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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무드 Oct 29. 2022

혼혈아를 키우는 엄마의 마음

다 괜찮아, 걱정 말고 선택해

어릴 적엔 세상에  인종이 있는  알았다. 황인, 백인, 흑인. 조금  커서는 황인 사이에도 동북아시아인과 동남아시아인, 중앙아시아인이 다르게 생겼고 백인 사이에서도 북유럽인과 남유럽인이 다른 모습을 가졌음을 눈치챘다. 점점 아메리칸이라는 말이 미국인만을 말하는 것에서 북아메리카,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를 포함하는 말로 바뀌고 그들의 대표적인 생김새를 구분하게 되었다.



단일민족인 나라에서 나고 자라다 보니 타인종에 대한 내 시선은 그저 신기함 정도였어서 크게 각 인종을 구분하거나 각각의 명칭을 배우려 들지 않았다. 또 스페인어와 비교했을 때 한국어는 각 인종을 지칭하는 단어수 자체가 더 적다.



좀 나아지긴 했지만 나는 인종이 다른 경우 개개인을 종종 헷갈려하곤 한다. 내 눈에는 너무 비슷하게 생겨서 동일인같은데 남들은 전혀 다른 둘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같이 일하는 두 명의 동료를 한 명으로 착각해서 큰 실수를 한 적도 있고, 남편의 지인 둘을 구분하지 못해서 한 사람이 이름이 두 개인 줄 안 적도 있다.



서두가 긴 이유는 이 정도로 내가 눈썰미가 없고 이 테마에 있어서 무식하다는 것을, 그래서 남에게 뭐라 할 처지도 못 되거니와 오히려 무식에서 오는 가벼운 인종차별은 이해하는 정도라는 것을 고백하기 위함이다. 나 또한 각각을 구별하려 노력하고 매번 올바른 명칭을 물어보고 외우지만 자꾸 틀린다. 게다가 각 인종간의 혼혈들까지 가면 나는 거의 포기수준에 이르는데, 특히 라틴계와 서남유럽인의 혼혈을 그들의 부모인종과 구분해 내며 올바르게 그 사람의 인상착의를 설명해야 할 때는 실수할까 무섭기도 하다. 추가로 하와이안과 멕시칸, 중앙아시아인과 동유럽인도 너무 어렵다. 실제로 만나본 경험이 적어서 데이터가 별로 없기도 하다.



나와 내 남편은 다문화가정을 이루었고 내 아이는 스페인사람과 한국사람의 혼혈아다. 백인과 황인, 서남유럽인과 동북아시아인, 둥근 눈과 긴 눈, 갈색머리와 검은색머리, 호박색 눈과 밤색 눈, 불그스름한 피부와 노르스름한 피부, 이집트형 발과 그리스형 발, 젖은 귀지와 마른 귀지, 상체발달형과 하체발달형. 외형적으로 참 다르기도 한 두 사람의 조합이다. 어떤 모습으로 자라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모습으로는 언뜻 아빠의 인종에 더 가깝게 보인다.



부모는 자식에게서 자신과 닮은 부분을 찾아내지만, 타인은 자신과 다른 모습을 더 잘 보는 것 같다. 인간이 원래 그런 것 같다. 원래 우리는 자신과 타인의 차이점을 먼저 구분해 내는 것 같다.



그래서 같은 아기를 보면서 스페인에서는 아시안혼혈이라고 하고, 여기서는 외국아기라고 한다. 그들은 멀리서 머리색만 보고는 ‘우리나라 애’라고 생각하다 눈을 보며 아시안 눈이라고 ‘다른나라 애’라고 하고, 한국에 오니 그냥 ‘외국 애’다.


결론은 양국에서 ‘쟤네 애’라는 것이다. 이 점이 내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다. 두 나라의 문화와 언어를 배우고 세상을 넓게 바라보며 살길 바라는데, 어느 나라에서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거나 외부인으로 단정지어지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두 개 언어를 하길 바라는데 영 개 언어를 하게 되지는 않을까, 다른 두 문화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하지는 않을까, 남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을 맘에 안 들어하는 것은 아닐까, 매 번 자신의 뿌리를 해명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너는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질문에 뭐라 답할지 고민하며 살게 되지는 않을까.


너무 늦었지만 내 맘대로 낳아 놓고 생각이 많다. 밤이 길다.



내가 누구인지는 내 선택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내 선택의 결과이고 내 선택은 나를 만들어간다.


내 부모는 내 선택이 아니나 내 나라는 내 선택이다. 태어난 지역은 내 선택이 아니나 사는 지역은 내 선택이고, 내가 스스로를 소속시키는 집단도 내 선택이다.



나는 스스로 한국인이라 느끼고 한국 국적을 가지고 한국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이게 내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삼십년도 넘게 살았지만, 지금은 내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내 아이도 어느 날엔가는 자신이 누구인지 다 정해진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는 왜 중국인이냐고/미국인이냐고 묻는 사람들한테 아니라고 나는 스페인한국사람이라고 해명해야 하고, 오늘 불고기/가르반소를 먹었다고 하면 다들 그게 뭐냐고 묻는데 왜 나만 이거 먹냐고, 엄마 아빠 중에누가 좋은지처럼 한국 스페인 어디가 더 좋은지 대결구도에 놓느냐고 불평할 지도 모른다. 자신이 한 선택도 아닌데 왜 결과에 대한 불편만 가지냐고 화를 낼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결국 다문화가정의 장점도 발견하고 색다름을 즐길 줄도 알게 될 것이다.



언젠가는 결국 한국계 스페인이든, 스페인계 한국인이든, 반반의 인간이든, 어느 한쪽만을 고집하든, 자신의 선택을 만들 것이다. 그 선택이 몇 번이고 바뀡 수도 있다. 어쩌면 그런 선택따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시대에 살 지도 모른다.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선택을 하든지 내가 옆에서 든든히 있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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