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르웰린은 무서운 책을 좋아하고, 으스스 한 말장난도 좋아하고, 공포 영화도 좋아하지만 두려움을 느끼는 건 싫어했어요.
제 기본 정서와 감정에는 두려움과 불안한 마음이 항상 기본 베이스로 깔려 있는 거 같았어요. 육아를 하면서는 그 불안감이 절정에 올랐던 거 같고요. 항상 끓는점이 높아있었던 느낌.. 아이로 인해 불안감이 높아지기도 했지만 아이로 인해 내 기저에 기본 정서가 두려움과 불안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죠. 엄마의 마음이 아이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말은 육아를 하면서 가장 무섭고도 무거운 말이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시간이 조금 흘러 돌아보니 나의 마음에 두려움과 불안함을 이길 수 있도록 단련해 주는 것도 아이더라고요.
르웰린은 그 마음을 애써 모른척하려 끙끙 밀어내고 꽁꽁 숨기려 애를 써도 두려움은 자꾸만 되살아났지요. 마지막 방법으로 두려움을 병에 넣어 깊고 깊은 곳에 꼭꼭 가두었어요. 그러도 나니 두렵지 않았어요.
그런데 얼마 뒤 르웰린은 슬픔을 느꼈어요, 슬픔도 병에 넣어 꽁꽁 가두었어요. 그렇게 슬픔과도 끝이었지요.
마주하는 여러 감정들 흥분, 외로움, 화, 기쁨, 실망.. 그 모든 마음을 병에 넣으면 끝이었어요.
온갖 마음을 병에 꽉 채워 넣고 나니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지낼 수 있었어요.
어린 시절 저도 하루에도 수십 가지에 감정이 내 마음과 내 주변 공기를 덮어 머릿속이 시끌시끌할 때면
'아.. 진짜 감정을 못 느끼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아니면 사람이 아닌 다른 것으로 태어나고 싶다'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었어요.
그렇게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지낼 수 있던 르웰린은 또 다른 새로운 감정 '창피함'을 병에 담아 병들이 모여 있는 깊고 깊은 곳으로 들어갔어요. 하지만 빈 곳이 없어 밀어 넣으려 애쓰다 마음을 담은 병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와장창 깨지며 르웰린을 밀치고 떠나 버려요. 맨 밑에 깔려 있던 두려움이 가장 마지막으로 떠났죠.
억눌러 두었던 갖가지 마음이 사라지자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어요. 행복하면서도 동시에 슬프고 흥분되면서도 걱정도 되었죠.
무엇보다 르웰린은 마음이 후련했어요.
그 뒤로 어떤 감정들이 밀려와서 마음을 감춰 두지 않고 용기를 내어 그 마음을 느끼고, 친구들과 나누려고 했지요 마음의 준비가 되면 하나하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꼭 안아준 다음, 흘흘 날려 보냈어요. 그러자 진짜로 끝이었답니다.
-찌개를 끓이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갖가지 재료는 갖가지 감정들.. 물이 끓기 시작하면 거둬내야 하는 육수에서 우러나는 불순물들을 발견하고 다시 흩어져 섞이지 않게 조심스럽게 떠 건져내고 나면 뿌옇게 올라왔던 육수가 맑아지는 과정.. 그리고 팔팔 끓을수록 더 깊은 맛을 내는 찌개가 완성되듯 끌어 올라온 감정을 누르기 보다 알아차리고 한 번은 건져내주면 다시 뽀얗게 맑아진 국물의 맛이 진국이 되는 것처럼 말이죠.
감정에는 나쁜 감정도 좋은 감정도 없지만 외면하거나 꾹꾹 눌러 담아 참지 않고 다양한 감정들에 이름을 붙여주고 읽어주는 셀프 토킹 만으로도 내 마음에 건강과 멘탈의 건강을 지킬 수 있을 것 같네요. 말처럼 쉬운 과정이 아닐 수도 있지만 성숙하게 익어 진국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