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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Jan 08. 2022

할머니도 한때는 볼을 붉히던 소녀였겠지

갈 때마다 울고 오는 그곳, 요양원.



































작년 11월 말, 요양원에 계시던 친할머니가 천국으로 가셨다.

코로나로 급격히 위독해지셔서 일주일 가량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중에 엄마와 고모, 오빠만 방호복을 입고 할머니를 뵐 수 있었다. 내가 아는 우리 할머니는 늘 세련되고 완벽한 모습이셨는데 요양원에 들어가신 몇 년간 쭉 시들어가시다 나중엔 우리를 다 알아보지도 못하셨다. 중학생 손녀에게 화려한 빅토리아 시크릿 속옷을 사다 주실 정도로 예쁜 것을 좋아하시던 할머니는 그렇게 병원복 차림으로 비닐에 포장된 채 화장장으로 옮겨지셨다. 심지어 담당 공무원의 실수로 관도 없이 비닐에 싸인 그대로 화장장에 도착하여, 곁에서 이 황당한 장면을 보게 된 다른 코로나 유족들이 고성을 지르며 화를 내는 모습, 화장장 직원분들 역시 당황하여 무전을 치는 기막힌 모습을 오빠가 보낸 영상으로 받아보아야 했다. 영상 속 고모와 엄마의 황망한 울음소리가 서러워 가슴에 박혔다.

담당 공무원과 병원은 서로에게 책임을 돌렸다. 결국 할머니는 늦은 밤 그 길로 다시 병원으로 향하셨다 관에 담겨 다시 돌아오셔야 했다. 추운 날 비닐에 싸인 모습 그대로.


외할머니와 친할머니 모두 몇 년간 요양원에서 천천히 시들어 가셨다. 하루에도 오만가지 잡다한 생각을 하고, 예쁜 것과 맛있는 것, 귀여운 것에 관심을 두는 30대의 나와 할머니가 달랐을 리 없다. 얼마나 걷고 싶으셨을까, 얼마나 말하고 싶으셨을까. 아주 드물게 정신이 돌아오는 날이면, 그게 깜깜한 새벽이라면, 할머니는 구석 창가 침대자리에서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그 생각만으로도 나는 너무나 아득해진다.


장례를 치르고 일주일 뒤, 할머니가 건강하고 윤기 나는 얼굴로 곱게 단장하신 채 엄마의 꿈에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할머니는 이제야 훨훨 날고 계실 것이다. 할머니의 장례는 잔디장으로 치러졌는데 할머니의 뼛가루 색이 너무 탁해서 그때 참 많이도 울었다. 우리의 수목장을 치러주시던 직원분께서는 우리나라 할머니들이 고생을 많이 하셔서인지 유난히 탁한 뼈 색을 갖고 계신다고 하셨다.


며칠 전 외숙모가 엄마에게 전화를 하셨다. 요양 병원에서 연락이 왔는데, 외할머니가 식사를 원활히 하지 못하시니 코 줄을 연결해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엄마는 고개를 저으셨다. 외숙모와 엄마는 할머니를 방이 여러 개 있는 큰 외삼촌 댁으로 모셔오고, 엄마가 그곳에 상주하시며 할머니가 편안한 가운데 떠나시게 하는 것이 낫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엄마는 아직도 후회를 하신다. 외할머니가 발목이 좋지 않다고 말씀하시던 그쯤, 바로 병원에 모시고 갔어야 했다고. 유난히 튼튼하셨던 할머니였기에 4남매 모두 별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외할머니의 발목은 그때부터 천천히 굳어갔고 그것이 다리 전체로 번졌다. 엄마는 할머니와 목욕탕에 더 자주 가지 못한 것이 가슴에 맺혀있다. 맛있는 걸 먹을 때면 "이런 거 먹으면 우리 엄마 생각나."라고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신다.


그런 엄마를 보아 왔기에, 엄마가 두려워하시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딸이 될 것이다. 엄마가 생의 마지막 날까지 자유로우실 수 있기를, 사는 날 동안 다양한 꽃을 더 많이 마음껏 피우실 수 있기를. 그것은 떠나실 엄마와 남겨질 나 모두를 위한 것이다.

그렇게 엄마가 생의 마지막 날까지도 빛나실 수 있게, 민들레 홀씨처럼 훨훨 날아 하늘에 가실 수 있게 지켜 드리고 싶다. 엄마가 나를 오래도록 지켜주셨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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