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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진 Oct 28. 2019

천안함 생존장병,국가유공자 인정 받았을것…9명에 불과

버려진 천안함의 생존 장병들, 사회는 또 한번 불신의 얼룩을 남겼다


사람의 마음은 흰 종이와 같아서 불신의 얼룩이 스미면 다시 깨끗한 모습으로 되돌아가기란 어려운 일이 됩니다. 그간 소홀함과 거짓말, 배신으로 얼룩진 관계를 되돌리고 싶어 우리는 얼마나 서로에게 간청하고 눈물 흘린 사과를 거듭했습니까. 불신의 기억은 기억에서 가려질지언정 없어지진 않습니다. 그래서 나쁜 기억은 관계 없는 다른 일들로 덮습니다. 그것이 돌이켜 보면 유일한 방법인 듯 싶습니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사람 간 관계는 얼룩을 지우지 못하고, 다만 갖가지 천으로 덧댄 누더기 옷으로 변해가기 마련입니다.


“입대할 땐 조국의 아들, 다쳐서는 느그 아들”이란 문구가 현실과 너무나도 잘 들어맞아 서럽습니다. 지금껏 나라 위해 헌신한 장병들에게 이 사회가 얼마나 소홀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지난 2016년 DMZ 수색 정찰 중 목함 지뢰가 터져 신체에 상해를 입었던 하재헌 중사는 여론이 분개한 후에야 전상 판정을 받았습니다. ‘공상’이라고 판정한 것이 재심의 끝에 비로소 바른 자리를 찾아 ‘전상’이 됐습니다. 하 중사의 아버지가 문 대통령에 장문의 편지를 쓰고, 대통령이 재검토까지 지시하자 벌어진 일입니다. 박삼득 보훈처장은 재심의 결과를 발표한 자리에서 “보훈 심사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하재헌 중사와 가족분들께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습니다. 공적인 자리의 언어 선택은 항상 제 기분을 나쁘게 만들었는데요 ‘마음의 상처’란 말은 실로 저렴해서 과연 이 상황을 표현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누군가 날 위해 헌신하고 노력한다는 건 크나큰 축복입니다. 자나 깨나 그 자릴 지켜주고, 어떤 환경 속에서도 제 자신을 희생한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입니까. 실제로 제가 글을 적고, 여러분이 이 글을 보는 순간에도 군 장병들은 잠을 깨워 초소를 지키고 또 부대의 울타리 안에서 각기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겁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빚졌기에 우릴 대신해 짐을 지고 있을까요? 그리고 우린 그들이 대신한 위험과 의무에 충분한 책임을 지고 있는 건가요? 혹, 이런 조건 없는 축복에 우리 사회가 무감각해진 건 아닐까요.


“호의가 계속되면 그것이 권리인 줄 안다.” 한 영화 통해 화제가 된 말입니다. 영화(‘부당거래’)가 나온 게 2010년이니까 벌써 10년이 돼 가는데요, 그럼에도 인터넷 등에서 이 문장이 계속 회자되는 건 우리 현실과 너무 잘 들어맞기 때문일 겁니다.


군 장병들의 희생이 계속되니 그것이 권리인 줄 안, 이 사회와 그들의 피해를 보상할 책임 있는 국가보훈처에 경종을 울립니다.


보훈처 잘못은 하 중사에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난 2011년 서해 바다를 수호하다 침몰한 천안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저는 목숨을 잃은 장병들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우를 삼킨 시커먼 바다를 뒤로 하고 평범한 일상을 강요받은 생존 장병들의 얘깁니다.


다음은 지난 3월 성인남녀 120명을 대상으로 천안함 생존장병의 사후보상에 관해 설문 조사한 뒤 실습 기사로 작성한 것입니다. 시커먼 바다 속으로 전우들을 잃은 58명의 생존 장병은 아프간 파견 미군보다 극심한 PTSD를 호소함에도 단 6명만이 국가유공자로 지정받았습니다. 배가 가라 앉고 그들은 각자 “국가유공자로 지정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답니다. 실제로, 전달받은 바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전역이 가까워오자, “지시사항 받은 바 없다”며 군은 그들을 돌려보냈습니다. 몇몇은 지금도 정당한 보상을 위해 분투하지만, 상당수는 기대를 버려 우리의 기억 속에서도 차츰 잊혀져 갔습니다. 우리 사회는 다시금 군인들로부터 불신의 얼룩을 남긴 셈입니다.



