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재건축, 도시재생의 차이는 무엇일까?
2019년 11월, MBC의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이하 놀뭐)에서 유재석님은 '유산슬'이라는 부캐로 활동하며 트로트 열풍을 일으켰다. 놀뭐의 세계관에서 유산슬님은 유재석님과 엄연히 다른 인물이다. 굴착기 소리와 유사한 인트로가 귀를 홀리게 되고 이어 흥겨운 뽕짝 리듬이 귀를 즐겁게 한다. 덕분에 유산슬님은 2019년 MBC 연예대상 신인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게 되었다. 이 노래를 한 번 들으면 유산슬님의 훅이 귀를 감싼다.
싹~ 다~ 갈아 엎어주세요~
본 노래에서 화자는 금싸라기 같은 화자의 빈 마음 속에 청자(듣는 이)가 화자의 마음으로 갈 수 있는 이정표와 마음을 이어줄 수 있는 전철역, 그리고 빈 마음을 채워줄 수 있도록 재개발 해주기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쉽게 풀어쓰자면 "내 마음을 너로 채워줘"가 될 것이다.
실제로 도시공학의 관점에서 재개발은 비어 있는 곳을 채워주지는 않는다. 다시 재(再)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이미 개발된 곳을 다시 개발한다는 의미로 쓰이기 때문에 유산슬님은 어쩌면 사랑의 재개발보다는 사랑의 신도시를 짓고 있는게 맞을지도 모른다.
사실 뉴스에서 우리는 재개발이라는 용어를 많이 접하게 된다. 그러나 대체로 재개발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소식보다 부정적인 소식으로 많이 접한다. 재개발 철거민과 시공사 간의 갈등, 재개발 소식을 먼저 들어 투기를 시도하는 투기꾼 등에 대한 이야기로 뉴스는 가득하다. 한편, 재개발과 함께 재건축이라는 용어도 뉴스에서 자주 접하게 된다. 40년 된 낡은 아파트가 하루 아침에 삐까뻔쩍한 고급 아파트로 탈바꿈하는 과정은 상전벽해라는 말이 사실이라고 믿겨질 정도다. 이러한 재개발과 재건축의 의도는 좋지만 이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들리는 잡음 또한 무시할 수 없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시재생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도시재생은 재개발 문제점을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일까? 이에 대해서는 학자나 정치가들 간 이견 차가 좁혀지지 않고, 사례 별로 상이한 결과를 낳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서 큰 논쟁거리이다. 어떤 곳은 재개발, 어떤 곳은 재건축, 또 어떤 곳은 도시재생이라는 용어로 도시공간을 탈바꿈 하는 과정을 겪는다. 혼동이 될 수도 있는 용어지만 차이를 알고나면 이들의 차이는 명백할 수도 있다. 이번 챕터에서는 도시재생과 재개발, 재건축의 차이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사랑의 재개발>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처음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도시재생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어떻게 보면 핫한 이슈임과 동시에 자세히 뜯어보면 복잡한(?) 출생 배경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기도 하며, 재개발과 재건축을 함께 설명해줄 수 있는 중요한 녀석이기 때문이다.
도시재생을 알려면 우선 재생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우리가 어렸을 때 재생이라는 용어를 접할 수 있는 곳은 두 곳이다. 바로 리모컨과 실험관찰. 리모컨의 재생(Play) 버튼과 초등학교 실험관찰 교과서 속 플라나리아의 재생(Regeneration)은 알고보면 같은 뜻이지만 쓰임새가 달라 많이 혼동되었다. 그렇다면 사전에서는 재생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알아보자.
재생(再生)
1. 죽게 되었다 다시 살아남
2. 타락하거나 희망이 없어졌던 사람이 다시 올바른 길을 찾아 살아감
3. 못 쓰는 물건을 가공하여 다시 쓰게 함
앞에 도시라는 수식어가 붙은 도시재생은 그럼 무엇일까? 말 그대로이다! 죽어가는 도시가 다시 살아나거나, 못 쓰는 도시를 다시 쓸 수 있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별 뜻이 없다. 이제 조금 학술적으로 풀어서 설명하자면 쇠퇴한 도시지역을 경제, 사회, 물리, 환경 등 다양한 요소로 활력을 도입하는 일련의 개발 과정이다. 위처럼 죽어가는 도시를 살린다는 식으로 서술형 답안을 쓰면 대학 교수님(또는 채점을 담당하는 대학원생)이 흐뭇한 표정으로 빗살무늬를 그어줄 수도 있으니 후자의 정의를 참고하면 좋다.
