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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day Feb 21. 2023

#1. 나의 가장 청정시대

[색깔손님]

  내 안에 또 다른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오던 날. 그 심장소리가 한참을 귓가에 그리고 마음에 머물렀던 것 같다. ‘나에게 이런 모성애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주 깊은 곳에 꾸욱 눌려져 있던 감정들이 꿈틀거리며 마구 솟아오르는 듯했다. 여자로 살아가며 여자만이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경험이자 행복한 변화를 누릴 수 있는 열 달의 기간. 내가 봐온 사람들 중 가장 평온하고 온화한 인상을 남겨준 건 지나가며 보았던 배가 볼록 나온 둥글둥글한 임신부들이었다. 알게 모르게 그들의 온화함과 평온함이 나에게도 풍기길 기대하며 동경해 왔던 것 같다. 내 임신소식을 친정에 알렸을 때 축하와 함께 엄마는 그렇게 유모차 끌고 다니는 엄마들이 부러웠다며 딸 덕에 유모차를 끌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며 반가워했었다. 엄마는 애를 넷이나 심지어 늦둥이로 늦은 나이에 출산하며 육아를 한 선배인데도 애기를 좋아하고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이 눈에 담기는 걸 보면 ‘이런 것 까지도 엄마를 닮았나?’ 싶었다. 열 달 동안 아이를 건강하게 지켜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과 사명감에 좋지 않은 기운과 감정들이 태아에게까지 전달되지 않길 바라며 어떤 사람이 되기를 어떻게 자라기를 하루하루 기도하며 태교에 힘쓰려 했던 것 같다.      


어쩌면 태교 하던 그 시간은 내가 나를 품는 시간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림책 [색깔손님]은 아이가 다섯 살이 되고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세상을 바꿀 천 권의 책’ 프로젝트를 하던 중 알게 된 책이다. 그림책 속 할머니의 집은 색이 하나도 없는 회색빛에 집이었다. 집안을 깨끗이 치우고 정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할머니의 집은 아주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지만 색깔이 하나도 없어 적막하고 삭막함이 느껴지는 집이다. 할머니의 표정도 어딘가 근심걱정이 가득해 보이는 얼굴이다. 맑은 공기가 들어오도록 창문을 열어 두었던 어느 날 종이비행기가 창문으로 날아들어 오고 겁이 많은 할머니는 종이비행기를 난로에 태워 버린다. 그다음 날 할머니 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할머니 집을 처음으로 찾아온 손님인 것이다. 작은 아이의 등장으로 할머니 집은 알록달록 색깔을 찾아가고 무엇보다 할머니의 표정이 소녀처럼 바뀐다.      


엘리제 할머니는 겁이 많아요.

거미도 무서워하고, 사람도 두려워하지요.

심지어 나무도 무섭대요.

그래서 할머니는 언제나, 늘 

밤이나 낮이나 집 안에서만 지내요.     

