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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리 Aug 23. 2021

영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생각 하나,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영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사는 거라구요!


뮤지컬 <프로듀서스>에 나오는 주인공 ‘레오’의 대사다. 대사와 함께 자신의 포부를 외치는 넘버로 이어지는 장면이 왜 이렇게 기억에 선명한지 모르겠다. 넘버의 경쾌함, 무대의 화려함, 남자 배우의 수려함, 그 장면이 인상 깊을 이유는 많았지만, 무엇보다도 저 대사가 참 사람 가슴을 두드리는 데가 있었다.


그래, 나도 한때는 영화 속 멋진 주인공을 꿈꿀 때가 있었지. 어느덧 팍팍해진 주위 환경에 둘러싸여 그렇고 그런 삶을 살아갈 줄은.. 정말 그 어떤 계획에도 없었는데. 무미한 삶에 끝자락에서 저 대사를 따라 칠 때면, 답답한 가슴이 좀 풀리는 효과가 있다. 잊어버렸던 꿈도 생각나고, 실낱같은 삶의 동기도 생겨나는 것 같고,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레오에게 연쇄했던 극적 사건들이 내 앞에는 펼쳐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레오도 주인공이었지..


내 삶도 한 편의 영화라면, 이 영화에 주인공은 나다. 한없이 자신의 연애 고민을 늘여놓는 친구를 볼 때면 나는 이렇게 얘기했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야, 언제까지 내가 친구 역할에만 머물러야 하니. 지루한 대화를 환기하려는 유머였지만, 사실 문제였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의 삶 안에서도 주변부로 밀려났다. 내 영화에서마저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이 되기 위해선 크게 두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극을 이끌고 가는 목적과 목적을 향한 능동적인 행동이다. 하루하루 주어진 일을 감내하는 삶을 살다 보니, 정작 내가 왜 살아가고 있는지 삶의 목적을 잃어버렸다. 나의 목적 달성보다는 타인의 목적을 위해 조력하는 일들이 삶을 채웠다. 남을 위한 일을 수행하는 데에 능동성은 사치일 뿐이었다. 그저 시키는 일을 잘 처리하면 그뿐이니까.


목적과 능동성을 잃은 나는 조연이었다. 이제는 조연에서도 내려가 단역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어떤 이는 조연, 단역에도 의미가 있다며 시답잖은 소릴 하는데, 연기를 해본 사람으로서 확언할 수 있다. 반드시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촬영 현장에서 단역들이 받는 처우를 수태 보아왔고, 세간의 관심은 주인공에게만 쏠린다는 당연한 이치를 몸소 체득했다. 주인공에 밀려 비켜서는 심정이 얼마나 비참한지 아는 사람은 절대 저런 태평한 소리 못한다.


주인공이 되어라. 내가 나를 주인공으로 캐스팅 하자. 남이 안 써주니, 나라도 구제해야 하지 않을까? 예전 나의 연기 선생님은 단역을 오래 하면 이미지가 굳어져서, 절대 조연이나 주연을 할 수 없다고 충고했었다. 그 말이 체감되는 요즘이다. 수동적인 삶에 길들여지니까 주체적인 삶이 무엇인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당장에 할 수 있는 것은 수동적 삶을 단절하는 일이다. 주인공이 되고 싶으면 조연과 단역은 더이상 맡아선 안된다. 그러고 나면 잃어버렸던 나의 목적과 능동성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까?


내 영화에 시놉시스부터 다시 써야겠다. 내가 연기할 주인공 역할을 그 어떤 영화보다 영화 같은 캐릭터로 설계해야겠다. 그 영화의 결말은 기어코 해피엔딩으로 귀결될 것이다. 다시 시작하는 시점에서 레오의 대사를 읊어보자. 마법의 주문이 될지, 또 모를 일이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건..

 

영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사는 거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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