앞서 도시를 생명체로 언급하였는데, 예전 도시의 평균연령은 그리 높지가 않았다. 사람처럼 말이다. 의료기술이 부족하고, 위생 시설이 부족했던 옛날에는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30~40대였다는 것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도시도 기반시설이 부족하고,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가 없었기 때문에 도시의 노화는 빠르게 찾아 올 수 밖에 없었다.
예전에는 도시재생의 개념이 없었다. 도시라는 개념 자체에 부합하는 도시도 많이 없었을 뿐더러, 전쟁, 기근, 질병, 반란, 재해 등 다양한 요소들이 도시를 알아서 없애주었기 때문이다. 즉, 재생할 틈도 없이 죽여놨기 때문에 폐허에 새 건물을 짓는 것 말고는 크게 없었다. 찬란한 영광을 자랑하던 신라의 경주와 백제의 부여를 보면서 우리는 옛 유적의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지만 사실 그 터들은 도시의 뼛조각을 관람하는 것과 같다.
오늘날의 도시와 유사한 구조로 활동하는 도시는 산업혁명 이후에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도시가 나이를 먹기 시작한다. 대표적으로 영국(노동자)과 미국(이민자)의 도시들은 외부의 유입으로 인해 골머리를 많이 앓았다. 도시가 나이를 먹어가면 두드러지게 보이는 증상이 도시 서비스의 부족이다. 쉽게 표현하면 도시의 미관과 환경이 안 좋아지며, 살 수 있는 집과 걸을 수 있는 길이 부족하고, 강도를 잡을 경찰이 부족하다는 의미이다.
군대를 다녀 온 군필자나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라면 취사장(급식실)에서 먹고 싶은 반찬을 못 먹거나 적게 먹는 경우가 종종 있다. 도시의 서비스는 맛있는 반찬과 같다.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리가 맛있는 반찬을 적게 먹을 확률이 높아진다. 그렇다면 이렇게 못 먹은 군인(학생)들은 어디로 갈까? 매점이다. 매점을 가는 사람은 '돈'이 있는 사람이다. 실제로 산업혁명 시대의 도시들도 이러한 서비스의 불평등을 피하고자 돈이 있는 중산층들은 도시 바깥 근교에서 살기를 희망하였다. 중산층들이 삼삼오오 모여 풍족한 도시 서비스를 누리는 과정을 도시공학에서는 교외화(Suburbanization)라고 부른다. 다시 도시가 나이를 먹는 과정으로 돌아와서 도시의 노화 요인(=도시가 쇠퇴하는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다. 아래의 예시들에 모든 케이스가 전부 속하지는 않겠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원인이 있다.
1) 우선 산업구조의 변화가 있을 것이다. 먹거리의 변화는 도시경제를 붕괴시키기 때문이다. 미국의 디트로이트자동차 산업, 한국의 태백, 정선광업 등이 이런 예 중 하나이다.
2) 기반시설과 주거지의 노후화도 큰 이유가 된다. 오랜기간 존재한 도시이기 때문에 기반시설과 주거가 다 노후화된 곳인 경우에도 도시가 쇠퇴할 수 있다. 소위 원도심에서 이런 장면을 잘 볼 수 있는데, 서울을 예로 들자면 영등포와 종로 일대에 있는 노후화된 동네(물론 힙한 도시로 알려진 동네들이 대부분이다)들을 예로 들 수 있다.
3) 인구감소와 고령화를 들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의 지방도시들이 해당 사유에 들 수 있는데 1번, 2번 이유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같이 묶이기도 한다. 평균연령이 높아지면 도시의 노동력이 부족해지고, 자연스레 도시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지방세가 높아지며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으러 나가고 노인만 남게 되어 도시가 나이를 먹게 되는 것이다.
4) 이와 반대로 인구 과밀도 원인이 될 수 있다. 도시가 도시의 규모에 비해 많은 인구를 수용하면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며, 도시의 수준이 하락하게 된다. 마치 한 사람 혼자 쓴 지우개는 상대적으로 멀끔하지만 여러 명이 돌려 쓴 지우개는 연필로 뻥뻥 구멍 뚫은 흔적과 연필자국, 벅벅 지우느라 생긴 균열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대표적으로 멕시코와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지역의 개발도상국 도시에서 볼 수 있는 요인이다.
