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 십 개월 (2)
의미 있는 그 시기가 지나고 있었다. 직장 경력 10개월을 넘기는 순간이었다. 그 시기를 자축하기 위해 소고기를 먹었고, 이때에 맞춰 여름휴가가 주어졌으며, 그 여름휴가의 시작을 오랜만에 친구들과의 1박으로 시작하였다. 순조로운 시작이었고 여름휴가를 마치면 이 곳에서 11개월 차가 시작될 예정이었다.
3일의 여름휴가엔 솔직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어딜 가는 것보다 그냥 그 3일 내내 집순이를 하고 싶었다. 나에겐 노는 것보다 체력 보충과 스트레스 해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모처럼 쉬는 날 집에만 있고 끝난다면 아쉬움이 클 것 같아 교회 언니와 부산 기장으로 1박 여행을 가기로 했다.
기장 앞바다는 잔잔했고 구름이 햇볕을 막고 있었다. 어디나 그늘이 된 곳에서 부는 바람도 시원했다. 우리가 선택한 펜션은 방이 두 개 밖에 없어 조용하고 예뻤고 동네는 평화로웠다. 여기서 푹 쉬고 가면 휴가를 잘 보냈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았다. 휴가 동안에는 긴장이 풀려서인지 피곤함이 더 느껴지긴 했다. 그리고 문득 회사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덮어두려고 애썼다. 휴가 중간에 부장님께 카톡이 왔었지만 큰일이 아니어서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내가 없는 3일 동안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 아니겠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혼자 사무실을 쓰면서 혼자 책임지고 관리하는 업무라, 자리를 오래 비우게 되면 불안하다. 내가 없어서 직원들이 느낄 불편함이 두렵고 나 때문에 업무에 해가 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게 된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휴가가 끝나고 오랜만에 출근 한 날.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휴가 중 일어났던 상사들의 다툼에 의해 새우 등 터뜨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 새우는.. 내가 되었다.
상사 한 명이 나와 함께 사무실을 쓰게 되었다는 통보가 내려왔다! 나와 업무적으로 관련도 별로 없는 사람이 이 좁은 내 공간으로 대피해 버린 것이다. 날벼락 같은 상황에 꿈인가 믿기지 않았다. 내 업무 공간과 근무 조건이었는데, 나와 한마디 상의나 언급도 없이 자신들만의 문제에서 회피하기 위해 짐 싸들고 들이미는 격이었다. '내 사무실인데..?' 기분이 매우 나빴고 상사들에게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입사 10개월이 지나 좀 순조로운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까 생각만 한 걸 누군가가 읽고 '과연 그럴까?' 하며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같았다. 이렇게 또 퇴사 욕구가 머리까지 차올랐다. 나는 정말 10개월 이상을 버틸 수 없는 걸까, 정말 징크스가 되어버린 걸까 하며 암울했다. 그 후로 며칠간 어떻게든 버티기를 하고 있으나 업무 의욕이 확 떨어졌다.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을 쏙 빼앗긴 기분이랄까? 사람들에게 치이는 업무라 혼자만의 공간이 있어서 그나마 지금까지 버티고 참아온 건데, 이 공간까지 침해당하다니...
나는 과연 이 위기를 잘 이겨낼 수 있을까?