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H Choi Aug 12. 2018

길 위의 안식년

-Sabbatical Year on the road

Day 60  살아있는 지식


  스페인 남쪽 안달루시아 지방 론다라는 도시를 아이들 영어 수업 교재에서 처음 봤다. 론다(Ronda)의 명물 누에보 다리에 관한 짤막한 글이었다. 이 다리의 기원과 건축 시기와 목적을 소개하면서 옆에 나란히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사진으로 보는 다리는 단 몇 초간의 시각적 정보쯤이었다. 이제 스페인에 와서 그 도시에 들러 그 다리를 보는 경험은 시각적 정보라는 1차 반응이 아니라 놀라움과 경탄, 호기심에서 고소공포증까지 모두 한꺼번에 일어나는 공감각 그 이상이다.


  살아 있는 경험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인쇄물이 주는 1차적 정보에는 개개의 사적 기억이나 감각이라는 경험이 전혀 포함돼 있지 않은 무색무취 일방적 주입일 뿐이다. 교육 현장에서 늘 아쉬웠던 부분이 이 간격이었다. 나도 잘 모르는 느낌이 전무한 것들을 학생들에게 전달할 때 미안했다. 모든 내용을 미리 경험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오늘 그 간극 중 하나를 메우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누에보 다리는 두 마을 사이 천애의 협곡을 이어주는 벽돌 다리다. 현대의 대형 크레인도 없었을 텐데 엄청난 규모의 다리를 그 옛날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황토색 벽돌을 반듯반듯 쌓아 올린 것이 놀라웠다. 사실 이 다리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많은 인명 피해가 있었다고 한다. 원래 있던 구부러진 긴 다리 대신 당시 왕의 명령으로 두 마을을 잇는 직선 다리를 건설하는 대규모 국책사업을 벌인 셈이었다. 절대 왕의 권력으로 노동력을 동원하고 인명이 살상된다 해도 밀어붙이고 수년에 걸쳐 완성하면서 왕의 권위를 과시한 것이다. 하지만 수백 년이 지난 현재 이 다리는 전 세계로부터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스페인 관광 수익에 기 여하고 있다. 무고한 죽음이 헛되 지 않았음을 이렇게라도 위로하면서 놀라운 건축물 뒤에 숨은 음험한 의도들도 짐작해본다.


  누에보 다리는 위에서 봐도 다리가 후들거릴 지경이지만 다리 아래 협곡으로 한참 내려와서 올려다봐도 그 높이가 믿기 어려울 정도다. 다리 양편 절벽 계곡 층층마다 카페와 레스토랑이 들어서서 사람들은 협곡과 다리를 둘러싼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물론 나와 함께 동반한 말라가 모녀는 협곡 아래 좁은 그늘에 앉아 슈퍼마켓에서 사간 샌드위치를 먹었지만. 어린 초등학생과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걸어 다니며 하는 하루 여행엔 변수가 많았다. 아이의 상태에 따라 경로와 이동 수단이 바뀌기도 하고 돌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고. 나도 내 아이 둘을 키우면서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보여주기 위해 여기저기 데리고 다녔던 때가 있었다. 말라가 **씨는 지금 내 나이에 아주 우아하게 수행하고 있다.

늦둥이 직장 맘 파이팅!!



작가의 이전글 Sabbatical Year on the roa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