사실 도시재생의 용어는 도시재개발과 차이가 없다. 영어로 도시재생도 재개발도 Urban renewal(영국에서는 Urban regeneration, 미국에서는 Urban redevelopment)로 부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산업혁명 이후의 불량주거지 및 기반시설을 개선하는 것을 1세대 도시재개발이자 도시재생으로 볼 수 있을 것(학술적으로 구분하지는 않았다! 나만의 기준이다. 어디가서 1세대 도시 재개발이라고 이야기하면 교수님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 것이다!)이다. 도시가 쇠퇴하는 요인 2번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오스망(Georges-Eugène Haussmann, 1809~1891)의 파리 개조사업이 대표적인 예시이며, 19세기~20세기 초에 일어난 서유럽, 미주 지역의 불량주거지 개선 및 도시미관정비가 이 범주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이어서 약 반 세기 동안 도시 재개발 이야기는 들어볼 수 없다. 두 번의 전쟁으로 도시가 알아서 죽었기 때문이다. 정말 그도 그럴 것이 제1차 세계대전(1914~1919)과 제 2차 세계대전(1937~1945)으로 인하여 불량 주거지를 폭격기와 탱크, 곡사포로 부수고, 사람들이 도망다니며 알아서 도태되었기 때문이다. 두 번의 전쟁 이후로 유럽은 불바다와 잿더미로 바뀌었다. 전쟁은 유럽의 공간구조 뿐 아니라 사회적인 구조도 변화(이는 신흥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도 마찬가지)시켰다.
특히 산업의 구조가 많이 바뀌었다. 유럽의 경우는 많은 식민지를 독립시키다보니 식민지에서 받던 원료를 이용한 산업이 도태되기 시작하였다. 대표적인 도시가 영국의 리버풀. 항만, 해운을 위주로 먹고 살던 영국의 리버풀은 식민지에서 원료를 수입하던 전초 기지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그 역할이 부재하게 되어 쇠퇴하였다. 또한, 신흥 국가들도 식민제국이 세운 도시들이 하나 둘 몰락하기도 하였는데 국내의 군산시가 대표적인 예이다. 일제 강점기(1910~1945) 때 일본으로 곡물을 반출하기 위해 쓰인 항구도시인 군산은 해방 이후로 부산과 인천에 밀려 쇠퇴하기 시작하였고, 지금도 우리나라의 대외무역은 대부분 부산과 인천에서 담당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전쟁이 끝나고 안정이 되기 때문에 인구가 급증한다. 소위 베이비 붐은 전후세대(미국은 1950년대, 대한민국은 1950년대말부터 60년대)를 의미한다. 미국과 일본의 교외화와 재개발은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며 시작되었는데 이는 도시가 쇠퇴하는 4번째 요인에 대응하는 재개발로 2세대 도시재개발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대표적인 사례가 로버트 모제스(Robert Mozes, 1888~1981)의 전후 재개발, 영국의 도크랜드(Dockland) 개발, 일본의 롯본기(일본어) 개발 등이 있다. 특히 로버트 모제스의 경우에는 고속도로와 기반시설을 무자비하게 두었다. 불도저와 같이 거침없이 기반시설을 설치하였는데, 소수민족과 흑인, 유색인종이 사는 주거지를 중심으로 이들을 강제로 쫓아내어 기반시설을 지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위의 사례와 같이 전후시대 때는 2세대 도시재개발까지만 해도 전면재개발이 대세였다. 전면재개발은 남김없이 싹 다 갈아엎는 <사랑의 재개발>의 재개발과 유사한 재개발을 의미하며, 이 챕터에서 이야기하는 재개발의 좁은 정의에 부합되는 재개발이다. 불량주거지를 없애고, 새로운 활력을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재개발 방식은 우리나라의 초기 도시계획에도 유사하게 적용이 된다. 당시 정부에서 새로운 서울을 건설하고자 서울에 있는 불량주거지를 밀어내고, 새로 건물을 짓는 방식으로 진행했기 때문이다.
시대는 흘러 1980년대 이후부터 아시아 신흥국가들이 발전하면서 경제의 헤게모니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산업의 패권을 쥐던 유럽과 미국의 도시들이 하나, 둘 값싼 노동력으로 승부하는 일본(일본도 사실 얼마안가 한국에게 바로 넘겨주었다), 한국, 대만 등의 아시아 국가의 도시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이 때 나온 말이 아시아의 네 마리 용(Four Asian dragons -대한민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 이때부터 산업의 주도권을 빼앗긴 도시들이 하나 둘 쇠퇴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앞서 언급한 도시가 나이를 먹는 요인 첫번째와 세번째 사례에 속하는 경우다.
일반적으로 1차 산업의 경우에는 도시에서 진행할 수 있는 산업(농업, 어업, 임업, 축산업 등)이 아니기 때문에 2차 산업(공업, 광업, 건설업, 제조업 등)으로 발달했다가 쇠퇴한 도시들이 탄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동차 산업을 예로 들면 미국의 디트로이트(Detroit)에서 일본의 도요타(豊田)로 일본의 도요타에서 한국의 울산으로 이동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탄생한 쇠퇴한 도시들의 경우에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진행이 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요소인 문화, 신(新) 산업를 도시에 삽입해서 도시의 새 원동력을 주는 법이다. 이를 3세대 도시재개발이자 오늘날 우리가 도시재생이라고 부르는 재개발로 칭할 수 있겠다. 길고 긴 이야기지만 여기까지가 도시재생이 생겨난 배경이자 도시재개발의 간략한 역사다.
