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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한 여행자 Jan 25. 2023

천국에서 코로나에 걸리면

처절했던 하와이 생존기

작년 연말에 결혼 1주년 겸 코로나19로 인해 못 갔던 신혼여행을 겸해서 하와이로 7박 9일 여행을 다녀왔다.


신혼여행을 겸해서 가는 것이어서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2배 가까이 오른 호텔 가격에도 불구하고 좋은 호텔을 예약하고 2022년 마지막 선셋을 기억에 남기기 위해 선셋 크루즈를 예약하고 마우이 섬에 가는 김에 몰로키니 섬에 요트를 타고 가서 바다 거북이를 보면서 스노클링을 하는 프로그램도 예약하고 12월 31일에 와이키키 해변에서 하는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호텔도 오션뷰로 예약하는 등 여행을 가기 전부터 기대에 한 껏 부풀어 있었다.


하와이에 도착해 보니 날씨가 정말 너무 좋았다. 덥지도 춥지도 그리고 습하지도 않은 딱 기분 좋은 날씨. 사람들이 왜 천국 밑에 하와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와이키키 해변은 연말을 맞아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북적거렸고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아 마치 코로나19 이전의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흥겹고 즐거운 분위기로 가득 찬 와이키키 해변을 따라 걷고 있자니 그러고 있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었다.

  

걷기만 해도 기분 좋았던 와이키키 해변


여행 첫째 날과 둘째 날 까지는 예정대로 와이키키 해변에서 놀다가 렌트한 차로 72번 국도를 따라 경치 좋은 스팟들인 라나이 전망대, 할로나 블로우홀, 마카푸우 전망대, 와이마날로 비치, 카일루아 비치파크 등을 돌면서 하와이의 멋진 자연경관을 마음껏 만낏했다.


그런데 둘째 날 밤부터 같이 여행을 온 와이프가 몸살기가 있다고 했다. 와이프는 3개월 전에 영국 여행을 다녀와서 받은 검사에서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나는 코로나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여행 피로로 인한 컨디션 난조나 가벼운 감기 정도일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다. 와이프는 가지고 온 타이레놀 콜드를 먹고 증상이 좀 완화되기도 했다.


여행 셋째 날은 12월 31일이어서 2022년 마지막 선셋을 보기 위해 미리 예약해 놓은 선셋 크루즈를 타러 알라 모아나로 가려는데 와이프가 오한기가 있다고 하면서 걸칠 옷들을 많이 챙겼다. 나를 비롯해서 요트에 탄 사람들은 반바지에 반팔 차림이었는데 후드티를 껴 입은 와이프를 보면서 '이 날씨에 저렇게 입으면 덥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마침 날씨도 좋아 선셋도 너무 멋있었고 타고 있던 요트 분위기도 흥겹도 크루들도 친절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호텔로 돌아왔다.


요트에서 보았던 2022년 마지막 일몰


이제 12시에 와이키키 해변에서 하는 불꽃놀이만 보면 완벽하게 2022년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와이프가 열이 나면서 아프기 시작했고 ABC마트에서 사 온 약을 먹은 후 일찍 잠이 들었다. 결국 불꽃놀이는 나 혼자서 호텔 테라스에서 봤다. 그때부터 뭔가 심상치 않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열이 내린 후 와이프는 코가 막히고 목이 아프다고 했다. 뭔가 코로나19의 전형적인 증상이 순차적으로 발현되는 것 같아 그때부터 와이프와 나는 '진짜 코로나19에 걸린 것 아닌가?'라는 본격적인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와이프에게 증상이 나타난 후 3일 정도 지나가고 있는데도 나는 멀쩡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한편으로는 코로나가 아닐까 의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독감이나 다른 감기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오아후에서의 4박 동안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마우이로 이동을 했다.


마우이는 호텔 가격이 많이 사악하기는 했지만 오아후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곳이었다. 오아후 보다는 개발이 덜 되어 자연 본래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었다. 특히 해발 3000m가 넘는 할레아칼라에서 본 구름 위의 선셋과 할레아칼라를 오고 가는 길의 급경사 길은 아마도 평생토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할레아칼라에서 본 구름 위의 선셋. 정말 잊지 못할 장관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할레이칼라에서 선셋을 보고 돌아온 날 밤부터 뭔가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그러더니 몸살기가 느껴지고 오한이 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이다. 그 이후로 와이프가 겪었던 증상을 그대로 순차적으로 겪었다. 열이 나고 코가 막히고 목이 아팠다. 이런 상태로는 물속에 들어갈 수 없어 결국 몰로키니 섬에 요트를 타고 가서 바다 거북이를 보면서 스노클링을 하는 프로그램은 취소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취소기한이 도과해서 50만 원 가까운 돈을 고스란히 날렸다. 4단 인피티니 풀이 유명한 안다즈 호텔의 수영장은 제대로 이용하지도 못했다.  


이렇게 여행 와서 몸이 아프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천국 같은 곳에서 아무리 좋은 호텔에 있어도 정작 몸이 아프면 다 소용이 없었다. 좀 억울한 생각도 들었다. 코로나19 시작된 이후 2년 가까이 걸리지 않고 잘 버텼는데 하필 하와이에 와서 그것도 신혼여행을 겸해서 온 여행에서, 그것도 하필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마우이에서 걸리다니. 하와이고 뭐고 얼른 한국에 돌아가서 병원 가서 진료받고 약을 처방받고 싶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와이프한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막상 코로나에 걸려보니 몸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다. 오한이 날 때는 26도 가까이 되는 날씨에 경량 패딩을 입고 있어도 추웠다. 와이프가 먼저 걸려서 몸살기가 있고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해서 예정된 여행 계획을 취소할 때는 뭔가 '하와이까지 와서 이것도 못하고 가네'라는 원망스러운 마음도 조금 들었는데 막상 내가 걸려보니 좋지 않은 컨디션임에도 불구하고 옷을 껴입고서라도 선셋 크루즈를 같이 타주고 여행 일정을 어떻게든 소화하려고 했던 와이프가 무척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너무 미안하고 한편으로는 고마웠다. 사람은 자기가 겪어 보지 않으면 체감을 못하는 것 같다.    




다행히 한국행 비행기를 탈 때에는 코막힘과 거담 증상 외에는 증상이 많이 호전되어 무사히 한국에 돌아왔다. 돌아오는 비행기 편이 낮 11시 45분에 출발하는 비행기여서 잠도 오지 않고 모니터 화면을 보면 눈이 건조해서 영화도 못 본 채 10시간을 멍하니 앉아서 오긴 했지만 그래도 비행기에서 갑자기 열이 나고 아프거나 하는 우발적인 사고 없이 잘 돌아왔다. 돌아와서 병원에 내원해 검사를 해보니 역시 코로나였고, 와이프와 나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자가격리를 하였다.


이렇게 1년 전부터 계획하고 기대에 부풀어서 떠났던 하와이 여행은 코로나19로 인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 허무하게 마무리되었고 의도치 않게 우리는 2023년 새해를 코로나와 함께 시작하게 되었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간 두 번의 해외여행에서 두 번 모두 코로나에 걸린 와이프는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종식될 때까지 다시는 해외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래도 이번 여행을 통해 얻은 소중한 것이 있다면 그건 내가 열나고 아플 때 밤새 물수건을 이마와 팔에 덮어주면서 간호해 주었던 와이프의 사랑이 아닐까 싶다.     


너무 좋았지만 코로나에 걸려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던 안다즈 마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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