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마케터와 현재의 마케터
라떼는 말이야...가 아니라 요즘은
“코딩은 해본 적 있으세요? 데이터 보는 능력도 필요한데....” 작년 5월. 실제로 콘텐츠 마케터 직무로 면접을 볼 때 들었던 질문이다. 코딩이라니. 요즘은 정말 바라는 역량이 다르다는 걸 실감했다. 포토샵, 일러스트, 영상 편집만 할 줄 알아도 채용 담당자가 반가워하던 때와는 180도 달라진 것이다. 집에 돌아와 찾아본 어느 대기업의 경력자 채용공고에는 기획력은 기본이고 우대사항에 JavaScript 사용자가 적혀있었다. 순간. 경력은 있지만 애매한 마케터가 된 기분이었다. 열심히 주어진 일을 해왔을 뿐인데 어느새 마케터라면 기획도, 개발도, 데이터도 조금씩은 할 줄 알아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페이스북 게시물 좋아요 1,000개가 우습던 시절을 겪은 마케터라면 요즘 마케터로 살아남으려면 얼마나 더 치열하게 역량을 쌓아야 하는지, 직무가 세분화되고 있는지 몸소 느끼고 있으리라 확신한다. 4년 전만 해도 마케터는 그냥 마케터였으니까. 라떼는 말이죠...라고 마케팅 성공사례를 얘기해도 시큰둥한 ‘요즘’이 되었다.
과거는 과거. 현재는 현재
코딩도, 데이터를 보는 능력도 없어 떨어질 줄 알았던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2주 후 출근이 가능하냐는 말과 함께 최종 합격 통보를 받은 것이다. 입사까지 남은 기간동안 뒤처지지 않기 위해 기초 코딩과 퍼포먼스 마케팅에 대해 공부했다. 언제까지 과거의 성과와 경험, 경력에만 매달려 있을 수 없었다. 요즘을 기준으로 애매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만큼 배워야 할 것이 많아도 마케터라는 직무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애매한 부분만 채워도 그동안 쌓인 경험이라는 것이 있으니 성장 속도가 월등히 달라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공부를 하다 보니, 왜 과거보다 더 많은 역량을 바라는지 조금씩 알게 됐다. 회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크게 광고매체의 다양화. 그에 따른 방대해진 데이터의 양과 분석을 통한 신규 고객 유입과 기존 고객 유치가 매출과 연결되기 때문이었다. 과거에 하던 일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더 ‘세분화’해서 근거 있게 마케팅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에 필요한 기술들을 먼저 익히는 게 스스로에게 주어진 숙제가 되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마케터는 바빠진다.
입사 첫날, 간단한 환영 인사가 끝나고 옆자리 앉은 동료가 말했다. 자신도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었으며 이곳이 첫 회사라고, 배워할 것이 아직 많다고 말이다. 하지만 말과 다르게 ‘대시보드’를 보며 자신이 만든 광고의 성과를 분석하고 어떤 매체의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지 척척 정리해 나갈 줄 알았다. 상세페이지의 이미지를 제작하고 이미지에 효과를 줄 때는 코딩으로 생동감 있게 표현하는 모습을 보며 잠시 첫 회사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했다. 몸은 힘들겠지만 많이 배우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곳인지가 미래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나의 첫 마케터 생활은 어땠는지 생각해보면 이 정도로 세심하게 데이터를 보거나 코딩으로 뭔가를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마케터 직무가 세분화되기 전에는 마케팅에 관한 모든 것을 ‘조금씩’ 했으니... 애매한 마케터가 되어버릴 수밖에.
콘텐츠 마케터, 퍼포먼스 마케터, 디지털 마케터, CRM마케터, 브랜딩 마케터 등등. 마케터 직무는 갈수록 세분화되고 있다. 광고가 노출되는 매체, 고객 행동을 추적하는 데이터를 더 긴밀하게 파악하고 세션 별 이탈률을 낮추는 것은 ‘마케터’ 혼자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닌 것이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마케터도 함께 배워야 할 것, 알아야 하는 것이 늘어난다. 물론 기술이 전부는 아니지만 이제 감으로 마케팅을 하는 시대는 끝난 것이다. 동시에 애매한 마케터가 되어버려 씁쓸하지만, 그동안 ‘이런 결과로 보았을 때 고객이 어떤 것을 하면 좋아할 것이다.’라고 추측해서 마케팅을 해온 내가 새롭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 과정을 함께 공유할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내심 기대됐다. 애매한 마케터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