그렇다면 도시재생, 도시재개발, 도시재건축의 차이는 무엇일까 ? 앞서 도시재개발과 도시재생은 차이가 없다고 설명하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 사정이 조금 다르다. 사실 도시재생과 도시재개발의 차이를 두는 것은 우리나라 제도적 특성 때문에 그런 것이다. 우선 도시재생지원법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제2조(정의)
1. "도시재생"이란 인구의 감소, 산업구조의 변화,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 주거환경의 노후화 등으로 쇠퇴하는 도시를 지역역량의 강화, 새로운 기능의 도입·창출 및 지역자원의 활용을 통하여 경제적·사회적·물리적·환경적으로 활성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즉, 전면재개발의 개념보다는 3세대 도시재개발처럼 도시에 새로운 원동력을 주거나 개선을 통한 사업을 의미하는 바가 크다. 도시공학에서는 우리나라의 도시재생을 보전재개발 또는 수복재개발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보전재개발은 현재 양호한 주거환경을 갖추고 있으나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위태위태 할 것 같은 도시들에 한하여 적용되는 재개발로 북촌과 서촌의 한옥마을이나 부산 감천문화마을을 보전재개발로 볼 수 있다. 한옥과 60년대 가옥의 원형 그대로를 보존하되, 지속적인 개량과 관리를 지속하는 케이스이다.
한편, 수복재개발은 도시의 상태가 양호하지 않으나 다 부수지 않고 조금씩 개량과 개선으로 재개발을 이뤄내는 방식이다.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도시들에 한하여 적용하는 재개발로 해방 이후 생긴 우리나라의 도시들에 대한 도시재생은 이렇게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무너진 담과 길을 보수하고, 낡은 주민센터를 '커뮤니티 센터'라는 으리으리한 이름으로 지어주고, 관광객이 올 법한 길은 'OO길'과 같은 고유명사를 새로 불어 넣어주는 식의 방식이 수복재개발에 들어갈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도시재개발과 도시재건축은 무슨 차이일까 ? 이는 도시 밎 주거환경정비법을 보면 알 수 있다.
제2조(정의)
나. 재개발사업: 정비기반시설이 열악하고 노후ㆍ불량건축물이 밀집한 지역에서 주거환경을 개선하거나 상업지역ㆍ공업지역 등에서 도시기능의 회복 및 상권활성화 등을 위하여 도시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 이 경우 다음 요건을 모두 갖추어 시행하는 재개발사업을 “공공재개발사업”이라 한다.
다. 재건축사업: 정비기반시설은 양호하나 노후ㆍ불량건축물에 해당하는 공동주택이 밀집한 지역에서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 이 경우 다음 요건을 모두 갖추어 시행하는 재건축사업을 “공공재건축사업”이라 한다.
재건축과 재개발의 차이는 기반시설(도로, 수도, 전기, 철도 등)의 양호 여부이다. 쉽게 말해 도로도 엉망, 집도 엉망인데 싹 갈아 엎고 싶으면 도시재개발이 되는 것이고, 도로는 괜찮은 반면 집이 엉망인데 싹 갈고 싶으면 재건축이 되는 것이다.
다시 도시재생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우리나라에서는 으레 덜 부수고, 개량하면 도시재생이고, 다 부숴버리면 재개발이다라는 느낌이 강하지만 사실 도시재생도 부술 건 부수기 때문에 완벽한 차이점은 아니다. 혹자는 도시재생의 큰 장점이자 도시재개발과의 차이점으로 기존 원주민을 쫓아내지 않고, 원주민과의 협치를 이뤄내며 진행할 수 있는 재개발 사업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도 따지고 보면 후술할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발생하면 원주민들도 쫓겨나기 때문에 이 명제도 부합되지 않을 수 있지만 이 요소는 도시재개발과는 다른 중요한 요소일 수 있다.
