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대신 채워지는 것들.
영국으로 어학연수 가기 전, 제일 먹고 싶은 음식을 엄마가 해주셨다.
식탁 위에 갈비, 회, 다른 음식들도 많았지만, 고기보다도 더 가운데에 있었던 '해물파전'.
정말 산처럼 쌓여있던 해물파전.
영국을 가기 전에 한국 음식 중에 이 음식이 제일 먹고 싶었다.
그래서 엄마한테는 '이게 마지막 나의 한국 음식이 될 거야' 이런 말로 그 자리에서 쌓여있던 것을 거의 다 먹었던 것 같다. 물론 식탁 위에 있었던 다른 음식들도 함께 먹었고.
부모님이 '한 번에 너무 많이 먹은 거 아니냐'라고 나를 다그쳤다.
맞다. 나는 한 번에 너무 많이 먹는다. 한 번에 세끼에 해당하는 음식을 한 번에 먹는다. 그리고 그 음식들을 한 번에 다 토해낸다.
사실 이 날도 해물파전 5장 정도 먹고, 갈비에, 국에, 잡채 등 다른 음식까지 먹고 자기 전에 다 토해냈다. 21살의 나는 식습관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이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던 나의 또 다른 장애.
아무에게도 말 못 한 나의 장애를 여기에 조금씩 고백하려고 한다.
이곳에 말한들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겠지만, 차차 지금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고, 나에게 '식습관 장애'는 한 번에 생긴 것이 아님을 알려주고 싶다.
내 이름을 가지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살면서, '나와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 문제점을 어떻게 이겨내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하다 보니,
나는 이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게 이제는 나 자신이 되어버린 것 아닐까?
'식습관 장애'를 가진 지 어연 15년이 되어간다. 시간이 정말 많이 흘렸지만, 이제라도 고칠 수 있다면 고치고 싶다. 하지만 고쳐지지 않았던 이유를 알고 난 뒤로 나는 이렇게 살기로 마음먹었다.
무언가를 먹고, 다른 것을 한가득 먹고, 또 다른 것을 목구멍 터질 듯이 채워 넣고, 4시간이라는 시간 안에서 내 가슴속에 모든 것을 채워 넣은 뒤, 토해내는 행동의 연속은 그게 나의 하루 일과가 되었다.
평일에는 남들처럼 열심히 오전에는 일하고, 퇴근 전에는 저녁을 고민하다가, 다만 퇴근 후 늦은 저녁에는 화장실에서 남들보다 보내는 시간이 많다는 것.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내가 깔끔해서 화장실 청소도 열심히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나의 흔적을 없애기 위한 행동이라는 것. 그렇게 내가 15년이라는 시간을 살아왔다.
앞으로 나의 인생은 몇 년이나 남아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