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 에너지 전환 진단
미국보다 한국에서 더 유명한 스탠퍼드대 교수 토니 세바는 약 3년 전, 향후 머지않은 미래에 벌어질 에너지산업의 변화를 예측한 "2030 에너지 혁명"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 후 우리나라 정부, 지자체, 기업 가리지 않고 여러 요직에 있는 에너지 분야 관계자들이 한 목소리로 이 책을 언론에서 언급하거나 추천하기까지 했다. 토니 세바가 2030년까지 이뤄질 것이라고 보는 예측들 중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새로운 에너지들은 모두 태양광과 풍력으로 제공된다.
휘발유는 더 이상 쓰지 않으며 원자력은 구식이 된다. 천연가스와 석탄도 무용지물이 된다.
분산형, 참여형 에너지 비즈니스 모델이 전력회사를 파산시킨다.
모든 신차 시장은 전기차가 장악한다.
에너지산업의 대변혁을 예고하는 대담한 예측들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태양광 및 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발전량 비중은 채 5%를 넘지 않으며, 원자력 및 석탄은 발전량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전기차가 전체 신차 시장 중 차지하는 비중 또한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전혀 근거가 없는 허무맹랑한 상상은 아니다. 토니 세바는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고 있는 기하급수적인 기술 진보와, 네트워크 및 사물인터넷 기술을 바탕으로 한 초관계망(‘Super-Connectivity’)의 형성을 근거로 예측한 것이다. 토니 세바의 발표를 MIT Energy Conference 2018에서 직접 듣고 얘기도 같이 할 기회가 있었다. 토니 세바는 이러한 변화가 순식간에 진행될 것이라고 보며, 그 변화가 시작된 지금 우리는 그 사실을 포착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가 발표 자리에서 항상 언급하는 사례는 1903년과 1913년 마차와 자동차의 보급에 관한 에피소드이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자동차의 생산비용 감소, 빠른 보급으로 불과 10여 년 만에 뉴욕 5번가에서 마차는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그가 던진 대담하고 언뜻 무모하기까지 한 예측은 사실 세계 각지에서 실제로 이뤄지고 있다. 태양광 및 풍력 발전과 배터리 기술의 원가는 하락하고 있다. 미국 남서부나 유럽 남부 등지에는 재생에너지 발전원가가 석탄 등의 전통 발전원가 대비 낮아지기 시작한 지 오래다. 또한 초관계망 기반 플랫폼 산업으로 창고 없는 유통업('알리바바'), 차 없는 수송업('우버'), 호텔 없는 숙박업('에어비엔비') 등 기존 산업이 지평이 180도 변화하고 있다. 에너지산업도 중앙 집중형, 독과점 에너지 시장에서 벗어나 이제 커다란 싱귤래리티적 변화를 앞두고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에너지의 전환이 가능할지 살펴보고자 한다. 태양과 바람의 힘으로만 모든 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을지, 전기차의 비중이 신차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보급될지, 이 질문을 세부적으로 에너지 사용처에 따른 3개 분야로 나누어보았다.
첫 번째는 가장 실생활과 가까운 냉·난방분야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태양과 바람의 힘으로 냉난방은 충분히 가능하다. 태양광의 경우 일사량이 높은 시간에 전력 공급이 원활하므로 이에 맞춰 태양 에너지로 에어컨을 충분하게 가동할 수 있다. 또한, 가정에서는 소규모로 ESS(에너지 저장장치) 배터리를 배치하거나, 전기자동차의 배터리를 연결하거나, 심지어 물탱크를 개조하여 손쉽게 에너지 저장장치를 만들 수 있다. 소규모 에너지 저장장치를 사용한다면 낮에 모아둔 에너지를 밤에 난방으로 활용할 수 있다. 특히 건물을 조금 더 에너지 효율적으로 디자인하고, 단열재 등을 사용하면 냉난방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시간이 온다. 에너지 비효율적인 아파트보다는 살아가는 모습이 달라질 테지만, 냉난방 분야에서는 100% 재생에너지로 살 수 있다.
두 번째로 수송분야, 즉 전기자동차의 보급에는 아직 물음표를 달고자 한다. 지난달('18.04)에 옥스퍼드 에너지연구소(OIES)에서 전기차 분야의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을 담은 포럼 자료를 출간했다. 이 자료에 담긴 전기차에 대한 전문가들의 전망은 일반적으로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파격적이지 않았다. 전기차가 보편화되기 위해서는 현재 휘발유, 경유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전기차 가격이 비싸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전기차 비용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배터리의 주재료 리튬뿐 아니라 코발트, 흑연(graphite), 니켈 등 희토류의 가격이 급상승하고 있다. 이는 전기차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주원인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에 달하는 리튬 배터리의 학습곡선이 이러한 가격 상승을 상쇄한다면 그렇게 비관적이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여기서 학습곡선이란 생산량이 2배가 되었을 때 떨어지는 단위당 생산원가 하락 폭이다). 더불어 정부의 지원 정책을 배경 삼아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 및 인도의 엄청난 전기차 시장을 무시할 수 없다. 휴대폰 보급의 속도를 2000년에 예측 못했던 사례처럼, 전기차 또한 예측과는 달리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래서 물음표이다.
세 번째로, 냉난방과 수송 분야를 제외한 일반 산업에서의 에너지 소비는 대체되기 어렵다. 이는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기 에너지의 규모 문제로, 각지에 분산된 태양광 패널로부터의 에너지로 고압, 다량의 전력을 단시간에 공급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가정에서의 소비와는 달리, 철강이나 반도체 중공업은 대규모 전력을 필요로 한다. 대규모 전력을 만들기 위해 태양광 전력을 모아서 거대한 ESS를 설치하고 충전해서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충전한 전기를 충전시간 대비 순식간에 방전시킬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상상해 볼 때 일반 산업에서의 100% 재생에너지 사용은 너무 비효율적인 접근이다. 기술적으로는 가능하나 현실적으로 경제성은 많이 떨어진다.
결론적으로 재생에너지와 전기차로의 전환은 전면적이진 않지만 점진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경제성이 높은 분야부터 단계적으로 이뤄질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이 변화가 현재 벌어지고 있으며 우리는 여기에 대비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에너지산업은 현재의 중앙집권적, 독점적 구조에서 분산형, 생산지-소비지 일체형 구조로 변화할 것이며, 산업에서 가정에 이르기까지 생활양식의 변화를 수반할 것이다. 또한 여기서 많은 비즈니스의 기회가 창출될 것이며 이 변화를 읽는 사람이 그 시장을 선도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역사적 전환이라고 말하기에는 어려울 수 있다. 10년 단위로 우리는 혁명과도 같은 변화를 3번이나 경험했다. 1990년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2000년대 디지털에서 인터넷으로, 2010년대 인터넷에서 모바일로의 변화가 바로 그것이다. 2020년~2030년의 변화는 기계학습(AI)의 생활 전반에 대한 침투 및 블록체인 기술과 플랫폼 사업을 기반으로 한 분산화이며, 에너지산업도 예외가 될 수 없다.
Written by 김동건
Edited by 조경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