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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Choi Aug 07. 2018

Sabbatical Year on the road

-길 위의 안식년

Day 59  영화 찍다 화상

(말라게타 해변)


  지중해 코 앞 말라게타 해변 야자수 그늘 아래 비치 의자를 놓고 앉아 있는 걸 상상조차 해 본 적 없었고, 해변 모래 위에서 담요 하나 깔고 일광욕하는 모습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비현실적인 장면일 뿐이었다. 올해 산티아고 순례를 시작으로 지구 반대편 여행에 나서고 우연히 지인의 집이 지중해 5분 거리 해변 앞이다 보니 그 영화 속에 내가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산에서 맛본 바람과 달리 짭조름한 듯하면서 온기를 품은 바람이 파도 소리와 함께 하얀 거품까지 잔뜩 데려다 놓고 간다.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 파도 속에서 악악거리며 벌써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고 발갛게 태닝하는 이들도 액자 속 그림처럼 누워 있다.


  그들이 나 대신 물속에 들어가 파도에 몸을 띄우며 신나서 따끈한 햇볕 아래서 낮잠을 즐기고, 검은빛 도는 모래 위를 맨발로 걷는다. 느긋하게 여유로운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지나간 여행일지를 정리하는 동안 모래사장 위에 금세 사람들이 한가득 모여들었다. 나도 야자수 그늘에서 추워지면 양지로, 뜨거우면 그늘로 왔다갔다 옮기며 그들처럼 삼매경이다~

  오후엔 집 바로 뒤 투우장 건너편 히브랄파로 성벽을 둘러싼 숲길 산책을 했다. 순례길 이후 공원 빼고 오르막을 제대로 오래 걸어 본 적이 없었다. 그새 도시의 평지 생활에 젖어 가고 있다. 그래도 초록 나무들 사이로 바람이 불어오고 지중해 바다를 끼고 걷는 숲길이 고향에라도 온 것처럼 편안하기까지 하다. 동네 탐방이라도 하듯 느긋하게 성벽 바깥쪽 오솔길을 길게 따라가니 성당으로 가는 중심부로 이어졌다. 성당과 광장 주변엔 주말 오후라 그런지 어제보다 사람들이 더 많이 모여드는 것 같았다. 지나가는 사람들, 광장에서 서성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무리, 분수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관광객들, 자전거로 하이킹하는 그룹들까지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지난 3월 초에 집을 떠날 때 입고 온 초겨울 옷들이 무거워 여름옷과 샌들을 사서 처음으로 입고, 신고 해변에 나왔는데, 양말 없이 발등이 다 드러나는 샌들을 신고 해변에 앉아 있었더니 신발 끈 자리만 남기고 발갛게 익어서 따끔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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