 이 그림책을 보면서 임신 전 나의 감정 선과 아이를 만나게 된 임신 후 나의 감정 선의 차이가 [색깔손님] 할머니 집의 색감과 할머니의 표정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았다. 일부러 더 밝은 생각과 에너지를 품으려 노력했었고 좋지 않은 음식보다는 좋은 것을 먹으려 했고, 혹여나 핸드폰에 전자파가 아이에게 안 좋을까 싶어 핸드폰도 멀리했었다. 피부로 전달될까 싶어 화장도 기초만 바르며 유난을 떨던 때가 있었다. 아이를 위함이 곧 나를 위함이었음을 그 덕분에 나 스스로도 가장 청정했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왜 이렇게 까지 유난을 떨었을까?  아마도 이미 완성되어 내 안에 흐르고 있는 것들을 가능하다면 더 깨끗하게 씻어내 좋은 것들만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결혼 전 나는 엄마와 그리 가까웁게 따스함을 나누며 지내지는 못했던 것 같다. 결혼을 준비하고 부모 품이 아닌 나의 가정이 생기고 나의 보금자리가 생기면서 부모님과의 자연스러운 거리 두기는 그간 담아두고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열어주는 기회가 되었다. 임신 중 나는 내 마음에 남아있는 엄마와의 갈등을 회복해 보려 노력했던 것 같다. 성인이 되면서 내가 엄마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미안해.”였다. 여섯 식구가 모여 사는 집이었지만 서로 나누는 대화가 많지 않은 집 분위기였다.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 적다 보니 부모님은 자주 다투셨고 그 안에서 내 안의 불안감은 마구 자라났다. 대부분의 부모가 그렇듯 첫 아이에게 쏟아붓게 되는 관심과 에너지, 그에 따르는 높은 기대와 더불어 사춘기 즈음 생긴 늦둥이 동생들로 인해 은연중에 ‘맏이가 잘 되어야지’라는 무언의 압박이 엄청난 무게로 다가왔었다. 하교 길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가는 그 시간이 나에겐 맏이의 마스크를 쓰고 마음을 준비하는 시간이었을 만큼 집 안팎에서의 내 마음에 무게는 달랐던 것 같다. 엄마를 독점하고 싶던 내 안에 채워지지 않은 애정욕구로 성장하지 못한 내면아이가 자리 잡았고 내가 바라보는 나의 부족한 이런 모습들을 엄마 탓으로 돌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간 엄마에게 표현하지 않았지만 내 안에서 불끈불끈 올라오던 이런 불만들이 서른이 되면서는 정화되지 않은 말들로 입 밖으로까지 튀어나오면서 갈등의 최고조가 되었던 것 같다.   

   

 방이 세 개인 집에서 유일하게 개인공간을 갖은 사람이 나였지만 거실 생활하는 중학생 막내 남동생을 보기가 불편했다. 다른 이유들보다 그 부분이 가장 커서 선택했던 서른에 독립이 엄마와의 갈등에 휘발유역할을 했던 것이다. 워낙 이른 결혼을 한 엄마, 아빠이기에 혼기가 차가는 딸에게 결혼을 재촉하기보다는 능력이 되면 결혼을 꼭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을 줄곧 하셨지만 나 스스로가 ‘이 집에서 나갈 때가 되었나?’ 하는 찔림이 있어 결정한 일이었다. 이런 내 모습이 엄마에게는 ‘혼자 잘 살려고 나간다.’가 되었던 것이다. 여전히 뒷바라지해야 하는 어린 동생들이 있었기에 엄마에게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던 이 시기에 돈을 밖으로 굴린다는 생각을 하셨던 것이다. 독립하던 날 엄마는 양손에 들고 있던 짐 가방을 방 한가운데 툭 내려놓고는 아무 말 없이 훅 가버리셨다. 한동안 엄마에게 전화를 하는 것도 어려웠던 시기였고 나에게는 사춘기보다 더 격렬한 질풍노도의 시기였던 것 같다. 엄마와 나는 ‘나의 서른’을 제2의 사춘기였다고 말하곤 한다. 


 엄마와 거리 두기를 하고 조금 떨어져서 지내보니 엄마의 삶이 조금씩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혼자 살아도 집에서 해야 하는 집안일들이 적잖은데 여섯 식구를 케어하는 엄마의 집안일은 얼마나 벅차고 지쳤을까 안 그래도 엄마는 외가에 맏딸로 너무 어린 나이부터 집안일을 해왔기에 살림에 대한 세월이 꽤나 길었다. 마흔에 막내를 출산하고 늦은 나이에 하는 육아는 또 얼마나 체력이 따라와 주지 못해 힘들었을까.. 모든 것이 엄마 탓이라는 생각들이 얼마나 몹쓸 생각이었는지 엄마가 되고 나니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나의 모든 것이 처음이었을 엄마에게 나는 얼마나 애지중지한 존재였을까, 심지어 엄마에게 내가 찾아온 건 20대 초반. 활짝 꽃 피우며 하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은 시기인지 나 또한 지나 보낸 시절이었으니 내 젊음대신 내 안에 또 다른 작은 생명체가 우선이 되어가는 삶에 엄마가 얼마나 충실했는지 어린 시절 사진들이 증명한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엄마가 지나왔을 삶의 뒤를 따라가며 쌓여있던 갈등들에 껍데기가 하나씩 벗겨지고 재해석되기 시작했다. 엄마에게는 자식이 주는 또 다른 처음이 다가왔기에 나에게는 엄마가 걸어간 그 길을 따라 걸으며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의 폭이 가까워졌기에 결혼 후 임신을 하면서 엄마와 나는 공통분모가 늘어가면서 벗겨진 껍데기들이 각자의 밴드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아이의 성별을 알게 될 즘 걱정과 불안이 밀려오던 날을 잊지 못한다. 그간 나는 나를 색으로 표현하라면 무채색에 가까운 참 우울감이 많은 아이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었기에 그리고 잔상에 오래 남아있는 엄마만의 동굴에 들어가 우울감을 몸속 깊이 묻고 있는 엄마의 모습들을 아이에게 까지 옮겨 주고 싶지 않아 감정에 민감한 딸아이보다는 감정에 무딘 아들이길 바랐던 적이 있다. 뱃속에 아이가 공주라는 선생님의 힌트를 전달받던 날은 속내 다 털어놓는 언니를 찾아가 눈물 쏟아내며 고민을 토로했었다.      

