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종승 Jun 05. 2024

<존 오브 인터레스트>

The Zone of Interest, 2023

이전에 <사울의 아들>(2015) 같은 케이스는 있었다. 수용소 내 시체들을 처리하던 ‘존더코만도’ 사울 외에는 고의적으로 포커스가 나가게 해서 그 실상이 직접적으로 노출되지 않게 하는 것.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2008)처럼 아이들의 시선으로 빌리는 것은 있었으나, 아예 아우슈비츠 수용소 내를 카메라에 담지 않는 것은 처음이지 않나 싶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돌담 하나만을 사이에 둔 한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는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밀고 나아간 지점이 단지 보여주지 않는 것에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영화가 시작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더니 5분 간 화면에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껌을 씹고 있었는데 행여나 우물우물하는 소리가 타인에게 방해가 될까 숨죽이는 시간이 지나니 한 가족이 한가로이 수영을 즐기는 모습이 보였다. 반짝이는 냇물에 지저귀는 새들까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꽃과 작물들이 잘 가꿔진 정원 딸린 집도 얼핏 아름다워 보였으나, 영화가 끝날 때까지 관객을 불편하게 하는 건 눈에 보이는 이미지와 계속해서 불균형을 이루는 소음이었다. 그 소음은 누군가의 비명 소리이기도 하면서, 총성이기도 했고, 거대한 어떤 설비가 작동하는 굉음이기도 했다. 그러나 수용소의 감독관 루돌프 회스(크리스티안 프리델)의 가족은 심지어 어린아이들도 이에 무감각하다. 그런 일상이 너무 오래돼서 익숙한 것인지, 그들에겐 들리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관객에겐 절대 그렇지 않다. 영화의 러닝타임이 길지 않은 편이지만,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관람이 불편하다면 그것에서 기인한 것일 테다. 레트비히(산드라 휠러)의 어머니가 딸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여 방문했을 때 그녀는 그곳이 어떤 곳인지 직감하고, 딸에게 아무 말도 없이 떠나버린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이건 웨스 앤더슨이 만든 장면들인가 싶을 정도로 장면의 구성이 치밀하다. 회스 부부의 집엔 유대인 포로들이 가사노동을 하고 있는데, 그들은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 듯 조용히 맡은 바 일을 수행한다. 차이가 있다면 웨스 앤더슨은 그 섬세하면서도 완벽하게 계산한 구성에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면, 이 영화의 것은 잔혹함이다. 그 환경이란 것은 어쩔 수 없이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게 마련인데, 수용소 바로 옆에서 자란 아이들은 폭력성을 지니게 된다. 동생을 비닐하우스에 가두고 좋아하는 형의 모습이라던가, 수용소에서 하늘로, 땅으로, 강으로 흘러나온 무엇들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가닿았을 것이다.


무언가를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더 선명하게 무언가를 보여주고자 하는 이 영화가 의도적으로 공들여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회스 부부가 자기 전 온 집안의 문단속을 하는 장면이다. 수용소에서 불과 담 하나만을 두고 있기 때문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인가 싶은데, 앞서 그 소음들에는 무신경해 보이는 이들의 행동으로는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집 안의 모든 문을 직접 닫고 잠겄으나 끝내 그 둘이 닫지 못한 문은, 마지막에 이르러 현재의 아우슈비츠 직원들이 시설을 청소하기 위해 연 문이다. 당시의 그들은 어떤 이유로든 문을 열심히 닫고자 했으나, 현대의 많은 이들은 계속해서 그것을 열어두려 한다. 시간이 오래 흘렀고, 많이 다뤘다고 해서 그만해도 될 것은 무엇도 없다. 갑자기 과거 밀양의 성폭행 사건이 인터넷상에서 뜨겁게 회자되고 있는데 같은 이유라고 본다. 누구든 계속해서 문을 열어야만 한다.


#존오브인터레스트 #크리스티안프리델 #산드라휠러 #조나단글레이저 #영화     

작가의 이전글 <원더랜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