아내와 아이의 속옷들을 합친 것보다 큰 것들이 덜썩덜썩 널린다. 나의 빨래만 널리던 때의 건조대는 촘촘하고 빡빡해서 답답했었는데, 지금 우리집 건조대에는 크고 작은 빨래들이 길고 짧음과 높고 낮음을 만들고 있었다. 한밤 베란다에는 빨래들의 조화로 그려진 악보가 걸려있다.
다 넌 빨래를 한번 보고, 창 밖의 달도 한번 본다. 내 마음 어딘가에 기도 비슷한 말들이 널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