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커져가는 여행에서 숙소가 차지하는 비중
이제 내일이면 하와이에 간다.
올해 초에 결혼을 하면서 신혼여행으로 가려고 했었는데 코로나19 방역조치로 인해 일주일 자가격리 및 코로나음성 확인증명서 등을 발급받아야 하는 게 번거롭기도 했고, 당시에는 아직 코로나19에 걸리지 않은 상태여서 괜히 해외여행을 갔다가 걸리는 게 아닐까 싶어 예매해놓은 비행기 티켓을 취소하고 제주도로 신혼여행지를 변경해서 다녀왔다. 와이프랑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가면서 결혼 1주년에는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가자고 약속을 했고 그렇게 비행기 티켓을 미리 예매해 놨다.
이번에 하와이 호텔을 예약하면서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호텔비가 정말 많이 올랐다는 것을 실감했다. 마우이(Maui) 같은 경우 괜찮은 4, 5성급 호텔은 1박에 120만 원에서 150만 원 정도 하고, 오션뷰로 예약을 하려니 180만 원에서 200만 원 가까이했다. 오아후(Oahu)도 1박에 4, 5성급 호텔은 60만 원에서 80만 원 가까이했다. 환율이 치솟은 것을 감안하더라도 코로나19 이전보나 두 배 가까이 가격이 올랐다고 한다.
그렇게 호텔을 예약하고 있자니 문득 내 여행스타일도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나한테 여행을 가는 데 있어 숙소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숙소는 잠만 자는 곳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주로 4인 1실 같은 호스텔에서도 많이 묶었던 것 같다. 물론 그때는 돈을 벌지 않던 시절이어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호스텔에 묶다 보면 다른 나라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겨서 나름 재미있기도 했다.
30살에 군대를 막 전역하고 사법연수원에 입소하기 직전에 친한 학교 후배랑 같이 2주 정도 호주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어차피 남자 둘이 가는 여행이니 배낭여행 하는 기분으로 다니자고 했고, 그 친구도 좋다고 해서 숙소는 가급적 저렴한 호스텔 같은 곳으로 정했다.
근데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사실 그 후배는 돈을 좀 더 지불하더라도 화장실이 딸린 2인실의 호텔에서 묶고 싶어 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당시 여행 일정이 중간에 케언즈(Cairns)에 갔다가 시드니로 돌아와서 2박 정도를 더하고 귀국할 예정이었는데, 케언즈에서 예기치 못하게 역대급 싸이클론(Cyclone)을 만나 3일을 강제로 더 머무르게 되면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정이 예기치 못하게 꼬여 버렸고, 케언즈에서 저녁 비행기로 시드니로 온 다음 날 새벽에 한국으로 하는 비행기를 타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저녁에 시드니 공항에 도착하고 다음 날 새벽 일찍 한국 가는 비행기를 타야 되니 여행 경비도 아낄 겸 그냥 공항에서 자거나 공항에서 가까운 저렴한 호스텔에서 묵자고 했는데, 그 친구는 하루라도 좀 편한 곳에서 쉬자고 하면서 공항 가까이에 있는 라마다 호텔에서 묵자고 했다.
나는 어차피 밤늦게 들어가서 새벽에 일찍 나올 건데 1박에 100달러 이상을 지불하면서 그런 곳에 묵는 건 낭비 같다고 했지만 그 친구가 자기가 호텔비를 낼 테니 그냥 가자고 했다. 그 친구의 눈을 보니 그 호텔에 묵기를 너무 강렬하게 원하는 눈빛이어서 결국 그렇게 하기로 했다.
체크인을 하고 호텔 방에 들어가니 그 친구는 "이제 고생은 끝이다."라고 하면서 너무 좋아했다. 전날까지 케언즈에서 싸이클론 때문에 4인 1실의 호스텔 방에 영국인이랑 콜롬비아인이랑 3일 동안 갇혀 있었긴 했지만 내 생각에는 그렇게 고생을 한 것 같지는 않았는데 그런 얘기를 들으니 뭔가 내가 그 친구에게 고생스러운 여행을 강요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 친구는 객실에 딸린 샤워실에서 오랫동안 씻은 후 침대에 누워 너무 편하고 좋다고 했다. 나도 깨끗하고 좋은 객실에서 묵는 게 나쁘지 않았고 내일이면 한국에 돌아가는데 굳이 그런 일로 서로 감정 상하고 싶지는 않아서 얼른 자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타고 잘 돌아왔다.
그때는 그 친구의 심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오히려 남자 녀석이 호텔에 너무 집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었는데, 세월이 흘러 돈을 벌게 되고 여행을 하면서 좋은 호텔에도 많이 묵어 보게 되니 그 친구의 행동이 이해되었다.
이제는 여행을 하더라도 예전처럼 하루종일 강행군을 하지 않게 되었고 호텔 객실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나고 호텔의 부대시설도 많이 이용하게 되면서 이왕이면 좋은 호텔을 찾게 된다. 호텔에서 좋은 서비스를 받으면 기분이 참 좋아진다. 세상에는 좋은 호텔이 정말 많이 있고 같은 브랜드의 호텔이더라도 위치해 있는 나라나 지역에 따라 특색과 매력이 모두 달라 그 호텔을 경험하는 것 자체가 그 여행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그 무엇이 된다.
좋고 비싼 것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문제는 한 번 올라간 내 눈이다. 이제는 3성급 호텔에 묵게 되면 10만 원 정도 더 주더라도 그냥 4, 5성급 호텔을 예약할 걸 하고 후회하게 된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참 간사하다.
"신혼여행이니 이왕이면 좋은 곳으로 가자", "언제 하와이에 또 가게 될지 모르는데 기왕 묵는 거 오션뷰로 하자" 등 비싼 호텔비를 합리화할 구실을 찾으면서 호텔예약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세월이 지남에 따라 나도 참 많이 변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