도시재개발과 도시재생을 나누는 기준은 앞서 말한 법제적 기준(어떤 법에 의해 사업이 시행되는지)이 1순위지만 기본적으로 최대한으로 원주민의 생활과 자산을 보호하고 개선해주고,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주는 작업으로 풀어쓰면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리 겸 쉬운 표현으로 설명하자면 우리의 아침 밥상에서 밥을 기반시설, 반찬을 건축물로 생각해보자. 내 아침 메뉴는 쉰 밥에 냉장고에 언제부터 묵혔는지 모를 김치라고 가정하자. 도시재개발은 쉰 밥을 쌀밥으로 바꾸고, 김치를 소시지야채볶음으로 바꾸는 느낌일 것이다. 한편, 도시재건축은 내가 먹고 있는 밥은 갓 지은 쌀밥에 김치인데, 반찬만 소시지 야채볶음으로 바꾸는 느낌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도시재생은 쉰밥과 김치를 같이 들들 볶고 위에 주먹밥 시즈닝을 뿌린 김치볶음밥이 될 것이다. 기존 밥상에다가 양념만 좀 더 곁들일 것인지, 밥과 반찬을 다 새로 리셋할 것인지, 반찬만 새로 바꿀 것인지의 차이다.
앞서 도시재생의 개념이 국내에서는 조금 다르게 시작되었다고 설명을 했는데 도시재생의 시작이 언제부터인지를 알아보는 것이 도시재생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사실 학자마다 관점도 다르기 때문에 정답은 없다. 우선 나는 학부 시절 나를 가르치신 은사님의 입장에 곁들여 나의 입장을 서술하고자 한다.
우선 LH(한국토지주택공사) 내에서 도시재생사업단이 2007년에 출범하여 관련 연구과제를 실시해 2014년에 도시재생과 관련된 법률 제정과 함께 사업지를 지정하였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은 2007년 혹은 2014년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를 가르치시던 은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2학년 2학기 도시 설계 스튜디오 프로젝트 주제가 도시재생이었는데 한국 도시재생의 시작은 용산 4구역 철거현장 화재 사건(용산 참사)이라고 말씀하셨다.
용산 4구역 철거현장 화재사건은 재개발 보상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철거민, 철거민연합과 경찰과의 대응해서 인명사고가 난 사건이다. 이것에 대한 정치적인 해석은 최대한 자제하고 도시공학의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소위 '용역 깡패'들에 의해 원주민들이 내쫓아지거나 낮은 보상금을 받고 일이 마무리 되는 것에 대해 근본적으로 원주민들의 생존권을 보장해주지 못한 행위의 결과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대한민국의 법은 원주민들을 그리 잘 보장해주지는 못한다고 들었다.
이런 과정은 결국 도시계획을 진행하는 단계에서 폭력과 강제가 수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선 불합리한 절차를 개선하기 위해서 도입된 것이 바로 도시재생이다. 도시재생은 주민의 의견을 반영하여 도시를 개선하기 때문에 앞선 시장원리의 전면재개발하고는 차이가 있다.
가진 것이라고는 딸랑 도시공학 학사인 나는 도시재생의 시작을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사태'로 생각한다. 조금 여담이지만 학부 시절, 신입생 후배들이 대학에 들어오면 사는 곳과 이것저것 이야기를 곁들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사이에 입시, 입결이나 이것저것 이야기로 말꼬를 트는 경우가 비일비재 했다. 주어진 학과에 만족하며 사는 이도 있지만 개인 사정이나 학교 커뮤니티에 학과 사이에서 우리가 다니는 도시공학과가 '입결 낮은 학과'로 후려쳐지는 험한 멘트로 속상해 하는 친구들도 있다. 그러면서 왜 우리 학과가 입결이 떨어졌는지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나온다. 그럴 때 나는 내가 입학 했을 때 선배 중 한 분이 우리 학과 같은 경우는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나름 이과 입시에서 학교내 중위권에 위치해 있던 학과였는데 2008년 경제위기(대침체, Great Recession) 이후로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다는 꽤 흥미로운 이야기를 내게 해준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나의 주장을 더 확고하게 하기 위해 건설 계열 학과(건도토, 건축, 도시, 토목)들이 전화기(전자/전기, 화학, 기계)에 밀리게 된 제일 큰 변환점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IMF 때는 건설 계열 뿐만 아니라 모든 공대가 다 힘들었던 시절이었으며, 교대, 사범대, 의대 같은 안정적인 직군이 수직상승을 했던 시기였다. 높은 도시화율의 경우에는 사실 지속적인 재개발과 재건축을 실시하는 우리나라의 도시로서는 조금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인정할만한 합리적인 근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90년대 중후반을 기점으로 도시공학과가 생긴 대학들도 꽤나 많은 것이 그 근거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대한민국의 부동산 시장도 같이 난리가 났다. 서울특별시의 경우, 뉴타운 개발에 적신호가 켜졌다. 2000년대 초반 무리하게 벌리던 뉴타운 사업들은 개발의 수익성이 떨어지게 되니 개발을 하나 둘 씩 멈추기 시작한다. 이들은 예산 부족으로 하나, 둘 사업지구 해제 수준을 맞는다. 이 중 해제된 뉴타운 지구가 창신, 숭인 뉴타운. 이 곳은 고도제한도 있어서 주민들의 반대도 높은 지역이었다. 서울시는 이 곳을 해제하고, 도시재생 대상지로 제일 먼저 선정하였다.
