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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한 여행자 Dec 27. 2022

여행의 묘미

정보와 환상과 우연의 상관관계

코로나 19로 인해 오랜 기간 동안 해외여행을 하지 못하다가 다시 해외에 나가보려고 하다 보니 설렘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예전에는 일주일 전에 충동적으로 비행기와 호텔을 예약하고 짐을 싸서 잘만 떠났었는데 2년 가까이 안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요즘은 유튜브(Youtube)를 통해 가려고 하는 여행지의 호텔, 음식점 그리고 주요 관광 스팟을 미리 영상으로 둘러볼 수 있다. 그중에서는 엄청 자세하게 설명을 해놓은 것들도 있어서 몇 개 정도 보다 보면 가려고 하는 여행지가 어떨지 대충 견적이 나온다. 참 편리하고 좋은 세상이다.


최근에 내년 2월 정도에 친한 후배랑 더 늦기 전에 이집트나 모로코 여행을 해보려고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찾아봤다. 그런데 대부분의 내용이 "혼자 여행하기 정말 위험하다.", "사람들이 온갖 명목으로 돈을 달라고 달라붙는다.",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등의 좋지 않은 내용들이었다. 영상을 찾아보면 볼수록 가고 싶다는 생각이 줄어들었다.  


물론 그런 정보를 사전에 알고 가면 실제로 그런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에 덜 당황하게 되는 것은 맞지만 아무래도 여행을 가려면 뭔가 환상이 있어야 하는데 정보를 많이 접할수록 여행에 대한 환상은 줄어들게 된다. 영화나 드라마는 너무 환상을 심어주는데 반해 유튜브 동영상은 너무 환상을 파괴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사전에 접한 정보가 많을수록 여행의 묘미라고 할 수 있는 우연도 줄어든다.




대학교 2학년 시절 혼자서 한 달 정도 유럽배낭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가족여행으로 베트남을 가본 적이 있어서 해외여행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혼자서 가는 여행은 처음이었던 까닭에 막상 떠나려니 걱정이 좀 되었다. 원래는 같은 교회에 다니는 아는 형이랑 같이 가려고 했었는데 그 형이 갑자기 일이 생겨서 못 가게 되었다고 해서 그냥 가지 말까 고민하다가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유럽배낭여행을 해보겠냐는 생각에 무작정 떠났다.


그때는 아직 인터넷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숙소도 전화해서 예약을 해야 했고(미리 전화로 예약을 하지 않은 경우에는 발품을 팔아 호텔이나 유스호스텔을 돌아다니면서 빈 방이 있는지를 묻고 다녔다), 한국으로 전화를 하려면 국제전화카드를 사서 해야 하던 시절이었다. 물론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라 지도를 들고 다니면서 길을 찾았다.


아직도 기억나는 일이 맨 처음 도착지가 영국 런던이었는데, 아무래도 처음 가는 곳이다 보니 아는 교수님의 지인 분의 집에 머물기로 하고 지인분이 비행기 도착시간에 맞춰 공항으로 마중 나오기로 했다. 그런데 공항에 도착하여 출국 수속을 밟고 나왔는데 나오기로 한 분이 보이지 않았다. 한 시간 정도를 기다리다가 그분의 집에 전화를 해보았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여행 시작부터 좋지 않다는 생각에 불안이 엄습하면서 이제 어찌해야 할지 걱정이 되었다. 일단은 공항에서 좀 더 기다려 보기로 하고 있었는데 어떤 동양인으로 보이는 여자분이 다가와서 숙소를 아직 안 잡았냐고 물어보았다. 말투를 보니 한국사람인 것 같았다. 나는 마중 나오기로 한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분도 공항에서 기다리는 나를 계속 관찰했는지 30분 정도 있다가 다시 아직 숙소를 정하지 않았으면 같이 가자고 했다. 들어보니 한인 민박을 하시는 분인 것 같았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을 따라가려니 뭔가 무서운 생각이 들었지만 당시에는 달리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일단 따라가 보기로 했다. 그분도 내가 경계하는 게 보였는지 가 보면 맘에 들 거라고 했다. 그렇게 따라가 보니 런던 외곽에서 한인 민박을 하는 마당이 있는 가정집에 도착했다. 그곳에 가보니 나와 같이 배낭여행을 하는 한국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고, 그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민박을 하시는 주인 분들도 친절하신 분들이었고 밥도 맛있게 잘해줘서 4박 5일 동안 무척 재미있게 지냈다. 심지어 마지막 날 밤에 주인 내외분과 숙박을 하는 대학생들이랑 다 같이 술 한잔을 하는 과정에서 주인아저씨가 대학교 같은 과를 졸업하신 선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인아저씨도 머나먼 객지에서 대학교 같은 과 후배를 만나게 된 게 신기하였는지 나중에 계산할 때 하루치 숙박비를 깎아 주시기도 했다.


그렇게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 나의 배낭여행은 그 이후로도 수많은 에피소드와 함께 무사히 잘 마무리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뭘 잘 모르고 시작했기에 할 수 있었던 여행이지 않았나 싶다.  


2000년 7월에 처음 런던에 갔을 때 제일 좋은 느낌을 받았던 트라팔가 스퀘어. 사진은 2022년 9월에 다시 갔을 때의 모습. 활기찬게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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