“천안함 생존장병, 국가유공자 인정 받았을 것” … 실제론 9명에 불과

응답자  37.8% “천안함 생존장병, 국가유공자 인정 받았을 것”, 실제론 58명 중 9명에 불과


천안함 생존장병에 대한 사후 보상이 여론이 기대하는 수준에 못 미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남녀 120명을 대상으로 지난 3월 설문(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8%포인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7.8%가 “천안함 생존장병의 대다수는 국가 유공자로 인정 받았을 것”이라 기대했다. ‘모르겠음’을 선택한 38명을 제외하면, 참/거짓 중 하나를 선택한 응답자 중 절반이 ‘국가유공자 지정’을 기대한 셈이다.


설문에 참여한 김석진 씨(27)는 “나라를 위해 헌신하다 희생한 국군 장병들”이라며 “당연히 받았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익명의 응답자는 “장병들의 희생을 제대로 기리지 못한 것도 안타까운 현실”이라면서 “국군 장병에게 유독 소홀하단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응답자 37.8%가 천안함 생존장병이 국가유공자 지정받았을 것이라 예상했다. '모르겠음'을 답한 31.6%를 제외하면, 응답자 절반이 이 같이 예상한 것이다.


하지만 생존 장병 58명 중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은 것은 9명이다. 그 중 PTSD는 6명이다. 국가가 약속했던 ‘피해에 대한 완전한 보장’과는 거리가 있다. 천안함이 침몰한 2011년 후 9년 간 모두 26명이 국가유공자 지정을 신청했다. 4명 중 한명 꼴로 신청이 통과됐다. 사고 당시 천안함에 타고 있던 최광수 씨(30)는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사고 직후 군 관계자가 와서 국가유공자가 될 수 있다’고 얘기해 국가 보훈처에 문의했더니 “전혀 지시사항이 없었고, 하려면 개인적으로 신청을 해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최 씨 또 등 뒤에 빈 공간 있는 것을 견디기 힘들다고 밝혔다. 사고 당시 자신의 뒤에 있던 함미(배의 꼬리)가 절단된 기억 때문이다. 가족 증언에 따르면 그는 만성적인 불면증과 악몽에 시달리며 엘리베이터 등 폐쇄된 공간을 기피하고, 건물 안 비상 탈출로와 소화기, 망치의 위치를 확인하는 과민 반응, 강박관념을 가지게 됐다. 외상후스트레스에 따른 과민반응, 충격의 재경험 감정의 회피 또는 마비 증상을 호소했다.


그럼에도 그는 국가 유공자 두 차례 신청에서 모두 ‘등급 기준 미달’ 통보를 받았다. 탈락 이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받지 못했다. 신체검사 결과통지서가 오는데,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증상(악몽, 불안 등)은 잔존하고 있으나 진단 기준을 만족하지 못함(등급 기준 미달)”이라 써 있다. 정신적 고통이 있는 것은 인정하나 국가가 책임질 수준은 아니란 말이다.


국가 유공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수준의 증상을 입증하기 까다롭다. ‘외상 후 스트레즈 장애(PTSD)’로 국가 유공자 인정받으려면 일상생활에 제한이 있는 등 증상의 심각성을 입증해야 한다. 수류탄 훈련 도중 사고를 당해 얻은 PTSD로 2015년 국가유공자 인정받는 박 씨는 2011년부터 5년간 군ㆍ민간 병원에서 받은 20 여건의 진료 기록을 꾸준히 모아 피해 사실을 입증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보훈처 측은 기준을 낮추면 6ㆍ25와 월남전 참전자 등 PSTD 유공 대상자가 너무 많아져, 실질적인 보장이 힘들어진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피해 입증의 책임과는 무관하게 사고 현장에 있었던 사실만으로 국가가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천안함에 대한 기사에는 “국가가 국가를 지키다 순직한 이들을 인정해야 한다” “그들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면, 그 국가는 국민들의 것이 아니다”는 등 댓글들이 달렸다. “천안함 용사 및 가족친지 여러분께 대신 사과의 말씀 올린다”고 적은 네티즌도 있다. 생존장병의 피해를 국가가 배상해야 한단 주장이다.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37%가 ‘국가 유공자로 지정받았을 것’이라 기대한 것도 현행 보훈 방침이 여론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대학생 박 모씨는 “당연히 유공자 인정을 받았을 거라 생각했다”면서 “나라 위해 희생한 국군 장병은 당연히 나라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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