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연한 여행자 Feb 23. 2022

아틀란티스 소년

Life is an adventure. Take risks!

지난 주말에  <언차티드(Uncharted)>라는 500년 전에 사라진 마젤란 함대의 보물을 찾는 내용의 액션 어드벤쳐 장르의 영화를 봤다. 스토리 전개도 무척 빠르고, 네이선 역의 톰홀랜드와 설리역의 마크 윌버그가 티격태격하면서 내뱉는 조크도 유쾌했고, 뉴욕과 바르셀로나 그리고 필리핀을 오고 가는 로케는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해주었고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헬기에 배를 메달고 펼쳐지는 액션씬은 여느 영화에서도 보지 못한 장관이었다. 오랜만에 본 만족스러운 액션 어드벤처 무비였다.


이런 액션 어드벤처 무비에는 언제나 주인공이 어떤 계기로 사라진 보물을 찾는 일에 휘말리게 되고, 보물을 찾아 나쁜 목적에 이용하려는 악한 일당들이 등장하며, 결국 보물을 찾게 되지만 보물은 다시 사라지게 된다는 전형적인 스토리 라인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런 액션 어드벤처 무비에서 마지막에 어렵게 찾은 보물이 다시 사라지는 이유는 아마도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보물을 찾는 것이 아니라 보물을 찾는 과정, 즉 모험을 통해서 얻게 되는 경험과 깨달음이 인생에 있어 진정한 보물임을 이야기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 다음(DAUM) 영화 <언차티드> 소개 페이지




누가 나한테 어릴 적 봤던 영화 중에 제일 감명 깊게 본 영화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주저 없이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1편 Raiders of the ㅣost Ark, 2편 The Temple of Doom, 3편 The Last Crusade)라고 대답할 것이다. 사라진 언약궤, 신성한 돌,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 사용했다는 성배를 찾기 위해 전 세계를 누비고, 그렇게 발견한 단서를 해박한 역사적, 고고학적 지식을 통해 풀어내고, 그 과정에서 나쁜 목적으로 유물을 노리는 악당들을 물리치는 이야기는 어린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마도 못해도 매 편당 스무 번은 넘게 보았던 것 같고 매번 대여해서 보는 게 번거로워서 나중에는 (그러면 안 되는데) VCR 두대로 빌려온 비디오 테잎을 공 테이프에 복사해서 봤던 기억도 난다.   


이렇게 인디아나 존스에 매료되어 있다 보니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에 누가 나한테 장래희망을 물어보면 언제나 고고학자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던 것 같다. 어릴 때는 고고학자가 되면 인디아나 존스처럼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다가 언제나 사라진 유물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나중에 고고학자들의 실상이 인디아나 존스 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는 고고학자의 꿈을 접었다.


사진 출처 - 다음(DAUM) 영화 <인디아나 존스 - 최후의 성전>  소개 페이지




고등학교 때 내 장래희망은 외교관이었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한 나라를 대표해서 협상을 한다는 것이 무척 멋있어 보였고, 무엇보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근무를 할 수 있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수능 모의고사를 볼 때면 1 지망으로 늘 서울대 외교학과를 썼던 기억이 난다(정원이 30명인가 그랬던 기억이 난다).


내가 외교관의 꿈을 접게 된 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웃긴 이유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같은 반에 아버지가 외교관인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 전학 오기 전에 '가봉(Gabon)'이라는 아프리카에 있는 국가에서 거주하다고 왔는데 하필 그 친구의 피부가 엄청 까맸었다. 나는 그 친구를 통해 외교관이 되어도 북미나 유럽 같은 국가보다는 아프리카 같은 나라에서도 근무를 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런 나라에 가게 되면 가족들도 같이 고생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더해 당시에 아버지가 베트남에 회사 주재원으로 나가 계셨는데 겨울 방학에 가 본 베트남은 우리나라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낙후되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외교관이 되고 싶다는 꿈도 쉽게 접었다.


외교관의 꿈을 접고 나니 당시 문과였던 나는 진로에 대한 선택지가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그중에서 그나마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멋있게 묘사되었던 검사나 변호사였다. 그렇게 법과대학에 진학하게 되었고 운이 좋게 사법시험에도 합격해서 지금까지 변호사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난 살아오면서 간절히 무엇이 되기를 원했다기보다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해서 살아왔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의 직업도 다행히 내 적성과 잘 맞아서 딱히 불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가끔은 다른 직업을 선택을 했다면 지금 즈음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무척 궁금하다.


어린 시절에 액션 어드벤처 무비에 열광했던 이유가 앞으로 내 인생도 영화처럼 새로운 모험이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면, 지금 액션 어드벤처 무비를 보고 있자면 마음속으로는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다가도 그럴 때마다 겪어야 할 불확실함에 대한 걱정과 포기하기 싫은 지금의 안락함 때문에 하지 못할 핑계나 구실을 먼저 찾게 되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내 인생 영화의 후반부 스토리도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벤트로 채울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을수록 새로운 모험을 기대하기보다는 이제는 모험을 그만두고 지금까지 찾아 모은 보물을 가지고 남은 여생을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아 아직도 아틀란티스를 찾고 싶어 하는 내 안 있는 소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표지 사진 출처 - 다음(DAUM) 영화 <언차티드> 소개 페이지>

작가의 이전글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