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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 Apr 08. 2024

산며드는 네 번째 이야기

천태산


두려움


느닷없이 불청객처럼 찾아오기도 하고, 저도 모르게 마음속에 은밀히 파고들기도 한다. 지금도 편하고 좋은데, 굳이 왜 사서 고생을 하냐? 위험해 보이는데, 굳이 왜 가냐? 그렇게 서서히 생각이 두려움에 잠식되어 갔다. 비교적 무난하게 산길을 올라가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말로만 들었던 75미터 암벽 구간 앞에 섰다. 수락산 기차바위 느낌이지만 조금 더 스릴 있는 상위 호환 버전이라고는 들었지만, 수락산을 기차바위 구간으로 올라가 본 적이 없어 그 높이에 대한 감이 없었다.


웅장한 바위 자태에 넋이 나간 것도 잠시, 눈앞의 커다란 벽에 압도되어 정신이 금방 현실로 돌아왔다. 발을 디딜 틈이 없이 매끄럽게 떨어지는 바위 선 위로 로프 하나가 보인다. 오를 수 있을까? 로프 구간은 암벽 옆에 추락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높아 일반인 등산객은 절대 오르지 말고 우회 등산로를 이용하라는 안내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마침 바로 앞에 로프를 타고 올라가려다, 안 될 것 같아 발길을 돌린 등산객이 있었다. 그분께 등산 가방을 잘 고정해서 다시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한번 두려움에 부딪히니 선뜻 다시 로프를 잡을 용기를 내지 못하셨다.


순간 두려움이 말려왔다. 나도 저렇게 되면 어쩌지? 그래도 해보지 않고 물러나는 건 영 내키지 않는다. 마음을 다잡고, 로프를 꽉 잡아당겼다. 나는 할 수 있다. 속으로 자기 최면을 걸었다. 허락도 구하지 않고, 멋대로 내 마음에 들어온 두려움에 질 수 없었다.


바위가 수직을 이루는 짧은 구간이 있어 더 긴장됐지만, 사람들이 모여있던 위쪽까지 오르는 데는 성공했다. 뒤를 돌아보니, 역시 아찔하다. 그런데도, 다음 구간을 오르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너무 쉽게 로프 잡고 쭉쭉 올라가 버리는 사람들을 보자니, 맥이 빠진다. 나는 과연 무엇을 그렇게 겁냈을까?



믿음의 힘


난 널 믿어. 넌 충분히 할 수 있어. 두려움이 몰려올 때마다 외우는 자기 암시 문장이다. 땀이 나는 손과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이 금방 진정된다. 그리고 과거의 경험을 떠올려 본다. 지금까지 산에서 로프로 올랐던 그 어떤 암벽보다 높고 가팔라 보이지만, 불암산 국기 봉 로프를 처음 잡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지 않았던가? 꼭대기에 우뚝 솟은 바위라 겁이 났지만, 용기 내 오르니 별것이 아니었다. 손이 조금 떨리긴 했지만, 뭐…. 그건 나만 아는 비밀이니까 괜찮다.


첫 번째 암벽 구간까진 올랐는데, 그다음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잡아줄 사람도 없으니 오직 나만 믿고 올라가야 했는데, 운 좋게도 바로 앞에서 잘 올라가는 분이 있었다. 하는 법을 보고 따라 했다. 실제로 물어봤으면 더 좋았겠지만, 긴장되어 그 생각을 미처 못했던 게 가장 후회스럽다.


후-하- 숨을 깊이 들이쉬고, 2차 구간을 오른다. 중간에 발을 안정적으로 디딜 틈새가 있어, 잠시 주변을 돌아볼까 하다 이내 포기한다. 경치야 끝내주게 멋있겠지만, 풍경 감상까지 할 여유가 되지는 못했다. 확실한 건, 초반보다는 덜 무서웠다, 이미 겪어해 본 것도 있었지만, 잘하는 사람의 비법을 카피해서 따라 한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경험이 없는 새로운 도전할 때, 전문가에게 조언이나 배움을 얻는 이유다. 그 분야를 잘 아는 사람이 가르치면, 그대로 하기만 하면 나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다. 그 조언 또한 먼저 해보고, 숱하게 실패해 보고 터득한 노하우에서 비롯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백도가 안 되는 인생


한번 로프를 잡았으면, 웬만해서 멈추지 못하고 무조건 끝까지 올라야 한다. 75 미터 암벽 구간도 딱 그러했다. 일방통행 길에 오른 순간,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뒤이어 올라와야 하는 사람들을 기다리게 하는 민폐도 저지르고 싶지 않았다. 백도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런 선택지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어려운 길이라도, 나를 믿고 끝까지 가면 때로는 그 어떤 것과도 맞바꿀 수 없는 값진 결과를 얻는다. 암벽 끝에 도착했을 때, 두려운 마음을 무릅쓰고 오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고생은 좀 했지만, 그만큼 눈앞에 펼쳐진 경관이 장관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성취감은 덤이었다.


결국 선택도 본인 몫, 해서 얻는 것들도 본인 몫, 하지 않아 얻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도 본인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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