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를 보고
얼마 전 유퀴즈에서 아나운서로 근무하다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다시 방송국으로 돌아가 재직 중인 아나운서 편을 보게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로스쿨에 진학한 이유가 법조인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나운서로서 시사 프로그램을 보다 잘 진행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이었다. 그의 끊임없는 노력하는 자세와 겸손함, 꿈을 향해 가는 모습이 정말 멋지다고 느꼈지만 동시에 몇 가지 생각이 떠올라 정리해 보았다.
먼저 ‘우리나라만큼 시험과 자격증을 중요시하는 사회가 있을까’하는 생각. 만약 그가 시사 프로그램을 더 잘 보도하기 위한 방법으로 로스쿨 진학이 아닌 법률 서적, 판례를 찾아보는 방식으로 필요한 법률 지식을 쌓았더라면 어땠을 까.
개인적으로는 그 방법으로도 충분히 양질의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 부족함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법률 사건뿐 아니라 다양한 주제의 사건을 다뤄야 할 텐데 예를 들면 잠수정 실종 사건을 보도하기 위해 꼭 자신이 심해 탐험가일 필요는 없는 것처럼 어떤 분야에서 전문 지식을 갖는 것이 훌륭한 시사프로그램 진행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정된 시간과 물리적 제약을 고려할 때 주변에 있는 자원을(e.g. 전문가 인터뷰 등) 잘 활용하는 것 - 스스로 가장 잘하는 일을 담당하고, 그 외 일은 다른 사람에게 delegate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결국 우리 모두에게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능력은 <갖고 있는 자격증 개수>가 아닌 바로 <skillset> (e.g.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라면 논리적 사고, 핵심 논점을 사건에서 이끌어내고 풀어가는 능력,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판단 능력, 그것을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능력 등)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에서 그의 변호사 자격증 도전기가 과연 멋지다고만 해야 할지 아님 우리 사회의 자격증 만능주의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느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다음은 그의 학업 휴직과 관련하여 진행된 회사 인사위원회 논의 내용이다. 이전에도 회사에서는 같은 이유로 학업 휴학을 신청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낮은 직무 연관성 & 퇴사 가능성을 고려하여 모두 반려되었기에, 학업휴직을 받아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고 한다. 그때 갑자기 한 선배 아나운서가 손을 들고 “이 사람은 다릅니다. 이 사람은 로스쿨을 가도 반드시 회사로 돌아올 사람입니다.”라고 모두를 설득해 주는 덕에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진행자들은 매우 감동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는데, 사실 나는 이 부분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그 선배 아나운서의 후배를 아끼는 마음과 그렇게 신임을 얻기까지 그가 보여주었던 인성이 훌륭했음에 틀림없다는 것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로, 누구나 직업의 자유가 있지 않은가? 회사를 나갈 때는 그런 마음이 없다손 치더라도, 3년 동안 학업을 하며 다양한 경험과 또 생각지도 못한 계기를 통해 생각이 변할 수도 있는 것인데, 그것을 절대 벌어질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거나 혹은 그렇게 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한 기회주의자나 의리가 없는 사람으로 생각되는 전체주의 사고를 전제하고 있는 것 같아 동의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3년 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결심을 갖게 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데 과연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을까.
그러기에 회사에서는 i) 학업 휴직을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거나, 아니면 ii) 누구에게도 예외 없이 명확한 제한 조건을 명시하거나, 그렇게도 강제하지 않을 것이라면 iii) 개인의 자유에 맡기거나. 옵션은 이 세 가지가 되지 않을까. 인간적 호소로 예외를 둔다면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차별받은 것과 다름없게 되는 것이니까.
마지막으로 어디서든 가장 중요한 것은 실무 경험과 실무 능력이라는 생각. 한국 사람이라면 모두 시험을 위한 공부를 많이 해왔겠지만, 사회생활을 하며 점점 더 느끼는 사실은 암기를 통한 공부보다는 실무에서 훨씬 더 많은 지식과 배움을 얻는다는 것이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서 자격증도 좋고 공부도 좋지만 실제 관심 있는 분야에서 경험하고 도전해 보는 생각을 (나부터) 가져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