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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무드 Dec 22. 2022

연말

하루 일과

연말이고 자시고 하면서 살다가 오랜만에 친한 언니들과 저녁을 먹으러 다녀왔다. 요즘 애가 점점 자기전에 직수를 하려고 하고, 나랑만 자려고 들어서 애를 재우고 나가겠다고 조금 늦겠다 해뒀다. 그래도 얼른 재우고 나가서 수다 왕창떨고 깔깔대고 같이 웃고싶어서 마음이 급했다.



애가 푹 잠든 것을 보고 남편에게 토스하고 조용조용 집을 나섰다. 지하철에 올랐는데 칸 분위기가 안 좋았다. 출근한 도둑같지는 않지만 여차하면 내 폰을 들고 뛸 것 같은 남자가 두엇 보였다. 다음 칸으로 갔다. 꼬리한 냄새가 났다. 누구한테서 나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며 괜한 눈길을 끄는 바보짓을 하지 않고 앞만 보고 지나쳐 그 다음 칸으로 갔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있는 부부, 데이트중인 커플이 보였다. 내 자리는 이곳이다 했다. 그 칸으로 마음을 정하고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섰다. 벽에 기대어 인스타를 구경하는데 문이 열리는 것이 느껴져서 핸드폰을 꼭 쥐었다. 핸드폰 뒤로 보이는 지하철 바닥에 노란 바지와 허름한 신발이 나타났다. 내 오른 쪽에 섰다. 고개를 들어 누군지 봤는데 턱수염이 덥수룩하고 행색이 꾀죄죄했으나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옆 친구와 까딸란으로 얘기하는 것을 듣고 마음을 놓고 다시 핸드폰을 보기 시작했다. 정류장을 하나 지나쳐서 다시 돌아갔다.



식당에 늦게 도착했다. 가지볶음, 요우마이차이,마파두부,생선튀김,국수를 먹었다. 넷이서 그간 안부도 묻고 사는 얘기도 나눴다. 집에서 창밖을 보며 궁금했던 세상얘기도 듣고 아기 얘기도 했다. 연말 계획도 나누고 크리스마스는 어떻게 보낼건지, 내년은 어떨지 얘기했다. 집에선 크기만 했던 고민들이 작아졌다. 별 것도 아닌 것으로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도 아기같아서 속에 품으면 큰데 꺼내서 보면 작다.



항상 그렇듯 다종에서 나와 산드위체즈로 갔다. 페퍼민트 차를 시키고 창가 자리에 앉아서 다시 이차 수다를 떨었다. 오고가는 농담에 웃다보니 문닫을 시간이 되어서 나왔다. 둘은 저쪽에서, 하나는 이쪽에서, 또 하나는 요기서. 각자 버스고 지하철이고를 타러 헤어졌다. 좋은 명절 보내라고 인사하며 내년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내년에도 같은 식당에 가겠지만 다음에는 오늘 옆자리에서 먹던 쓰촨식 생선요리를 시키기로 했다. 맛있어보였다.



택시를 탔다. 타자마자 어느나라 사람이야? 중국? 하길래 귀찮았다. 한국. 너는? 하니까 나는 파키스탄. 했다. 이 근처에서 택시 잘 안잡힌다고 했더니 나. 여기. 돌아. 돌고. 너 만나. 라고 했다. 그렇구나 했다. 심심했는지 끊임없이 말을 걸어왔다. 내내 반말로 얘기하던 택시기사가 갑자기 존칭을 쓰기 시작했다. 오래 살았냐, 몇 년이나 살았냐고 묻길래 7년이라고 했다. 나 이겨. 나 11. 하길래 오 오래됐네 하고 대답하니까 다시 반말로 나 옛날 다른일 돈 없다 오늘 택시기사 사천유로 세후. 했다. 오 많이번다 대답했다. 하루에 몇 시간이나 일하냐고 물으니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라고 한다. 열두시간씩 어떻게


일을 하냐니 잠깐씩 쉬기도 하고 집에 들어서 밥도 먹는다고 했다. 하지만 일주일에 40시간 일하는걸로 신고한다는 것 같았다. 너 일 뭐해. 하길래 나 지금 일 안해, 아기 키워. 했는데 못 알아들은 것 같아서 내 딸 베베. 베베 작은. 이라고 말하니 얼마를 버냐길래 0원, 하지만 엄청 많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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