 

 임신 중 알게 된 손정연 작가의 ‘나는 엄마와 거리를 두는 중입니다.’를 읽고 너무 깊은 공감이 되어서 작가님의 강의를 찾아가서 듣고 운영하시는 ‘인문감성살롱’에도 참여하며 임신 중기를 보냈었다. 책 속에서는 딸들의 마음속에 엉켜 있는 엄마에 대한 다양한 감정들의 불편함과 갈등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내가 해결해 보고자 하는 부분에 근접하게 쓰여 있어 엄마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된 책이었다. 사람의 마음, 인간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은 궁금증은 꽤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 같다. 20대 초반에 어느 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하는 심리강의를 찾아가 들었던 적도 있다. 그때 접수처에 계시던 50대 정도로 보이던 여성분이 “어머! 젊은 사람이 너무 잘 왔다. 결혼 전에 이런 걸 알고 공부해 두면 너무 좋지!”라며 인사를 건네던 장면이 생각난다. 강의를 듣는 대다수에 분들이 연세가 있는 분들이었기에 젊은 사람이 눈에 더 띄었던가 보다. 아마도 감정기복이 심했던 내 마음의 파동을 어떻게 하면 좀 잔잔하게 그리고 맑게 잠재울 수 있을까에 대한 해결책을 계속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색깔 손님 집에 처음으로 찾아온 작은 아이처럼 첫 아이는 나의 표정과 내 마음의 색깔을 입혀준 귀한 손님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배에 손을 얹고 제일 먼저 꼬마손님에게 인사를 하고 기분 좋은 음악을 틀고 하루를 시작하고 나의 동선과 일정을 아이에게 아이언어로 전해주며 일과를 보내고 배에 손을 얹고 오늘하루도 감사함을 기도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루틴이 생기면서 하루 온종일을 긍정에너지로 채우려는 주파수가 맞추어졌던 것 같다. 아이는 클래식에는 마치 발레를 하는 듯 슥슥 밀어내는 태동을 발랄한 음악에는 리듬을 맞추듯 툭툭 치며 태동했다. 초음파와 태동으로만 느낄 수 있는 아이였지만 나에게 찾아온 귀한 손님은 나의 하루를 온전히 나눌 수 있는, 나의 감정을 온전히 나눌 수 있는, 나를 담아낸 작고 귀한 또 다른 나였는지도 모른다. 좋은 것만 생각하고,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듣고, 좋은 것만 먹고, 좋은 것만 해 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가득했던 내 몸 안에 두 개의 심장이 같이 뛰던 그때. 아이를 출산하고도 한동안은 배에 손을 얹고 귀여운 손님과 나누던 태담과 태동을 그리워했던 것 같다.     


 아이로 인해 내가 가장 청정했고 나를 품을 수 있는 회복의 시간이었음을 무채색 내 마음에 찾아와 준 알록달록 귀여운 색깔손님. 


할머니는 아주 오랜만에 

책을 소리 내어 읽었어요.

동화책 한 권을 다 읽을 때까지 

아이는 귀를 쫑긋 세우고 

열심히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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