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외국인들이 한국의 유명한 볼 거리 중 하나로 꼽는 게 아름다운 야경이라 한다. 한강 옆으로 나란히 난 올림픽대로, 강변북로를 따라 달리거나 서울 남산에만 올라도 밤이면 아름답게 반짝이는 마천루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아름다운 야경에는 늦게까지 야근과 학업에 시달리는 바쁜 한국인들의 슬픈 삶이 녹아 반짝이고 있다. OECD 국가 중 노동시간 2위의 타이틀.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바쁘게 살아가는 것일까.
한강 이남에 위치한 동네 = 강남이라는 단어에는 부와 명예와 성공과 욕망의 치열함이 모두 담겨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모두가 동경하지만 모두가 그 곳에서 살아갈 수 없는 강남에 대한 여러 생각을 강남의 의.식.주를 통해 바라보고자 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슬픈 이면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인터뷰이로는 참세상, 워커스, 국민TV 등 주로 진보 대안 언론에서 기자로 활동하다 최근 국민TV에서 무단 해고를 당해 현재 무직(자신을 백수라 표현해 달라고 함)으로 여러 기고 및 집필 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성지훈 씨(34)가 함께 했다.
약력
- 단국대학교 언론홍보학 학사
- 前 참세상 기자
- 前 워커스 기자
- 前 국민TV 기자
- 최근 국민TV 재직 중 해고 통보 후 現 백수 생활 중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42477
- 평소 철학과 미학과 인문학을 공부하며, 현재 티스토리 블로그에 [부정기 연재 – 술집유랑기] 연재 중
요즘 강남은 진입 가능한 부의 영역
문화도 없고 몰취향으로 가득한 욕망의 구역
문웅주 (이하 문) : 인터뷰 주제가 ‘강남’이다. 재미있게도 우리 둘 다 강남에 살고 있지 않고 살아 본 적도 없는데, 제대로 된 인터뷰가 가능할거라 보는가.
성지훈 (이하 성) : 내 말이. 그래서 오히려 강남에 살고 있는 사람보다 더 편견에 물들고 표피적인 이야기를 하게 될 염려도 있다. 살짝 우려가 된다. 그래도 인터뷰어는 강남에서 회사는 다녀본 적 있지 않나. 나는 한번도 없다.
문 : 그것도 나름 의미 있는 시도가 될 거라 생각한다. 자신이 속한 곳에 있으면 아무래도 익숙하고 잘 못보게 되니까. 우선 ‘강남’하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성 : 강남이라 하면 아무래도 부, 욕망, 돈, 치열함, 욕망, 집값 등이 떠오른다. 우리 나라 역사를 통틀어 강남이 개발된 게 이제 40년 정도 되었는데 뭔가 전통적으로 누적된 이미지가 있을 리 있겠나. 대부분 물질과 욕망에 대한 생각을 갖지 않을까. 이런 인식이 모든 의식주에 다 스며 들었다.
문 : 강남 개발의 역사부터 비정상적이었다는 의미인가
성 : 강남 개발의 역사는 과거 경제개발계획의 일환으로 나온 것이다. 사람들이 서울로 몰려들기 시작하니까 기존 서울 만으로는 이들을 다 담아낼 수 없었던 것이고…
문 : 그렇다면 강남 개발은 비정상이 아니라 불가피한 당위 아닌지?
성 : 공정한 기회가 주어진 게 아니어서 문제였다. 정보가 빠른 사람들은 당시 배밭, 논밭이던 강남 땅을 미리 입도선매해서 시세차익을 크게 거두었고, 그게 지금까지 2대, 3대 이어져 오면서 강남부자, 건물주들이 된 거 아닌가. 강남 개발이 오늘날 한국의 모든 경제 관련 문제와 사람들의 천민자본주의의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성 : 그리고 역설적으로 강남은 진입 가능한 부의 영역이라는 생각도 든다. 진짜 부자들은 대부분 강북에 살지, 그 사람들은 애초에 우리 같은 서민이 넘볼 수 있는 부자가 아니다. 강남은 그래도 조금은 가능성이 열려 있는 엘도라도의 느낌이랄까. 그래서 더 서민들이 치열하게 탐욕을 갖고 강남행을 원하는지도 모르겠다.
문 : 중산층의 개념도 이제 강남 사람들의 기준 아닌가?
참고로 2017년 중산층의 기준
1) 아파트 30평대 자가 소유
2) 월 500만원 이상 급여
3) 1억원대 통장 잔고
4) 중형 자동차 보유
5) 해외여행 연 1회 이상
성 : 그러니까. 서민의 삶이 지긋지긋해서 강남으로 왔더니 고작 중산층이 되어 버린거지. (웃음)
문 : 강남을 땅과 개발의 관점으로만 보지 말고 다른 관점으로 볼 수는 없을까.
성 : 문화가 죽어 있고 다양성이 없는 몰취향의 도시라고 생각한다.
문 : 자연스럽게 강남의 의식주 이야기로 진행되겠다. 강남의 편의성, 획일성, 단조로움을 지적하는 것인가.
