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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높빛 Dec 28. 2021

아메리카노는 어떤 맛일까

서로를 향한 잣대는 서로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오늘도 항상 점심을 먹고 카페에 갑니다. 문득 '다른 것을 먹어야지'하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메뉴판을 쳐다봅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잠깐 보았던 통장 잔고를 떠올립니다. 물론 음료를 안 마실 정도로 박한 숫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저렴한 음료인 아메리카노를 고릅니다. 음료를 싸게 마시는 만큼 점심을 맛있게 먹은 것도 한몫했습니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십니다. 역시나 '콩 태운 물'은 씁쓸한 맛이 납니다.


    글을 읽는 아해는 커피를 잘 안 마십니다. 아해 몸이 카페인을 거부하는지 먹기만 하면 배가 아프다는 것은 아해가    것입니다. 아해는 항상 디카페인 음료를 선택해서 마십니다. 나는 커피에 길들여진지 오래라 오늘도 한결같이 아메리카노를 시킵니다. 예전에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이 떠도는 것이 생각나인용해봅니다.


어른들은  아메리카노랑 술을 먹어요?
인생보단 달거든.


   쓰고 보니 맞는  같기도 합니다. 아직 진짜 어른들이 보기에는 나도 인생  맛도   아해지만 살면서 어른들의 의지와 하루하루를 '버텨   흔적' 감탄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어른들에게 종종 나의 고민을 토로하면 그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때가 좋은 거야. 나중 되면 별 것 아니야.


    어른들은 미리 나의 시기를 겪어봤기에 항상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반응합니다.


    하루는 아해가 내게 고민을 털어놓을 때가 생각납니다. 아해 인생에도 씁쓸한 맛을 내는 구간이 있었습니다. 아해는 나를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아해의 고민이 혹여나  고민의 반도  미칠까 걱정을 하며 이야기의 운을 떼고는 합니다. 사실 나는 크게 개의치 않아했지만 앞서 언급한 어른들과 나의 이야기하고 결이 같아 떠올랐습니다. 오늘은 마음가짐(멘탈) 상대성 대해 짧게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사람은 모두 평등합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모두 다른 출발선 상에 존재합니다. 같은 위치에 있지만 다들 저마다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우리 눈높이에서 상대를 바라봅니다. 가끔 그러한 눈높이는 상대의 슬픔을 짓밟는 용도로 쓰이는  같습니다. "나도 이만큼 아프고 힘들었으니 너도 당해보고, 그리고 이런 건   아니니 징징대지 마라." 라는 느낌으로 말입니다.


    나는 사회집단에서 나름 적응을 잘하는 성격을 가졌던지라 무의식 속에 그러한 감정-남의 고민과 힘듦을 폄하하고 시답지 않은 일로 치부하는 감정-을 가졌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았습니다. 생각해보니 나만의 잣대를 상대에게 들이민 일이 없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나는 이만큼이나 달려왔고, 이런 곳에도 적응했는데 왜 이 사람은 그러지 못하고 힘들어할까라는 생각을 안 하면 그것은 거짓말 일 것입니다. 결국 내 지인 누군가에게는 나의 잣대가 또 다른 상처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일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복무 시절의 일인데 내게는 같은 소대  선임이 있었습니다. 으레 부대 별로 분위기가 다르다지만 내가 갔던 부대는 뒷담화와 정치질이 일상이던 곳이었습니다.  선임은 선하고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였는데   길게 휴가를 다녀온 후로 "힘들다." 말을 입에 달고 다녔습니다. 너도 힘들고 나도 힘든 군대에서 힘들다는 표현은 금기에 가까웠습니다. 이런 모습을  다른 선임들은 그에게 상병 되니 군기가 빠졌다며 휴가도 다녀오고 훈련도   빠졌는데 투덜거리기만 엄청한다며 뒷담을 까기 일수였습니다. 심지어 간부도 정신  차리고 의지가 없다며  마디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나는 선임의  이야기를 선임과 함께 근무하던 중에 알았습니다. 그의 어머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사실과 경제적인 고민이 많다는 사실을 나에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이제보면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는 매우  짐이었을 것입니다. 상병을 달고도 11개월이라는 기간을 남아서 해야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야기를 들은 직후, 상대방의 고민에 대응하여 이야기를 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졌습니다. 처음에 선임들도 이러한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그의 들다는 표현을 투덜거림으로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만약에 뒷이야기를 알았다면 조금은 다른 반응을 보였을 수도 있겠지만 결국 이들도 피상적으로 바라보고 자신만의 잣대를 들이민 셈입니다.


   물론 내 이야기 속 선임은 정말로 힘들만한 이유가 있었던 케이스였습니다. 혹자는 다른 케이스-단지 일상 속에 존재하는 고민에 대해 힘들어하는 케이스-에 대해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남들과 똑같은 상황인데 징징대는  본인 잘못 아닌가?


    과연 정말 그 사람이 남들과 똑같은 상황에 처해있는지 우리는 모르며, 설령 그렇다 하여도 그 사람의 성향, 가치관, 신념, 경험에 따라 그것은 쉬운 상황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마음가짐은 상대의 마음가짐을 괴롭히는 행위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다섯  꼬맹이의 고민과 열아홉  수험생의 고민, 그리고 스물아홉  직장인의 고민. 어느 것이 무겁고 힘들까라는 질문에 우리는 함부로 답할  없습니다. 느끼는 정도도,  뒤의 사연도 나는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요즘 인생을 살다 보면 서로의 잣대를 상대에게 들이미는 경우가 많은  아 조금은 씁쓸합니다. 마치 지금 내가 마시고 있는 아메리카노처럼 말입니다. 나부터라도 잣대는 오직  스스로에게 들이밀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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