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위에서 듣기

독일 인지학 미술치료 '점토' 워크숍 후기 - 쿤스트테라피

by 클랑

얼마 전 제가 정말 좋아하는 동료이자 친구인 서하나 선생님의 연구소에서 열린 인지학 미술치료 "점토" 워크숍을 다녀왔습니다.

서하나 선생님이 왜 아주 예전부터 저에게 "효정씨, 어쩐지 효정씨한테 점토가 정말 좋을 것 같아요"라고 이야기를 했는지 정확히 느꼈죠.

피부는 우리 몸의 가장 바깥이면서도 가장 안쪽입니다. 나와 외부를 나누는 경계의 역할을 하면서도 피부를 통한 감각으로 '나'를 느끼고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심리적으로도 가장 안쪽의 경계선이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데요, 피부에서 긴장, 불안, 수치심 등의 정서가 고스란히 드러나게 되니까요.

피부는 마음의 반응이 드러나는 장소이자, 나의 내면과 외부 세계 사이를 연결하는 정서적 경계가 아닐까요?

그런데 제가 재미있다고 느낀 점은, 이 경계선이 무조건 저항하는 그런 경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피부는 완벽하게 외부 세계의 물질을 차단하지 않아요. 눈으로는 그런듯 보여도 때로는 닫히고 때로는 열리면서 나의 안전을 지킴과 동시에 외부와 연결되어 상호작용을 합니다.


구(球)를 만들었어요.

굴리거나 비벼대지 않아도 꽤 괜찮아보이는 찰흙공이 만들어졌지요. 워크숍의 내용을 하나하나 이곳에 나열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이 공은 나를 닮은 공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찰흙의 냄새와 촉감, 적당한 저항감과 무게 모든 것이 마치 늘 내 손을 잡고 있었던듯 안심되고 자연스러웠습니다.

우리의 과거이자 미래이기 때문인걸까요? 마치 나의 일부이기라도 했던듯 편안한 느낌이 손을 통해 온 몸으로 전달되었습니다.


다시 경계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경계는 두 세계가 맞닿아 있는 곳을 말하죠.

개인과 타인의 경계,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이성과 감각의 경계, 인간과 자연의 경계 같은 것들이죠. 저는 때때로 울타리라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음악치료사로서 저는 늘 이 경계 위에 서 있습니다.

예전에는 죽음과 삶의 경계를 왔다갔다 했고, 지금은 누군가의 이야기와 감정을 들어야 하지만 너무 깊이 빠지지 말아야 하죠. 또 내가 전하고자 하는 소리와 의도는 있지만 그것을 듣는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고 비워두어야 합니다.

어쩌면 경계에 있다는 것은 판단하거나 해석하려는 태도에서 한 발 물러나 비워진 채로 열어 두는 태도인 것 같습니다.

내가 컨트롤하려고 하거나 중심을 잡고 있는, 흔히 말하는 '칼자루'를 잡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 무언가 들어올 수도 있고 나갈 수도 있으면서도 섬세하게 감각하는 마치 우리의 '피부'같은 자세이지요.


찰흙을 두 손으로 매만지는 시간은 마치 귀 기울여 듣기와도 닮아 있었습니다. 단지 감각하는 기관이 달라졌을 뿐 방식은 안전하고 편안했어요. 피부의 감각이 주는 편안함으로 충전되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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