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
우당탕탕, 삼십 대 중반의 첫 직장 적응기(2)
늦깎이 신입사원도 어느덧 3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업무에 적응하면서 여러 시행착오들이 있었다. 약간의 성취가 있었지만, 아직 회사에 쓸모 있다고 인정받을 수준이 되지는 못한 것 같다. 여전히 느린 성취와 잦은 시행착오가 신경을 긁는다. 무(無)에 가까운 경력을 생각하면 이게 맞는데, 출발선이 달랐던 또래들을 생각하면 조바심이 난다. 잦은 한숨이 모락모락 근심을 싣고 날아간달까.
오늘은 쓸데없는 자격지심이 그 신입사원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위로 아닌 위로를 주고받았더니 자꾸만 기분이 아래로 가라앉는다. 갑작스러운 감정의 싱크홀에 발 빠짐을 주의하시라. 멀쩡히 지나가던 분들을 이곳에 빠트려서 실로 유감스럽다. 걱정은 이만 넣어두셔도 좋다. 스스로에게 곧잘 빠져들기는 하지만, 또한 곧잘 헤쳐 나오기 때문에 이번에도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다. 속는 셈 치고 믿어도 좋다.
긴 사설을 어디다 써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재활용을 해보자. 오늘만은 쓸모없던 것들도 쓸모 있게 만들고 싶다. 정신승리를 위한 자기 최면이 필요한 때이다. 레드썬. 멍하니 기억 더미를 뒤적여보다가 쓰레기 더미를 뒤지던 초등학생 시절을 추억하게 되었다.
나는 전교생이 많지 않은 시골 초등학교 출신이다. 학생들을 사로잡아 반쯤 강제로 졸업시키던 그곳에서 1학년때부터 6학년때까지 한 반에서 함께했다. 학교 뒤로는 간이 소각시설이 있어 쓰레기를 태웠다. 건물 앞으로는 넓은 운동장이 있었고, 산과 들에서는 여러 작물들이 맺혔다. 이 모든 곳이 우리의 놀이터였다.
마을 어귀에는 쓰레기장이 있었다. 말이 쓰레기장이지 인근지역 주민부터 타 지역 주민들까지 합심해서 갖다 버린 '양심'이 아무렇게나 쌓여있었던 곳이었다. 한때 그곳은 우리의 아지트였다. 학교를 마치면 '보물'을 줍기 위해서 쓰레기장으로 달려갔다. 아무렇게나 널린 녹슨 철사는 때로는 공룡이 되고, 로봇이 되었다. 망가진 텐트 기둥은 어린 용사들을 위한 칼이 되었다. 벽에다 세게 던지면 펑하고 터지는 라이터는 수류탄이 되었고, 구멍 뚫린 매트리스 위에서 뛰어놀 때면 비행기가 부럽지 않았다. 망원경을 주운 날은 하루 종일 온 동네를 관찰했다. '우리 마을을 위협하는 악당들이 들이닥치지는 않을까.' 두려운 마음 반, 악당들을 해치울 마음에 설레는 마음이 반이었다. 해가 떨어진 뒤에는 밤이 깊도록 달을 바라보았다. 달 피부에 뽕뽕 뚫린 구멍까지도 잘 보이는 것만 같았다. '달 너머에는 어떤 모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상상할 때면 힘이 솟구쳤다.
회상에서 깨어나면서 나는 나이만 먹은 어린이가 되어버렸다. 늦게까지 마을을 지키던 어린아이는 이제 늦게까지 회사를 지킨다. 우선은 키보드와 마우스를 휘둘러 산적한 문서들을 해치우자. 낮동안 자라난 턱수염이 내일은 '칼퇴'하자고 속삭이면 깊이를 더해가는 다크서클이 고개를 끄덕인다. 든든한 지갑으로 가정의 평화를 수호할 때까지, 신입사원은 자신의 쓸모를 찾아 나설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