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치지 않기 위해 여행을 한다.
누가 일주일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언제냐고 물어본다면 난 일요일 오전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일요일 오전은 일주일 중 유일하게 마음 것 게으름을 피워도 괜찮을 것 같은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시간이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일찍 일어나거나 서둘러서 아침을 먹을 필요가 전혀 없다. 일요일 오전에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면 조용할 뿐만 아니라 돌아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는 여유로운 공기를 단번에 느낄 수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일요일 오전의 여유를 누린 것이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나에게 있어 아주 어릴 적부터 일요일 오전은 교회에 가는 날이었고, 8시 30분이나 9시 정도에 시작되는 예배시간에 맞춰서 교회에 가려면 평일과 마찬가지로 일찍 일어나야만 했다.
특히 일요일 아침은 전날인 토요일 저녁에 일찍 잠자리에 든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평소보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더 힘들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자고 싶은 나와 날 깨우려는 엄마 사이에서는 늘 짜증 섞인 실랑이가 오고 갔던 기억만 있다.
기독교 교리적으로는 하나님이 세상을 6일 동안 창조하시고 7일째 되는 날 쉬셨기 때문에 사람도 쉬는 것이 마땅하지만, 막상 교회에 다녀보면 일요일(주일)은 교회에 가서 봉사하다 하루가 다 끝난다. 예배도 대예배, 중고등부 예배(또는 청년부 예배), 저녁예배 등등 하루에도 몇 번이나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래서 일요일 저녁이면 늘 지친 상태로 집에 돌아온다.
30살이 되어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되기 전까지는 늘 이렇게 지내왔던 관계로 일요일에 어디를 놀러 가본 기억도 없다.
언젠가부터 날이 좋은 일요일 오전에는 와이프와 함께 서울 인근의 경치 좋은 곳에 있는 카페에 가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온다. 가깝게는 남양주나 파주에 있는 카페에 가고, 멀리는 양평이나 가평, 원주, 포천 그리고 강화도까지도 다녀온다.
일요일 오전은 유일하게 차가 막히지 않는 시간이다. 다들 교회에 가거나 종교생활을 하러 가는 시간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도로에 차가 거의 없어서 한 나절이면 경치 좋은 곳으로 짧은 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
경치 좋은 곳에 있는 카페에서 멋진 풍경을 보면서 여유롭게 커피를 한 잔 마시다 보면 한 주간 쌓여 있었던 스트레스가 다 풀린다. 계절별로는 말할 것도 없고 맑은 날은 맑은 날 대로, 비 오는 날은 또 비가 오는 대로 나름의 분위기와 운치가 있다. 커피 맛까지 좋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錦上添花)다. 그런 곳에 있는 잘 지어 놓은 카페를 보고 있자면 여행객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먹을 것과 숙박을 제공했던 중세시대의 성 같다 느낌을 받는다.
이렇게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떠나는 것도 충분히 훌륭한 여행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일요일 오전에만 가능한 짧은 여행이 또 한 주간을 버틸 수 있는 힘을 나게 해 준다.
얼마 전에 본 <박하경 여행기>라는 드라마가 있다. 주인공인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인 박하경(이나영)이 매주 토요일마다 당일치기 여행을 하는 것으로 소재로 한 드라마다. 주인공은 멀리 해남 땅끝 마을을 다녀오기도 하고 가까이는 살고 있는 동네를 여행하기도 한다.
드라마는 이런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19세기말 프랑스에서는 갑자기 떠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직장도 가정도 버리고 심지어 자기 자신도 잊은 채 여행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둔주, 보행성 자동증, 방랑벽 등으로 불린 이 증세는 마치 유행병처럼 유럽 곳곳에 번졌고 정신없이 길을 떠난 이들은 미치광이 여행자로 불렸다. 그들은 과연 미쳐서 여행을 떠난 걸까? 그대로 살다가는 미쳐 버릴 거 같아서 떠난 게 아닐까?"
"미치지 않기 위해 여행을 한다"는 말이 어딘지 모르게 좀 무섭게 들리긴 하지만 사실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진짜 이유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