종합적으로 정리해보면 2000년대 이후 도시공간의 노후화로 인해 학술적, 정책적인 도시재생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으며, 2000년대 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부동산 시장 둔화에 따른 뉴타운 지구 해제, 용산 참사 사태로 인하여 기존의 폭력적이고 물리적인 도시재개발에 대한 재고 필요 여론이 증가한 것이 우리나라 도시재생이 생기게 된 직접적인 배경이지 않을까 싶다.
창신, 숭인 도시재생 이후 서울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여러 도시에서 도시재생사업이 시작되었다. 초기의 도시재생사업은 도시미관 개선과도 연관이 깊었으며, 지역의 예술가, 자원봉사자들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도시공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도시재생'을 떠올리게 되면 제일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벽화다. 감천문화마을, 이화 벽화마을, 동피랑 벽화마을, 염리동 소금길 등 초창기 도시재생이 자생적으로 이뤄져 성공사례로 소문난 곳에 공통적으로 있던 도시 요소는 바로 벽화였다.
대한민국에서 벽화를 언제부터 그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1990년대말부터 2000년대 초중반 지역의 예술가, 자원봉사자들이 벽지 산간이나 달동네에 벽화를 그렸다는 보도자료들이 있다. 벽화는 2000년대 말부터 두 가지 사건 때문에 전국 여러 마을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하나는 2006년 문화관광부(現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관한 소외지역 공공미술사업이었고, 다른 하나는 당시 KBS의 대표 주말 예능이었던 <1박2일>이다.
2006년 문화관광부는 소외지역 공공미술사업을 통해 공공미술을 통해 소외지역의 미관을 개선하고자 하였다. 당시에도 이미 몇몇 마을은 자체적으로 벽화를 그리고 있었으며, 이 때 생겨난 벽화가 이화 벽화마을이었다. 당시 이렇게 생긴 벽화들은 입소문(대체로 싸이월드)을 타고 관광객을 조용히 부르곤 했었는데 2010년 <1박2일>에서 이승기님이 이 이화마을에서 촬영한 장면이 삽시간에 실시간 검색어를 불태웠다. 그 인기는 안타깝게도 당시 그려진 벽화를 방영일 기준 2주일 만에 지우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매력을 이끄는 벽화는 2010년대 도시재생사업과 시너지를 일으키며 전국 방방곡곡 달동네와 노후주거지에서 보였으며, 오늘날에는 K-도시재생의 간판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초창기 이러한 도시재생 대상지역에서 벽화가 이목을 끈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도시재생과 관련된 키워드인 CPTED(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 셉티드)에 대해 알아보아야 한다. 한글로 잘 풀어쓰면 범죄 예방 환경 설계로 표현할 수 있다. 학제 간 연구적 관점에서 도시공학, 건축, 심리, 범죄학, 경제학, 공간디자인, 통계학 등 다양한 학문들이 얽힌 학문 중 하나다.
CPTED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를 살펴보면 미국과 캐나다의 유명한 저널리스트이자 어떻게보면 도시공학에 큰 영향을 끼친 도시계획가인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의 책인 <위대한 미국 도시들의 죽음과 삶>에서 처음 언급된다. 제인 제이콥스는 책에서 도시가 활력을 지니려면 "가로 위에 많은 사람이 다니게 하기", "오래된 건물을 그대로 두기", "여러 토지 용도를 혼합하기"을 제안하여 "거리의 눈(The eyes of Street)"이 많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CPTED의 개념과 유사하다.
물론 여기서 CPTED라는 말이 등장한 것은 아니고, 이후 오스카 뉴먼(Oscar Newmon)에 의해서 정의가 된 용어다.미국에서는 7~80년대 CPTED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 되었는데 이 당시 미국 상황을 보면 조금 이해가 될 것이다. 베트남 전쟁의 패전, 오일 쇼크랑 여러 악재들이 겹치며 상대적으로 부진을 겪었고, 인종 갈등 문제도 해소되지 않은 복잡한 형국이었다.
<깨친 유리창 이론 실험>, 80년대 뉴욕 지하철의 그래피티 제거 작업도 이 시기에 등장한 실험이나 도시 정책 중 하나다. 도시공학, 건축, 공간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CPTED를 배우면서 깨진 유리창 이론을 한 번 듣고 가는데, 여담이지만 국내에서는 으레 깨진 유리창 이론 실험이 잘못 알려지곤 했다.
