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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한 여행자 Jul 07. 2023

온몸을 감싸는 바람을 느끼며

오감(五感)을 통해 느낀 순간들의 기억

얼마 전에 좀 이른 여름휴가로 베트남 푸꾸옥(Phu Quoc)에 다녀왔다. 지난 연말에 하와이에서 코로나에 걸려서 여행 내내 고생한 이후 와이프와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가 종식될 때까지 해외여행을 가지 말자고 같이 다짐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또 더운 여름이 되다 보니 몸도 마음도 지친 것 같기도 해서 기분 전환도 할 겸해서 다녀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푸꾸옥이라는 곳이 있는지조차 몰랐었는데, 우연히 잡지를 보다가 베트남에 우리나라로 치면 제주도 같은 섬이 있는데 2010년 이후에 개발되기 시작해서 시설도 좋고 깨끗하면서 가격도 저렴해서 최근 들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는 소개글을 보고 찾아보니 괜찮을 것 같아서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푸꾸옥의 호텔 대부분이 그렇지만 우리가 묵은 호텔은 커다란 수영장과 프라이빗 비치가 있어서 이번 여행 동안 정말 원 없이 수영을 하고 선베드에 누워서 쉬었던 것 같다. 하와이에서 코로나에 걸려 4단 인피니티 풀에 발도 못 담근 한을 다 풀었다.


수영복을 입고 선베드에 누워 있으면 온몸으로 바람의 촉감을 느낄 수 있다. 무척 기분 좋으면서도 신선한 느낌이다.


생각해 보면 평소에 몸통, 즉, 어깨 아래부터 무릎 위 부분까지는 옷으로 가려져 있어 바람을 직접 맞을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그런지 몸통에 바람의 촉감이 직접 닿자 일종의 묘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정말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느낌이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바닷가에서 온몸으로 파도치는 것을 맞은 것과 더불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


예전에 시드니에 있는 본 다이 비치(Bondi Beach)에 갔을 때 해변에 토플리스(topless) 차림으로 누워 있는 여자들을 보고 문화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남들이 볼 수도 있고 누드 비치도 아닌데 굳이 상의를 모두 탈의하고 누워 있어야 하나 싶었는데, 아마 그 사람들도 평소에는 옷으로 억압했던 곳에 바람과 햇빛을 직접 맞으면서 해방감을 느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2019년 12월에 갔던 시드니 본다이 비치




바다에 갔을 때 바닷물에 발을 담그는 것이 귀찮아졌다면 어른이 된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생각해 보면 나도 어렸을 때는 바다나 개울가에 가면 옷이나 신발이 젖는 것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물에 뛰어 들어가서 놀았던 것 같은데, 언젠가부터 신발과 옷이 젖으면 뒤처리가 번거롭고 걱정돼서 경치만 보고 물에는 잘 안 들어가게 되었던 것 같다. 어른이 아이와 다른 점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 뒤에 따라오는 일들에 대해 미리부터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오감(五感)을 통해 느낀 순간들은 정말 오랫동안 기억에 남게 된다. 그런 걱정을 하지 말고 일단 물에 뛰어들어 보자. 그러면 정말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는 순간들을 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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