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nderland, 2024
“언제 어디서든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라는 슬로건 아래 죽은 사람을 인공지능 기술로 복원하는 ‘원더랜드’ 서비스는 얼핏 스티븐 스필버그의 <A.I.>(2001) 같은 SF 장르를 떠올리게 하지만, 김태용 감독의 전작 <가족의 탄생>(2006)이나 <만추>(2011)처럼 실상은 감독 고유의 감성으로 젖어있는 영화로 스파이크 존즈의 <그녀>(2014)나 드레이크 도리머스의 <라이크 크레이지>(2011)와 같은 것이었다.
<원더랜드>가 던지는 물음은 꽤 인문학적이고 철학적이다. 죽음이란 건 무엇인지, 인공지능 기술로 복원한 건 실재인지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것에 힘을 지나치게 주지 않고 가벼이 다루며 결국 사랑을 말한다. 인공지능 기술로 죽은 사람을 복원하려는 시도도, 애초에 그러한 기술에 대한 갈망도 사랑에서 출발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며 의도치 않게 한 중년의 부부의 대화를 들었다. 코로나로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식과 연락이 닿지 않아 우울감이 있었는데, 영상통화를 할 때면 그게 덜해졌었다고.
그러나, 실제로 마주하지 아니하고 어떤 채널을 거치는 행위의 한계가 곧 이 영화의 한계이다. 영화가 시작하고 5분이 지나지 않아 직감했다. 이것이 이 영화의 위기이자 한계가 될 것이라고, 영화를 보는 데에 있어 별로 좋지 않은 자세라는 걸 알지만 그래서 그 한계를 영화가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 속으론 팔짱을 끼게 되는 지점이었다. 바다 건너 멀리 있는 이와도 통화를 할 수 있게 됐지만 목소리만 듣다 보면 얼굴도 보고 싶다. 이젠 얼굴을 보며 통화를 할 수도 있지만 그러다 보면 만지고 싶게 마련이다. <원더랜드>의 한계는 사랑하는 이를 만질 수 없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배우들의 호연이 표현하고 있는 감정에 충분히 공감하게 하지만, 그 이상의 것은 없었다. <만추>에서 온전히 애나(탕웨이)와 훈(현빈)의 서사에만 집중했던 113분과 달리 5~6쌍의 인물들의 서사를 취하며 무게감 대신 이야기의 넓이를 선택했기 때문에 같은 113분의 러닝타임이어도 <원더랜드>의 것이 덜하지 않았나 싶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을 어느 정도 지나간 후이지만, 한창 국내에 퍼지기 시작했던 20년 4월에 크랭크인했던 이 영화가 당시의 제작 의도에 개봉한 지금의 시대성이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을까. 영화의 감상은 온전히 관객이 얼마큼 느끼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기에 영화 자체가 지닌 힘은 덜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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