한 쪽은 그대로 차를 두고, 다른 한 쪽은 보닛을 열어둔 채로 뒀는데, 그래도 둔 차는 아무런 손상도 없는 반면 다른 차는 이곳저곳 손상된 흔적이 많았다.
라는 식으로 말이다. 실제 실험은 범죄율이 높은 도시와, 부유한 도시 두 도시로 나누어 변인을 모두 통제한 상태에서 실험을 진행했다. 범죄율이 높은 도시에서는 자동차가 개판이 나고, 부유한 도시는 멀쩡했는데, 이 부유한 도시에서도 유리창을 연구자가 망치로 부수자 그 뒤로는 너도나도 신나게 차에 손상을 가했다고 한다. 조금 더 이 실험을 해석하자면 무질서가 만연한 곳(범죄율이 높은 도시)에서의 실험 결과야 예측 가능한 범주였으나, 모든 게 질서 정연하나 사소한 무질서가 발생한 곳(부유한 도시에 주차된 차의 깨진 유리창) 또한 사소한 무질서 하나가 결국 무질서가 만연한 곳과 유사한 결과를 도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 그렇다면 이 것을 도시적 요소에서 바라보도록 하자. 도시에서 하자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 ? 방치된 지하철 역의 화장실, 폐자재들이 널브러진 공원 광장, 공사가 중단된 재건축 현장, 누가 버리고 간 빈 집은 노숙자나 범죄자들이 기거할 수 있거나 숨을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한다. 이러한 요소들이 아마 도시의 깨진 유리창이 될 것이다. 도시공간의 깨진 유리창을 개선하고자 논의 된 것이 바로 CPTED인 것이다. 그러면 벽화를 그리고, 길을 이쁘게 만들고, 담장을 허무는 등의 행위가 CPTED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앞선 제인 제이콥스가 주장한 거리의 눈이다. 즉, 거리에 많은 사람들의 접촉이 많아지면 서로가 서로의 경찰이 되어 도시의 범죄는 줄어드는 것이 CPTED의 기본적인 방향이다. 한국의 일반적인 도시재생에서 진행하는 작업을 간단하게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벽화 그리기 / 거리미화 → 보행환경개선 → 보행자 증가
담장 허물기 / 가로수 정비 / CCTV 및 조명 → 사각지대 제거
유흥업소 제거 및 편의점 배치 → 건축 용도에 따른 간접 효과
물론 도시공학도의 눈으로 대한민국의 도시재생 현황을 보면 아쉬운 점이 많다. 학교에서도 관련 강좌를 수강하면 똑같은 도시재생(CCTV 설치, 조명 설치, 벽화 그리기, 박물관 세우기 등)에 대해 아쉬워 하시는 교수님들의 말씀을 들어볼 수 있었다. 나는 이러한 원인이 관 주도의 사업으로 대부분의 도시재생이 시작되었다는 점과 아직 우리나라에서 거버넌스(Governance)의 개념이 확립되지 않아서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지만 서양에서는 도시재생 = 도시재개발이 같은 개념인데 으레 대한민국에서는 도시재생이 도시재개발의 대체재로 표현된다. 경제 위기로 재개발의 한계에 부딪혀 나온 개념인데 이를 또 재개발과 다르게 '도시적으로 표현'해보고자 공무원, 전문가들의 숫자놀음으로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물론 공무원, 전문가들은 주민들보다 전문성이 뛰어나다. 나보다도 뛰어나신 분들이고, 여러 사업지구를 통한 정책적 통찰(Political Insight)이 주민들보다 높을 것이다. 그들은 이에 따른 합리적인 정책을 내놓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화마을에서 벽화를 그렸는데 관광객이 X.X% 증가하더라.", "소금길에 CCTV를 설치했는데 범죄율이 Y.Y% 감소하더라."라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업 대상지에 솔루션을 때려박았을 것이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 절대 기본적인 병명으로 치료하지 않는다. 이 환자가 어떤 선천적 질환을 앓았는지, 무슨 약을 복용하는지, 유전적 내력은 없는지를 검토하고 알맞은 약과 치료를 처방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치료 방안일 것이다. 도시도 이와 같다. 아무리 같은 규모, 같은 문제점을 가진다하여도, 이 도시가 어떠한 역사성과 문화성을 가지고, 이 지역 인근에서 나오는 파급효과는 무엇인지 살펴보고, 쇠퇴한 산업이나 이 지역에 알맞은 산업을 파악했어야 했다. 그리고 이를 잘 아는 것은 20년 동안 이 지역에서 거주한, 다른 말로는 지역적 통찰(Local insight)이 강한 주민들일 것이다.
