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poonface Mar 20. 2021

10월은 그렇게 간다_11

11. 시간은 그렇게 다시 만나나 봅니다.

느즈막히 정형외과 병동으로 옮기게 되었다. 격리병동에서 벗어나 간호사 선생님들과 다른 환자들이 함께 하는 이 공간이 그녀에게 보호받고 있음과 안전함을 말해 주는 것 같았다. 귓가에 들리는 수많은 음성과 눈부신 조명, 발소리마저 반가웠고 안심이 다. 이젠 잠시 가빴던 숨을 고르 쉬어도 될 것 같은 안식처를 찾은 것 같다.

     

간호 통합 병동이었던 탓에 다음날 찾은 병원의 그는 혼자 침상에서 소변 보는 법을 익혼자서도 잘하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누워있는 것밖에 할 수 없는 그였기에 그녀가 그의 손과 발을 대신해야 했다.


간호사 선생님을 통해 며칠 뒤 수술이 잡힐 거라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역시나 수술이라는 단어가 주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에 그녀는 마음이 쉽게 놓이지 않았다. 수술 당일, 사무실에서 상황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그와 카톡을 주고받으면서도 단순한 문서마저 집중이 되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 심란다.

      

이제 곧 수술실에 들어갈 것 같다는 그의 말에 "수술 잘하고 오면 어마무시하게 이뻐해 줄게"라며 응원의 말을 보냈지만 그가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았는지 여전히 '읽히지 않음'으로 남아 있는 문자가 그녀는 자꾸 신경이 쓰였다. 혼자서 괜찮을까 하는 염려에 자꾸 그가 마음에 밟혔다. 읽지 않음 표시가 사라지지 않는 메시지를 보고 있으려니 병원으로부터 그가 수술실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과 함께 마취와 수술이 곧 들어갈 거라는 문자가 왔다. 기분이 참 묘했다.      


늘 그녀는 엄마의 간호만을 받아 왔던 사람이었다. 이렇게 전적으로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어 옆에 있어 본 적은 없었던 그녀였다.

      

그녀가 수술실을 들어갔다 나왔을 때 그녀의 엄마는 딸이 깨끗한 시트에 누워 있을 수 있도록 침대와 베개 커버를 새롭게 바꿔놓고 딸을 기다렸다고 했다. 전신마취를 하고 오랜 수술을 마치고 돌아온 딸을 처음 보았을 때 제발 장루만은 달고 나오지 않기를 바라며 배가 덮혀져 있는 곳을 가장 먼저 걷어보고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전신마취를 하고 몇 시간 동안 잠을 재우면 안된다고 해 꼬박 자정을 넘는 시간까지 입술이 말라 물을 찾으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그녀를 흔들어 깨워야 했다고 했다. 딸의 마른 입술에 물조차 줄 수 없고 재울 수도 없는 상황을 지켜보며 모두가 곤히 잠든 시간을 씨름하는 그녀와 함께 안타까움으로 꼬박 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그녀의 엄마도 아그녀를 보며 제발 별일이 아니기를 기도하며 그렇게 시골에서 서울까지 밤새 엠블런스를 타고 그렇게 달려갔던 걸까. 딸에게 필요한 것을 챙겨다 주기 위해 그 새벽 찬 바람을 맞아가며 낯선 서울 길을 혼자 헤매며 시골까지 내려가 그렇게 다시 그 먼길을 돌아왔을까. 아무런 연고도 없는 서울 병원에서 십 수일을 수액으로만 살아야 했던 그녀 옆에서 아무런 입맛도 느끼지 못한 채 하루 한 끼 모래를 씹는 마음으로 밥알 하나하나를 얼마나 애써 삼켜야 했을까.  

    

프다고 투정하는 딸 곁에서 엄마의 손길이 아니면 안되는 상황 속에서, 그녀의 엄마는 보조 침대가 불편했지만 몸을 뉘어야 했고,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딸 옆에서 보호자 식사도 받지 않고 불편한 한 끼를 때워야 했다. 그녀의 엄마도 얼마나 하루쯤은 잠시라도 쉬고 싶었을까. 이상하리만큼 그와의 시간을 지나며 그녀는 자신의 엄마도 지금 이런 마음이었을까 하는, 그동안 알아채지 못하고 누구도 돌아보지 못한채 지나쳤던 엄마의 마음의 시간이 지나감을 느낀다.      


퇴근할 때쯤, 수술이 끝나고 엑스레이를 찍고 병실로 갈 거라는 문자를 받은 그녀는 시의회 보고로 팀이 남아있는 것을 뒤로 하고 6시가 되자 서둘러 나왔다. 그보다 먼저 병실에 도착해 깨끗한 시트로 정돈하여 그를 맞이하고 싶었다. 병원 입구를 앞두고 눈 앞에 보이는 하늘이 너무나도 파랗고 깨끗했다. 수술로 고생했을 그에게 기적과 같은 오늘의 하늘이 얼마나 예뻤는지 이야기해주고 싶어, 길에 멈춰 하늘 사진을 한컷 찍고 서둘러 병실로 올라갔다.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작가의 이전글 10월은 그렇게 간다_1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