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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 Apr 30. 2024

산며드는 여섯번째 이야기

대둔산


변함과 변하지 않음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기 전인 2019년에 지인 따라 금산 인삼 축제에 갔다가 지나가는 길에 바위가 하늘 높이 웅장하게 뻗어있는 산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언젠가 다시 보게 될 그 모습을 기대하며 한껏 들뜬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했다. 대둔산은 가을이 절경이라, 그때 가라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더는 참고 기다릴 수가 없었다. 가을이면 어떻고, 봄이면 어떠하리. 이리도 예쁘고, 저리도 멋있고 아름다운데. 싱그러운 봄날, 내 발걸음은 홀린 듯 대둔산으로 향했다.


수십 년이 된 나무들과 그 연식조차 가늠되지 않는 바위들, 세월이 흘러도 대둔산은 내가 기억하던 그대로였다. 앞으로 수백 년이 흘러도 한결같은 모습으로 제 자리를 묵묵히 지키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맞이할 것만 같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옛말이 되었을 정도로, 요즘 1~2년만 지나도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상상을 초월한 속도로 세상이 빠르게 바뀐다. 때로 그 속도를 따라가기가 힘들고 벅찰 때면 산을 찾는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과 달리 이곳은 마치 다른 차원으로 시간이 흐르는 것만 같다. 무수한 변함 속에 변하지 않는 산이 있다. 그 시간에 몸을 맡기면서 지치고 답답한 마음을 달랜다.


그러다 여유가 생기면 주변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그 안에서 멈추지 않는 분주함을 발견한다. 산은 숨을 들이쉬고 내뱉으면서 바삐 살아 움직이고 있다. 봄꽃이 만개하고 푸른 싹이 돋아난다. 새들도 나무들도, 바위들도 봄맞이 단장이 한창이다. 따뜻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날이 따뜻해졌다고 봄이 절로 오는 것은 아니다. 그에 맞춰 바삐 움직이며, 새롭게 단장해야 진정한 봄이다.





나다움


오르는 길에 하늘 높이 뻗은 바위들에 감탄했다면, 내려갈 때는 숲속 흙길을 걷는 재미가 있었다. 같은 산인데, 상반된 모습이 신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거칠면서도, 부드럽다.


“너답지 않게 왜 그래?”


언제 들어도 기분이 썩 좋지 못한 한마디. 타인이 정의한 나다움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이래도, 저래도 나인 건 마찬가진데. 어느 때는 신중했다가, 어느 때는 과감하고. 에너지 넘치다, 또 맥없이 늘어진다. 여유로웠다가, 정신없다가. 모두 나다운 모습이다. 겪어보지도 않고 하나만 보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그래서 영 별로다.


그렇다고 스스로 멋없는 가시밭이 되겠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모습이건, 아름답고 매력적이어야 자꾸 찾게 된다. 그래서 멋없는 것들은 버리고 있다. 힘들고 지칠 때면 부정적인 생각들과 예민해지는 말투와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마음이 돌아온다. 상황과 여건 탓 해봤자 소용없고 저만 더 괴로워지지만, 뿌리째 뽑히지 않는 잡초 같은 마음들이 틈만 보이면 기어오른다. 푸른 싹이 올라오는 산에서 혼자 앙상하게 말라비틀어져 가시 돋친 나무와도 같다. 순리를 거스르고 아름다움을 해친다. 살아있다고는 하나, 죽었다. 죽은 마음들과 생각들이 너무 볼품없어없어 새롭게 단장하는 김에 모두 뽑아내기로 결심했다.




Not afraid


보이는 것과 실체가 다를 때가 있다. 과연 사람이 거인이 될 수 있을까 싶지만, 적당한 각도와 방향만 어우러지면 불가능하지도 않다. 살살 흔들리는 삼선 계단을 오르다 뒤를 돌아본 순간 찍힌 사진은 원근법을 가볍게 무시한다. 한두 발짝만 옆으로 움직이면 평범한 그림이 나왔을 텐데, 덕분에 볼 때마다 웃음이 난다.


한 번도 안 해본 분야의 일에 도전할 때면, 해보기도 전에 성공 여부를 점치는 습관이 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미루어, 될 것과 안 될 것 사이 선을 긋는다. 이건 될 것 같고, 저건 힘들 것 같다. 객관적으로 판단한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할 때가 많았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도 안 될 것 같다는 이유로 도전하지 않았다. 했는데, 안되면 나만 힘 빠지고 손해라고 변명했다.


삼선 계단에 서있는 거인의 사진을 보고 문득 깨달아졌다. 보이는 것은 실제와 다를 수도 있다. 뭐든지 해보기 전에 모른다. 그러니 서슴없이 도전하는 삶이 일상이 되어야 한다.


스스로 단정하지도 말고, 자신의 한계를 정하지 말고 도전하면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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