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브런치 사진에 술병이 가득하다니. 대학 친구와 오랜만에 집 근처에서 만나는 날인데 어디에 갈까 고민하다가 예전에 읽은 어떤 브런치 작가님 글에 있었던 한 재즈바가 문득 생각이 났다. 친구랑 뉴욕에서 처음 재즈바를 갔다가 그 후로 한국에선 가본 적이 없었는데 마침 그 재즈바가 근처여서 며칠 전에 예약이 되는지 전화부터 했었다. 친구는 재즈를 정말 좋아한다. 그런 친구를 둔 덕에 친구가 추천해 주는 곡들을 가끔 들어보긴 했었지만 재즈에 대해 잘 알진 못했는데, 단지 공연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렜다. 오랜만에 나도 불금을 보내는 거 같다. 평소 사람이 많아서 잘 들어가지도 않는 방이동 골목길을 걷다가 바티칸이라는 재즈바에 도착했다. 예약을 하려고 했었지만 결국엔 바에 앉을 거라 예약하지 않았기에 혹시 사람들이 많을까 부랴부랴 갔지만 친구가 조금 늦는다 하여 먼저 들어가야 했다. 지하에 있다곤 했는데 계단을 조금 내려가 보니 뭔가 입구를 못 찾은 거 같아 우두커니 서 있는데, 엄청 큰 악기를 들고 어떤 분이 내려가셨다. 연주자이신 거 같았던 분이 들어가신 문틈 사이로 여기가 재즈바다!라는 분위기의 조명들이 흘러나왔다.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없어서 혼자 어색하게 바 가운데 자리에 앉아 메뉴판도 보고 재즈 바 인테리어도 괜히 힐끗 보고 핸드폰도 보고 있는데 드디어 친구가 들어왔다. 역시 혼자가 아니라 둘이 되니 마음이 편하다. 이 나이가 되어도 낯선 곳에서 혼자 있는 건 불편하다. 메뉴판을 보고 또 보고 결국 당도가 높은 싱가포르 슬링을 주문했다. 가보지도 않은 싱가포르의 노을을 담았다고 해서 한번 시켜봤다. 생각보다 도수가 높았는지 오랜만에 술을 마셔서 그런지 빨리 술이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평소 같았음 내려놓는 건데 기분 좋은 음악과 약간 어두운 분위기가 이상하게 술이 자꾸 들어가게 했다. 친구와 요즘 회사생활은 어떤지, 공부는 어떤지 얘기를 하는데 드디어 무대에서 연주자들이 공연을 시작하려 한다. 친구는 우리가 뉴욕에서 처음 가봤던 재즈 바 얘기를 자꾸 하는데 나는 솔직히 어렴풋이 기억이 날 뿐이다. 뉴욕 재즈바보다 그냥 지금 이 흘러나오는 노래와 분위기가 너무 좋다.
사진 올려도 괜찮을까. 저 때 기분이 좋았어서 브런치에다 기록해두고 싶다. 친구가 얘기를 하는데 Sound of music의 My favorite things가 들려온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니 더 신이 난다. 게다가 노래 부르시는 분이 너무 멋있다. 사람이 저렇게나 노래를 잘 부를 수 있다니. 피아노 소리, 트럼펫 소리, 첼로 소리, 드럼 소리, 사람들의 얘기하는 소리, 칵테일 제조하는 소리들이 어우러져 여기 있는 게, 마치 라라랜드 속에 있는 기분이다. 바텐더 분이 서비스로 준 팝콘을 주숴 먹으며 음악을 들으며 칵테일을 마시자 벌써 1부 공연이 끝났다. 해야 할 일들이 있어서 아홉 시엔 일어날 생각이었는데 남은 공연들이 궁금해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도 재즈바의 여운에 브런치에 글까지 쓰고 있다. 칵테일 한잔 더 시킬래! 메뉴판을 보고 또 보며 내 입맛에 딱 맞는 처음 먹어보는 칵테일을 시키고 싶었지만 역시 사람은 그 많은 메뉴 중에서 결국 먹어본 걸 시키게 된다. 그거 완전 초보 칵테일이야. 맞아 나는 초보야. 또 깔루아 밀크를 시켰다. 잭 로즈라는 칵테일을 시켜보고 싶었는데 도수가 높아서 힘들 거 같다. 그래서 결국엔 또 커피우유를 마시며 2부 공연을 듣는다. 역시 커피 우유가 내 입맛엔 딱이다. 마지막 즈음에 Carpenters의 Close to you를 들려주셨다. 친구는 7080 노래를 좋아하는 내가 딱 좋아할 곡이라며 은근히 놀리지만 사실 너무 좋아서 당분간은 Carpenters 노래만 들을 거 같다. 앵콜을 외치고 싶지만 아무도 앵콜을 외치지 않는다. 원래 재즈바는 앵콜곡이 없는 걸까. 아쉬움을 뒤로하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재즈를 들으며 운동 선생님 성대모사를 하며 집에 가기 싫다고 얘기하는데 친구가 웬걸 배고프다고 순댓국을 먹으러 가잰다. 절대 안 가. 순댓국 먹으면 이 느낌이 깨질 거 같아. 나오기 전에 바텐더 분이 초콜릿 하나를 주셨다. 초콜릿 하나 머금으며 결국 순댓국은 뒤로 하고 이 느낌 그대로 간직한 채 집으로 왔다. 그리고 잊어버릴까 봐 브런치에 썼다. 그냥 쓰고 싶었다. 이번엔 어렴풋이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