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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 막막 Jan 21. 2022

살아 생전에

생을 마감한 후 '가'는 심판대에 서게 되었다.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서 살아 생전에 그의 행실과 언행을 판단해 향후 5만년 간의 행선지를 결정짓는 심판대이다. 지하동굴과 같이 어두컴컴한 공간에 발을 뗄 때마다 발자국 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가는 겁에 질려 천천히 이동했다. 모든 것이 차갑고 적막했다. 가는 계단을 타고 동그란 공간 위에 섰다. 키의 두배 쯤은 넘는 듯한 높은 연단이 눈에 들어왔고, 그 뒤로 이글거리는 불길이 넘실댔다. 불길을 뒤로하고 검은 형체로 위엄을 풍기며 앉아있는 이, 염라였다. 염라는 이 심판을 관장하는 절대자로, 가의 모든 행적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는 근엄한 입술을 무겁게 떼었다.

"가는 듣거라. 너는 네가 살아 생전에 저지를 과오들을 잘 알고 있느냐."

가는 주저하다가 말했다.

"예, 알고 있습니다."

"너는 스스로 비참한 삶을 산 것도 모자라, 네 스스로 목숨을 끊어 부모님을 비롯한 너의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대못을 박았다. 맞느냐?"

"그치만… 그치만, 제게는 저의 죽음을 슬퍼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제 주변엔 사람이 없었습니다."


염라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다음 말을 이어갔다.

"너는 살아 생전에, 참으로 음란하고 탐욕스러웠다. 하늘 기록에 의하면 너는 죽기 직전까지 매일같이 혼자 수음을 했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폭식을 했다. 이게 사실이냐?"

가는 너무 부끄러워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예… 그렇지만 그건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저 혼자 한 일입니다."

"이 뿐이 아니다. 너는 길거리를 지나다니며 사람들을 보며 이상한 생각을 하였고, 방치된 물건을 보며 도적질을 할 나쁜 마음을 먹었었다, 이게 맞느냐?"

"하지만 그건 생각뿐이었습니다."

"생각을 한 것과 행동으로 옮긴 것은 한 끗 차이라, 그것 또한 죄질이 매우 나쁘다고 할 것이다."

염라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가는 불만이 섞인 가는 목소리로 항변했다.

"아니, 저는 그런 생각만 하였을 뿐, 절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강간, 절도, 살인 등을 저지른 더 악질인 사람들도 천국에 갔는데, 저의 죄질이 나쁘다고 하시는겁니까?"

"너는 살아 생전에 아무와도 어울리지 못했고, 부덕한 생각을 나눌 사람이 없었다. 그렇지?"

"네"

"그것이 문제였다. 파렴치한 사기꾼, 부정한 절도범, 잔혹한 살인마, 모두 그들 옆에는 사람이 있었다. 적어도 네 놈처럼 혼자이진 않았지. 기껏 사람들과 어울려 살라고 만들어놨거늘, 그 규율을 지키지 못한 죄, 그것이 나쁘다 할 것이다."

가는 너무나도 비참했다. 살아서도 외로움에 너무 괴로웠는데, 죽어서까지 그것이 잘못이었다 하니 너무 비참해 죽을 지경이었다. 이미 죽었지만.

"니 놈은 본인의 능력을 모르고 지나치게 오만했고, 그러면서도 가식적으로 겸손한 척을 했다. 뭐든지 니가 하면 할 수 있을거라는 택도 없는 자만심으로 되도 않는 일에 도전했고 그러면서 실패에 허덕였지. 사랑받을 행동은 하지 않으면서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며 괴로워했고, 너의 이타심은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한 여자만 사랑할 자신도 없으면서 결혼을 한 죄, 그 사랑이 영원할 거라 약속한 죄, 아이를 감당할 수 없으면서도 가정을 꾸린 죄, 사람들과 어울려지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서도 사회생활에 끼어든 죄, 그리고서는 속죄하겠다고 혼자 괴로워한 죄...!"

가는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 앉고 말았다.

"본인이 괴롭다고 차라리 부모님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죄, 너에게 호의를 보였던 사람들에게 오만하게 호의를 답하지 않았던 죄, 거절당할까봐 먼저 연락을 하지 않은 죄, 연락을 하고도 어색할까봐 약속을 잡지 않은 죄, 기타 등등의 죄를 물어 너에게 법정 최고형인 지옥행 5만년을 선고하노라…!!"


가는 순간 귀가 멍해졌다. 그의 모든 시간이 멈춘듯 했다. 


문지기가 다가와 가의 팔짱을 끼고 지옥문으로 데리고 가려던 찰나였다. 별안간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캬하하하하하!!! 

생전에 보지 못했던 그의 웃음이었다. 문지기는 갑자기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이상하게 생각한 염라가 문지기를 잠시 멈춰세우고 가에게 물었다.

"왜 별안간 웃음을 내느냐?"

가는 눈물까지 보이며 웃으며 말했다.

"저는 살아 생전에 저의 존재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저 저의 생각이 잘못된 것 뿐이었습니다. 저라는 존재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저에게 위안이 되는지 모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이지 감사합니다…!!!"


가는 그렇게 흐느끼며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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