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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piphany Feb 25. 2023

한국에서 있게 된 3개월

간절했을 때는 찾아오지 않던 기회

2주 전 회사에서 한국으로 3개월 파견업무를 다녀오라는 요청을 받았다. 한국에 있는 같은 팀 직원 2명이 동시에 퇴사하는 바람에 공석이 생겼는데 새로운 사람을 뽑는 대신 나에게 싱가포르 업무와 한국 업무를 동시에 해보라는 제안이었다. 업무량은 많아지는 것이니 그리 유쾌한 제안은 아닐 수도 있지만, 다행히 i) 다른 나라가 아니라 한국에 간다는 점, ii) 업무가 확장되는 만큼 배우는 점이 분명 있을 테고 iii) 결과적으로 나의 커리어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가기로 했다. 사실 나의 선택권은 없었지만 이왕 가는 걸 좋게 생각하고자 하였다.


그러면서 생각이 든 것이 코로나가 한창인 2020년 - 싱가포르에서 모든 항공 운행을 중단하고 코로나 규제가 가장 심했던 때가 떠올랐다. 당시 한국에서도 규제가 있었지만 싱가포르와는 비할 것이 아니었는 데, 싱가포르에서는 필수 산업(교통, 생필품, 의료)을 제외하고는 모든 시설이 일제히 폐쇄되었었고, 밖에 나가면 도시 전체가 사람이 살지 않는 암흑의 색깔이었다.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규제는 실내/외 할 것 없이 동거인을 제외한 누구도 만나지 못하게 했던 것인데, 가족이나 룸메이트 없이 혼자 사는 나는 그 기간 동안 거의 누구도 만나지 못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는 생각보다 꽤 힘들고 답답한 일이었다. 아파트 경비들은 코로나 기간 동안 추가 업무를 맡았던 지 아파트에 출입하는 모든 이들의 신분증을 확인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시야를 피해 친구를 초대하거나 반대로 친구 집에 방문하는 일도 불가능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이것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몰랐다.


하여튼 이렇게 나름의 고통스러운 코로나 기간을 지내며 나는 싱가포르에서의 모든 걸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싱가포르에서의 취업을 간절히 원하고 운 좋게 회사에 들어갈 수는 있었지만, 당시의 생활은 더 이상 내가 생각한 싱가포르가 아니었고 그곳이 어디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다만 당시 떠나지 못했던 이유는 코로나가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었기에 나중에 싱가포르에 돌아와야 할 때 입국 허가가 나지 않거나 비자가 중단되거나 하는 가능성 때문이었고, 최악으로는 그로 인해 비자가 필요한 외국인으로서 직장을 잃게 되는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나 결국 우리는 비정상에서 정상인 상태로 돌아왔지만, 그래서 그 걱정들이 사실은 지나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그랬다.


벌써 2022년이 지나고 2023년이 왔다. 이제 원하는 때 언제든 어디로든 갈 수 있게 되니 그때 가졌던 간절함도 옛날 얘기가 되었다. 그러다 이번에 회사에서 3개월 파견 제안을 받으며 문득 그때가 생각났다. 그때 이런 기회가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 까. 그때는 얼마나 간절했던 가. 간절히 원할 때는 오지 않던 기회가 별 생각이 없게 되니 나에게 오게 되었다.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지는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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