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인플루언서 도전기를 열심히 작업하다, 2년 전 속사포랩하듯 쏟아낸 내 마음이 [작가의 서랍]에 저장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 그때도 난 혼란스러웠고, 뭐든 해보고 싶어 꿈틀대던 시기를 지나고 있었구나. 마치, 2년 전 내가 지금의 나에게 쓴 연애편지를 읽는 마음으로 한 줄 한 줄 읽다 보니, 괜스레 눈물이 났다. 그리고 2년 전의 나에게, 내가 좋아하는 책의 문구를 활용해 답장하고 싶다.
애쓰고 애쓴 건 사라지지 않는다. 모두 네 안에 남아있다. (<네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최인아)
그렇다고 2년이 지난 지금 나에게 뾰족한 답이 생긴 것도 아니고, 난 여전히 헤매고 있다.
(단숨에 끝날 줄 알았던 10편짜리 아마존 인플루언서 도전기가 이렇게 지난한 과정일 줄이야...)
사업을 하거나, 번듯한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되었거나, 아니면 크리에이터가 되어 부가 수익을 얻는 등의 정량적인 성과는 없다. 하지만, 나 자신과 내 가족만이 아는정성적인 성과는 그 어느 때보다 빛난다. 무엇보다 내 아이는 그 누구보다 건강하게 잘 살고 있고, 난 조금 더딜지언정 내 힘으로 일어나 보고자 오늘도 꾸역꾸역 게으른 몸을 이끌고 앞으로 나아간다. 2년 후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하여.
부끄럽지만, 셀프 격려 차원에서 2년 전 내가 나에게 쓴 편지(라고 쓰고 속풀이라고 읽는다)를 공유한다.
일의 개념은 무엇일까요?
번듯한 빌딩 숲을 가로질러, 빛나는 사원증 달고 또각또각 건물 로비를 입장하는 사람들이 하는 행위가 일일까요? 띡띡, 사원증을 찍고 내 이름이 적힌 책상에 앉아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시작하는 삶이 일하는 자의 삶일까요? 아니면, 매일 출퇴근을 하지 않더라도 자본주의 시대에 맞게 돈이 일하게 하며 수익을 창출하는 것 역시 일을 하는 것일까요?
저는 올해 만으로 40세가 된 여성입니다. 30대 막바지에 '운명'이라는 이름의 탈을 쓰고 온 사람을 만나, 3년 전 미국으로 이민 왔고 이듬해 아이를 낳아 살고 있습니다. 네. 소위 말하는 경력보유 여성이고, 늦깎이 이주 여성이며, '풀타임' 맘으로 포지셔닝됩니다. 오늘도 폭주 기관차처럼 달리던 30대의 여느 커리어 우먼 때보다 더 열심히, 전투적으로 살고 있습니다.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 14시간을 꼬박 아이에게 바치는 것은 물론이며 중간중간 삼시 세 끼를 차립니다. 그리고 틈틈이 육아 정보, 트렌드 관련 소식을 폭식하듯 서치하고 제 나름의 사업 계획도 세웁니다. 그럼, 다시 한번 묻고 싶어요. 저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이제 '내 일'을 찾아야 하는, 삶에 치인 여성입니까?
정답은 없겠죠. 하지만 간혹 30대 후반의 열혈 워커홀릭인 저를 기억하는 지인들은 "너 그렇게 애한테 네 삶을 바치다 우울증 온다. 너도 네 일을 찾아라."라고 합니다. 가끔은 그 말들이 자칫 호수 같이 고여 있는 제 삶에 잔잔한 물결이 되어 기분 좋은 자극이 되지만, 대부분은 저의 정체성을 흔듭니다. 그들이 말하는 '일'의 범주에 제가 영혼을 바치는 하루 14시간은 없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뭐라도' 해보겠다는 마음에 인스타그램을 켜고 아이의 일상, 나의 일상, 우리 가족의 주말 일상 등을 찍어 올립니다. 그럴듯한 해시태그도 달아보고요. 하지만 그 역시도 공허해집니다. 내 일상이라는 '본질'이 아닌, 누군가에게 '나 잘 살고 있어'라고 외치고 싶은 껍데기만 가상공간에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저는 이곳의 제 삶을, 일로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나 스스로 나를 고용하고, 브랜딩 하고, 마케팅하여 스스로 우뚝 서보기로 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럴듯해 보이는 사진이나 영상을 공중에 날려 보내기보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득하게 내 생각을 곱씹고, 되돌아보며 글로 남기기로 했습니다.
"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살아왔던 시간도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다."라고 말하신 고 박완서 작가님의 말씀처럼. 난 글을 쓰며, 하루하루에 충실하고 있는 지금 나의 삶도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다면, 나 스스로가 나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리며 위로해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