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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oonface Mar 21. 2021

10월은 그렇게 간다_12

12. 함께여도 괜찮아.

수술을 마치고 병실로 곧 돌아온다는 그의 소식에 그녀는 서둘러 병원 계단을 따라 뛰어 올라갔다. 혹시나 늦었으면 어떡하나 했는데 다행히 그의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아직 안 올라왔구나.


다행이었다. 수술하느라 혼자 얼마나 외롭게 있었을까 싶어 먼저 병실에 와 맞이해 주고 싶었다. 그녀도 아팠을 때 엄마가 곁에 있어 외롭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새로 받은 깨끗한 시트로 침대와 베개를 정돈하고 잠깐 화장실을 다녀오니 그새 그가 수술을 마치고 돌아와 있었다. 힘든 내색이 보였지만 그래도 나아 보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뒤 그는 휠체어를 탈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다행이다. 의사 선생님은 그가 목발도 짚고 제대로 걸으려면 6개월은 걸릴 거라고 이야기했다. 그런 그가 휠체어를 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그저 반가울 뿐이었다.


병원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을 기다리는 그녀의 시선에 사람들이 보였다. 지하철을 함께 기다리며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을 수 있는 평범함이 소중해 보였다. 어쩌면 그녀에게 당분간 그런 일상들이 당연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대한 슬픔이 느껴졌다.


고독했다. 교통사고가 난 날, 작고 어린 아홉 살 소녀는 놀란 가슴을 안고 울면서 미술학원을 갔다 왔다. 집에 돌아와 아무도 없는 빈방 적막 속에 누워 엄마를 기다렸다. 아픈 동생은 모든 식구, 특히 엄마가 더 필요한 것처럼 보였다. 어린 소녀는 그런 엄마에게 측은지심을 느꼈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칭찬하는 알아서 잘 크는 아이가 되기로 다짐했는지 모르겠다.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요구를 차단하고 칭얼대지 않는 것이 잘하는 행동이라 생각했나 보다. 


 소녀가 바랬던 건 엄마가 자신을 알아봐 주는 게 아니었을까? 동생 뒤에 가려진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 의젓하게 알아서 하는 어른 아이가 되면 엄마좋아하고 알아봐 줄거라 믿었지 모르겠다. 어린 소녀는 엄마의 시선과 곁이 필요한, 혼자서는 어른이 될 수 없는 한낱 어린 꼬마단 걸 왜 그땐 몰랐을까.


어른이 된 소녀는 늘 초연한 듯 서 있었지만 어디에도 그 헛헛한 마음을 표현하기 힘들었다. 누구에게도 그녀 안의 초라해 보이는 어린아이의 고독함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지나가는 바람에도 내심 반가워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고개를 조심스럽게 내밀다가도, 슬그머니 자신을 잃고 눈치만 살피다 더 이상 바람에게 같이 놀자고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래서 단짝을 좋아했는지도. 커서 만난 사회의 어른 사람들은 혼자서도 잘 지내고 잘 노는 것이 건강한 어른의 기준이라는 듯 평가했다. 그녀 역시도 그런 어른 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였을지. 혼자가 싫었던 그녀는 그들 앞에 자신은 혼자 서지 못하, 불건강한 어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같이 하고 싶은 그녀의 마음과 달리 그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될까,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한심한 어른 사람으로 비춰질까봐 더 이상 누구에게도 가까워지길 바라는 마음속 바람마저 외면했다. 그녀의 기대마저 실망이 되어 텅 빈 마음을 더욱 시리게 하지 않기 위해, 그렇게 다른 어른 사람들처럼 혼자도 괜찮게 잘 지내는 듯 코스프레하며 자신의 유리병 속에서 가까워질 수 없는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을 늘 그리워했다.


혼자 퇴근하는 길이 싫을 때면 뻔뻔해 보일 정도로 아무렇지 않게 그에게 지하철역으로 데리러 오라는 말을 건넸다. 그가 기다리는 플랫폼으로 달려가는 그녀의 발걸음이 세상 누구보다 참 즐겁고 흥분됨을 느낀다. 그가 그곳에 있기 때문에, 그곳에 가면 그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하지만 당분간 그가 함께 했던 자리에 혼자 있어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그 슬픔을 밀쳐내고 다. 


그는 그녀에게 '네가 필요해'라는 말도, '네가 있어 행복해'라는 말도, 그리고 '자랑할 것 없이 초라해 보이는 마음'의 모습마저도 내비칠 수 있는 그런 '바람'이 되었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마음의 섬이 무너지지 않도록, 어디에도 주지 못하는 쓸쓸했던 마음을 아무도 모르게 그녀는 숨죽여 끌어안고 있었다. 남들처럼 괜찮은 어른 사람이 되고 싶었기에 어린소녀의 외로웠을 마음 누군가와 마음과 일상을 나누고 싶은 바람조차 외면했던 그녀에게 이제 그 '바람'은 왜 우리가 '함께' 해야 하는지, '함께' 해서 더욱 즐거운 일들이 무엇인지, '함께'여도 괜찮을 것들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알려주는 것 같다.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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