성 : 질문 하나 할까, 왜 강남에는 강북처럼 오래된 노포가 없을까?
문 : 아무래도 강남의 역사가 짧고… 땅값도 비싸고…
성 : 낭만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문화와 취향의 다양성이 없기 때문이다. 강남에도 노포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주로 강북 유명 노포의 ‘지점’ 형태다. 강남은 사세 확장의 개념으로 ‘진출’하는 목표고, 돈벌이의 ‘터전’이지 강남 자체에서 시작된 맛의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다.
문 : 그래서 연재 중인 술집유랑기에도 강남에 있는 곳은 등장하지 않는 것인가?
성 : 물론 강남에도 좋은 식당, 좋은 술집이 많이 있다. 그러나 자주 업종과 영업장이 바뀌고 철저히 타자화 되어 진열된 상품과 같이 소비되는 형태다. 소위 말하는 인스타그램용이지.
문 : 이건 강남만의 문제는 아니지 않을까. ‘힙’하다는 곳은 최근 강북이 더 각광 받고 있다.
성 :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예를 들어 경리단, 을지로, 익선동, 성수동 모두 각각 그 동네만의 특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동네만 바꿔가면서 임대료가 낮은 곳에서 장사 하다가 임대료 오르면 다른 동네로 넘어가는 식 아닌가.
성 : 나는 서울이 점차 ‘강남’화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겉으로는 힙을 말하고 소수의 문화와 취향을 말하지만 결국은 이것 역시 상업적으로 소비될 뿐 지역 특유의 어떤 형태로 발전하는 것은 없다. 그냥 우연히 얻어 걸린 것으로 먹고사는 문제에 천착하는 것뿐이다.
문 :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성 : 파는 사람, 사는 사람, 그리고 살아가는 우리들이 철학이 없고 공부하지 않아서다. 서로 공부하지 않고 만들어진 것을 소비만 하고, 소비하려면 돈이 필요하니 잘 살고 싶은 마음만 가득한 것이 현재 이 나라의 모습 아닌가. 그게 곧 서울이고, 곧 강남이다.
문 : 취향과 다양성, 개성 등은 결국 생산자든 소비자든 철학을 갖고 공부해야 만들어진다고 봐야 하나
성 :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뭘 원하는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는 공부하고 사색하지 않고는 알 수 없다. 학문적, 이론적 공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성찰하고 공동체 간 협의하는 과정을 말한다.
강남에 사는 사람과 다니는 사람은 달라
화려한 강남대로의 뒷골목은 슬픈 서민의 삶
문 : 강남에 대낮에 가면 입고 다니는 옷이 대부분 비슷하다. 직장인 특유의 정장 문화.
성 : 어른들의 교복이라고 본다.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쁜데 어떻게 다르게 입을 것인가를 고민할 여유가 있겠나.
문 : 그래도 예전에는 중고생 교복도 강남, 강북 스타일이 각각 있었다. 옷만 봐도 어디 출신이 느껴졌는데.
성 : IMF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문화적으로 침체되었고 개성이 획일화 되었고 먹고 사는 문제에 치이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몰개성화가 심화됐다.
문 : 강남에 사는 사람들은 정작 우리가 말하는 강남스러움에 대해 동의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성 : 아무래도 거기도 사람 사는 동네인데 골목도 있고 슈퍼도 있고 다 있겠지. 그 곳에서 산다면 강남이 뭐 그리 대수인가 싶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곳에 계속 살 수 있다는 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 : 논현 2동쪽이나 역삼역 등 오피스 타운 쪽은 이야기가 다르다.
성 : 일전에 낮에 강남에 있는 목욕탕을 갔는데, 오후 1시 정도가 되니까 젊고 예쁜 여성들이 목욕탕으로 계속 들어왔었다. 무슨 일이지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아차 싶더라. 그 사람들은 강남에 살지만 직장이 강남에 있기 때문에 사는 것이고.
문 : 일반 직장인도 마찬가지다. 강남에 다닐 뿐, 강남에 사는 건 아닌거고…
성 : 화려한 강남대로의 뒷골목에는 슬픈 서민의 삶이 있다. 강남이라는 큰 선입견과 편견의 블록으로 모든 것을 다 판단하는 것은 편견이다. 그 속에도 누군가는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문 : 사람들은 왜 이렇게 강남을 꿈꾸며 살아갈까
성 : 강남이 현 시대의 성공을 기준이자 척도이기 때문이다. 강남에 살고, 강남에 있는 회사에 다니고, 강남에서 쇼핑하고 데이트하고, 강남에 건물을 가지고 있고. 그만큼 경제가 유일하게 활력적으로 돌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니까. 현대인의 유일한 목표인 자산증식과 편한 삶에 가장 최적화 된 동네가 아닌가. 차 있으면 다니기도 편하고.
성 : 그러나 그렇게 사는게 정말 행복한 것인지. 정말 행복하다면 계속 강남을 꿈꾸는 게 맞고 (웃음), 아니라면 각자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공부해야 한다. 삶은 꽤 다양한 여러 좋은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문 : 오늘 인터뷰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