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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높빛 Mar 31. 2022

미사여구가 가득해졌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순정만을

    군대에서 으레 사람이 바뀔지는 몰랐습니다. 첫 문장부터 남 탓처럼 들리는 변명이지만 당직 근무를 서면서 밤마다 쓰던 문장 하나하나에 기교를 넣고 싶어 미사여구가 가득한 문장 쓰는 연습을 나도 모르게 한 것 같습니다. 부대 내에 비치된 '진중문고'에 에세이와 장편소설을 쓴 작가들은 어찌 그런 멋진 문장을 글로 썼는지 많이 부러웠고, 당신들의 글맵시를 배우고 싶었습니다. 아해도 가끔 SNS나 소설, 에세이에서 아름다운 문장을 보면 인용하고 싶을 것입니다.


   태생적으로 글을 좋아했지만 재주는 없었던지라 남들을 동경하며 살아왔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복무 시절까지는 글을  쓰는 사람이 부러웠습니다. 특히  시기에는 SNS 자신의 문장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혹자는 이들의 행위를 흑역사로 치부하기도 합니다. 호불호가 존재하였지만 나는 그들의 글이 멋있게 보였습니다. 특히 고등학교 시절  주변에  쓰기에 재주가 많고 열정적인 친구들이 많았기에  그랬던  같습니다. 작문의 사춘기가 조금은 늦게 왔나 봅니다. 괜히 있는 한글 단어를 한자어로 바꾸고, 온갖 뜬구름 잡는 표현을 집어넣곤 하였습니다.


    군대에서 제대를 하고 남은 대학생활을 하며 느낀 것은 세상에 똑똑한 사람은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이러한 사실이 나의 자존감을 갉아먹으면  되지만  세상을 향해  어깨를 드높이며 가기에는  모습이 너무 하룻강아지처럼 보였습니다. 특히, 대학원을 염두하고 학업을 수행하는 나였기에 주변에 이런 분들이 많이 보였던  같습니다. 전공과 관련된 에세이나 프로젝트, 논문을 작성할  혹여나 나의 얕은 '지식의 ' 들킬까  온갖 어휘-미사여구에서 이번에는 현학적인 어휘-로 포장했던  같습니다. 무식이 들키기 싫었던 나의 '발악'이었던  같습니다. 조금은 뜬금없지만 4학년 학부 연구생 생활  박사님의 농담이 떠올라서 인용해보겠습니다.


논문 말투가 학위 경지에 오른 어르신 말투야. 완전


   이런 나의 현학적인 문장은 일상 속에도 침투한 것 같습니다. 한 번은 아해에게 밤기운을 빌려 편지를 써 보려고 했습니다. 한 자 한 자 써가는데 내 딴에는 또 잘 썼다고 흡족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편지를 쓰고 되돌아보니 결국 내가 하고 싶었던 말에 온갖 미사여구와 현학적인 표현을 곁들여 보낸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편지의 내용이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섭섭하다' 등 단순한 감정만 틱 쓰고 끝나면 그것은 굳이 편지가 아닌 대화로도 충분히 표현이 가능한 내용이 되는 것은 맞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글을 읽는 화자인 아해가 이 글을 빙빙 도는 미로처럼 느낀다면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현학적인 문장이 나쁘다는 내용은 아닙니다. 전문성이 필요할 때는 현학적인 문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러한 문장을 적재적소에 잘 써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현학적인 문장이 필요한 곳에는 아름다울 수 있지만 마치 식재료 중 마늘이 떠올랐습니다. 한 요리사의 이야기를 담은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먹는 고기-질이 평범하거나 냉장고와 냉동고에 오래 둬서 조금은 질이 떨어진 고기-는 냄새에 민감한 사람들이 먹으면 고기의 잡내가 날 수 있으니 마늘과 같은 향이 강한 식재료로 잡으면 되지만, 고급스러운 고기에서는 마늘의 향이 고기의 풍미를 건드릴 수 있기 때문에 함부로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의 글과 말이 고기라면 현학적인 표현은 마늘일 것입니다. 우스갯소리로 사족 하나 붙이자면 나는 마늘을 엄청 좋아합니다. 아해도 이 점은 알고 있어서 이 글을 읽는다면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짓지 않을까 싶습니다. 적당히 먹으면 달큼하니 좋은데 많이 집어먹으면 얼얼합니다. 결국 우리가 메인으로 먹는 건 고기입니다. 사랑하는 아해에게는 마늘이 듬뿍 들어가기보다는 본질을 바로 느낄 수 있는 고급진 고기 같은 표현으로 항상 대답하고 싶습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지금쯤 아해는 하루를 마치고 쉬고 있을 것 같습니다. 길었던 겨울이 끝나고 따뜻한 봄 햇살이 시작되는 나날이지만, 이를 기대하고 가벼운 옷을 새벽과 저녁을 보내면 많이 추운 날씨입니다. 춥지 않도록 따뜻한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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