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고 자,
잘 자고 있는데 깨워서 밥먹고 자라는 말을 들으면 짜증이 났다. 잘 자는데 뭐하러 밥을 먹어야 되지? 한끼정도 거르는게 뭐가 어때서, 나중에 배고플 때 먹으면 되는데.
깨워져서 짜증스럽게 밥상 앞에 앉으면 엄마가 하는 ‘밥먹고 자’ 라는 말이 ‘네가 자는걸 알지만 나는 내가 밥 먹을 시간이라서 밥상을 차렸고, 너도 함께 앉기를 원한다. 그러니 와서 앉아 밥을 먹어라’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오해했다. 아니었다. 그건 유아기인 아기를 키우는 어미의 DNA에 뿌리깊게 박힌 주문이었다. 네가 먹어야 내가 쉰다는 말이고, 배부른 만큼 잘 잘 수 있다는 경험이다.
갓 태어난 아기는 위가 올리브만해서 손톱만큼 먹으면 배가 부르다. 그런데 빠는 힘도 약하고 삼키는 힘도 약해서 기껏 힘들여 빨아놓고도 입 안에 든 모유를 다 마시지 못해 흘리기도 하고, 겨우겨우 삼키고 나면 힘들어서 숨을 고르며 쉰다. 다시 힘내서 빨다가 지치면 젖을 물고 잠들기가 일쑤다. 그런 아기를 깨워가면서 양껏먹여야 하는데, 배가 불러야 그만큼 잘 수 있기 때문이다.
신생아가 먹다가 잠들면 깨워서라도 먹여야 한다. 입안에 든 가슴도 흔들고 볼도 누르고 허벅지도 비빈다. 열심히 먹이고 애가 다 먹었다고 입을 꾹 닫고 가슴을 외면하면 들쳐업고 트림을 시켜주는데, 트림을 꺽 하고 나면 공기가 빠져나온 만큼의 자리가 위에 또 생긴 것이기 때문에 한번 더 먹여준다. 아주 꾹꾹 빈틈없이 눌러담는다. 그렇게 꾸준히 과식을 이어나가다 보면 뱃구레가 커진다. 그 커진 위만큼 소화되는데 시간이 걸리고, 그 동안 자는 것이다.
정말 인간이 하찮은 게 처음 태어날 때 아무것도 완성되지 않은 상태이다. 몸도 뇌도 적당히 형태만 갖춰서 나온다. 밤에 잘 수 있도록 해주는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은 생후6주나 지나서야 생성되기 시작하기 때문에 (그것도 해를 쬐고 12시간 뒤에 분비된다고 한다) 태어나서 한달 반 정도는 배부름으로 잘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졸림으로 자는 것이 아니라, 배부름으로 잔다. 배부름으로 잔 몸은 소화가 끝나면 깬다. 그러면 다시 먹고, 또 먹느라 피곤하고 부른 배로 잠든다.
모유량이 충분한지, 아기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지를 보는 거의 유일한 기준은 몸무게다. 몸무게가 늘고 있나. 검진차 병원에 가도 가장 먼저 묻는 것이 하루에 얼마나, 얼마나자주 먹는가이다. 몸무게가 얼마나 늘었고 평균과 비교해서 몇퍼센트인지를 보는것이 어미에게 ‘먹여라’ 라는 주문을 건다. 애가 열이 나도 잘 먹으면 일단 지켜보자고 애가 설사를 하거나 변비가 있어도 잘 먹으면 괜찮다고 한다. 그만큼 잘 먹는건 이 어린 아기의 건강상태와 발달을 보는 중요한 체크사항중 하나다.
그러니 어미로서 먹고 자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일단 먹고 그담에 자든지 놀든지 해라, 그래야 네가 잘 때 나도 마음이 편하다.
네가 살이 포동포동 올라야 네가 잘 크고 있다는 안정감이 생기고, 내가 어미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샘솟고, 설사 아프더라도 잘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이 든든하다. 그러니 일단 먹고 자, 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