그렇지만 주민들을 잘 참여시키는데에는 한계가 있다. 누군가는 이 지역의 개선을 바라고 열정적으로 참여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누군가는 개선을 통한 경제적인 수익을 노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니 말이다. 물론 정부와 지자체가 모르는 것은 아니긴 하지만, 예산 집행에 있어 서류상으로 주민이나 전문가를 배치하고 이들이 유명무실해지는 경우도 허다할 뿐더러 아직은 국내, 특히 이러한 도시개발 분야에 거버넌스 개념이 도입이 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지금의 도시재생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고 생각한다.
솔직하게 말하면 지역의 특색을 찾기는 정말 어렵다. 비록 나는 학생과제로 송중동을 4번 답사하며 설계를 수행했지만, 으레 대한민국의 낙후된 도시들이 그렇듯 모든 동네가 역에서 조금은 떨어진 구릉지에 세워졌고, 붉은 벽돌집에 좁은 골목을 가지고 있고, 대로변에는 정렬치 못한 상가들이 즐비하다. 이러한 대상지들에게 하나하나 특색을 찾기도 힘들며, 아니면 해당 지역의 특색이 이미 대한민국에서 사장된 산업(봉제, 금속, 전자제품 등을 비롯한 경공업)이라 종사자가 없거나 미미한데도 불구하고 관련 산업으로 꾸역꾸역 도시재생을 진행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러한 관 주도의 도시재생과 아직 여물지 못한 거버넌스는 공교롭게도 애매한 상황만 낳는 경우가 있다. 바로 도시재생 사업은 사업대로 수행했는데, 주민이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다. 한 번은 전역하고 아는 선배의 논문을 돕기 위해 해방촌에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도시계획, 설계 쪽으로 진로를 틀면 설문조사를 많이 한다. 친구와 함께 2인 1조로 다녔는데 지금 생각하면 사이비 단체일까 싶어서 내 소속을 2초안에 후다닥 대답했던 경험이 있었다.
조사를 2번 수행하다 한 번은 지역에 오래 사신 할머니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그 분이 하셨던 이야기가 조금은 내 기억 속에 남았다. 당신은 "CCTV 있고, 뭐 길 새로 깔고 이런 건 다 좋은데 여기 오는 사람(관광객)을 위한 게 너무 많아."라고 말씀하셨고,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이해가 가기도 했다. 당시 해방촌은 젠트리피케이션 이야기가 슬금슬금 나오던 시기였고, 신흥시장이나 초입에 드문드문 세워진 가게에는 젊은이들이 드글거렸으니 말이다. 언덕배기에 거주하시던 할머니, 할아버지 입장에서는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아 있으셨겠다 하는 생각을 했었다.
역사성과 특색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라면 분명 해당 특성을 가지고 발전 가능성이 있을테지만 아닌 지역에 무조건적으로 도시재생을 불어넣을 필요는 없다. 억지스러운 역사와 억지스러운 특색은 오히려 도시의 슬럼을 야기할 뿐이다. 도시재생의 방향성을 위해 초기 도시재생사업에서 안타까운 점을 찾자면,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개선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해당 도시들이 왜 낙후되었는지를 찾으면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을텐데 하나는 산업이 쇠퇴해서고, 다른 하나는 그 도시 자체가 구릉지에 있어 도보 접근성이 매우 취약하다는 것이다.
계단을 새로 깔아준다고, 도로를 깔끔하게 해준다고 해서 그것이 사회기반시설을 원활하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해당 지역 주민이 이탈하지 않고 2~30년을 정착해서 살 수 있게 하는 개선이 무엇인지 조금은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들도 버스와 지하철을 자유롭게 이용하고 싶을 것이고, 겨울철 빙판길과 여름철 물에 잠긴 경사로를 오르내리고 싶지 않을 것이다.
최근에 다시 가본 해방촌은 조금은 바뀐 것 같았다. 해방촌의 언덕을 오르내리며, 어르신들의 보행환경이라도 개선했음 하는 생각이었는데 108계단에 경사형 엘리베이터가 생겼다. 호기심에 타봤는데 재미있기도 했고, 주민들도 많이 이용하는 것 같았다. 도시재생 사업에 경사형 엘리베이터, 공공자전거 도입 등 서울시에서도 이와 관련한 이슈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앞으로 갈 길이 멀다. 특히 구릉지가 대부분이어서 폐쇄적이고 소외될 수 밖에 없는 대한민국의 도시 특성 상 우리는 도시재생의 소통과 활동에 있어서 지속가능함(Sustainability) 이슈는 더욱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